반티
2025.12.10

by conair

반티가 ‘방티’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때 반티가 유행했었다. 반티는 글자 그대로 반의 모든 학생이 입는 똑같은 디자인의 티를 말한다. 요즘은 반티를 입는 학급이 많지 않지만 1990년대엔 많은 담임들이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때 반티를 맞추었다. 요즘은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양이나 이니셜 등의 글자를 새겨 넣고 있지만 1990년대엔 사이즈만 다를 뿐 똑같은 디자인과 문양의 옷을 반티로 제작해 입었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공구하기도 했었다.


반티가 ‘방티’가 된 사건은 ‘교직 2년째 2학년 문과담임을 할 때 일어났다. 그 당시 학생 관리가 가장 어려운 학년은 2학년이었다. 2학년 중에서도 문과가 이과보다 더 학생관리가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이과 학생들은 차분하고 조용한데, 문과 학생들은 분답고 말이 많았으며 자유분방했다. 가출하는 학생도 대부분 문과 학생들이었다. 질풍노도는 고2 문과학생들에게만 찾아오는 것 같았다. 교장에게 밉보이면 2학년 문과 담임을 맡게 된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기도 했다.


수학여행용 반티를 제작하자는 의견이 학급회의에서 나왔고, 당시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를 공구하기로 했다. 그 당시 반티 가격은 대체로 3,000원 정도였다. 학급회의가 있고 며칠 뒤 교장선생님이 불러 교장실에 내려갔더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무슨 20,000원짜리 반티를 사느냐는 학부모의 민원이 있었다며 왜 관리자의 허락도 없이 반티 구매로 돈을 거두냐는 질책과 함께 경위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학생이 반티명목으로 용돈을 타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깨갱하며 ‘방티’가 되어 교장실을 나왔다.


그 시절 수학여행은 무조건 설악산이었다. 2학년 담임을 몇 년 한 덕에 흔들바위를 몇 차례 밀어 떨어뜨려 보려고 젖 먹던 힘까지 써볼 기회를 가졌었다. 여관은 늘 무슨 무슨장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여관이었다. 화장실도 없고 집기라고는 이불과 베개뿐인 방에서 자고 장기자랑은 여관 앞 비좁은 마당에서 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그 와중에도 마냥 즐거움으로 들떠 있었다. 행여 여고생들이 옆 여관에 묵기라도 하면 엄중한 감시망을 뚫고 월담을 하는 용기(?)를 볼 수도 있었다.


배구를 참 잘했던 학급실장이 설악산 등산 중 열심히 음악을 감상하고 있길래 잠시 이어폰을 내 귀에 빌려 꽂았던 기억이 있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팝송을 즐겨 들으며 자란 세대이고 록음악도 나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이어폰에서 나온 음악은 내가 좋아하던 Scorpions, Led Zeppelin, Bon Jovi, Eagles, Smokie, Queen의 음악보다 더 강하고 더 메탈스러웠다. Guns N’ Roses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여관 앞마당에 빼곡히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펼쳐진 장기자랑의 압권은 바로 실장이 부른(?) Guns N’ Roses의 노래였다. 기타는 빗자루, 드럼은 쓰레기통이었으며 마이크는 밀대였다. 어디서 빌린 건지 가발을 쓰고 립싱크를 하며 머리를 흔들어 대던 아이들로 인해 여관 앞마당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며칠 전 중3 학생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2박 3일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체험학습 학생안전사고의 책임이 교사에게 있다는 판결 이후 숙박을 하는 체험학습이나 여행은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기피하고 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남다르다. 수년 전부터 2학년은 에버랜드로, 3학년은 제주도로 2박 3일 현장체험학습을 간다. 2박 3일의 현장체험학습은 준비부터 대단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공문 기안만 수십 건이다. 학생인솔은 너무나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행복한 학창생활을 위해, 배려와 협동심 배양을 위해 모든 수고로움을 감당하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다.


둘째 날 강당에서 장기 자랑이 열렸다. 1990년대 설악산 여관 앞마당과 달리 조명과 고음질의 스피커, 넓은 무대가 있는 어엿한 공연공간이다. 7팀의 마지막 순서로 나온 학생이 모든 학생들을 일어나게 했다. 싸이의 ‘챔피언’과 ‘예술이야’를 앉아서 듣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가창력뿐만 아니라 쇼맨십도 뛰어났다. 그런데 그런데 앞의 몇몇 학생만 방방 뛰며 호응을 할 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멀뚱멀뚱 휴대폰으로 촬영만 하고 즐기지 않았다. 아무리 코로나 세대라고 하더라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학생들이라면 나도 ‘황진이’를 부르지 말고 조용한 발라드를 불러야 했었다는 후회가 든다. 지금 어디에 모 교장의 ‘황진이’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1993년 ‘방티’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당시 기차는 굴을 통과하면 실내가 암흑이 되었는데, 잠자고 있던 선생님 얼굴을 시꺼멓게 만들어 놓는 장난을 치던 그 아이들도 보고 싶다. 오늘은 Guns N’ Roses의 음악을 한 곡이라고 끝까지 들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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