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조직사이, 다시 배운HR(#14)

#14. 좋은 선배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들

by 사람과조직사이

처음으로 “아, 이 사람과 오래 일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선배가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이 선배라면 어떤 고민이 생기더라도 같이 헤쳐갈 수 있겠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 선배는 내가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피플그룹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내가 잠시 팀장 타이틀을 내려놓았을 때 팀장으로 오신 분이었다.
‘피플그룹장 후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사람이다.


1. “이 사람은 진짜다”라는 느낌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왔다


그 선배는 HR 경험이 당연히 풍부했다.
그런데 내가 더 인상 깊었던 건 경력의 두께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태도였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필요한 순간에는 “이건 이렇게 갑시다”라고 단호하게 정리하며

동시에 “리더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죠”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었다. 특유의 유머러스함까지.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선배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세요’로 끝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엇이 부족하고, 너희가 어떤 걸 채워줬으면 좋겠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리더십은 ‘완벽함’이 아니라
‘기준을 세우고,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거구나.”


그리고 처음으로
‘좋은 선배’라는 표현을 커리어에서 진심으로 사용하게 됐다.




2. 1년 뒤, “밥 먹자”던 저녁에 들은 퇴사 소식


그렇게 든든했던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선배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큰 건 마무리했으니 고생했다고 밥 사주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선배는 아주 담담하게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단순히 놀라서라기보다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이제 누가 내 옆에서 방향을 잡아줄까?”라는 불안

“이 선배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라는 짐작

그리고 동시에 “보내드려야 한다”는 납득

이런 감정들이 한 순간에 겹치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다.

좋은 리더는 ‘있을 때는 깨끗한 공기’ 같다가
떠나는 순간 그 존재의 무게가 갑자기 온몸으로 느껴진다는 걸.




3. 퇴사 과정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던 이유


더 인상 깊었던 건, 퇴사 과정이었다.


선배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챙겼다.
각자에게 필요한 말을 남기고, ‘정리’가 아니라 ‘마무리’의 태도로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자리에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가 함께 고생한 시간이 헛되지 않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잘 성장하자.”


쿨하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남기고 떠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때 느꼈다.

좋은 리더는 사람을 떠나는 순간에도
팀의 문화를 한 번 더 세워주는 사람이구나.




4. “좋은 리더가 남아 있는 것” 자체가 팀에게 주는 안정감


그날 이후 한동안 멍했다.
업무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축’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선명하게 깨달았다.

좋은 리더가 회사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과 동기부여가 되는지.


리더가 업무를 다 해줘서가 아니다.

기준이 흔들릴 때, 다시 기준을 잡아주고

갈등이 생길 때, 사람을 탓하기보다 방향을 정리해주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이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가이드해 주는 존재

그게 팀의 심리적 안전감이자
조직이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5. ‘수평적인 조직’의 진짜 의미를 그 선배에게 배웠다


나는 그 선배를 보며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조직에는 당연히 직책은 존재한다. 선후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필요한 정보는 막히지 않고

고민을 꺼내도 비웃지 않고

의견을 묻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협업의 일부가 되는 구조

그 선배는 나를 단순한 팀원이 아니라 동료로 대해줬다.

그래서 나는 그 1년 동안 정말 너무도 행복했다.




6. HR 관점에서 남는 질문: “좋은 리더는 어떻게 남게 되는가”


선배의 퇴사는 한 개인의 선택이지만,
HR 관점에서는 질문이 남는다.

좋은 리더가 왜 떠났는가

좋은 리더가 남기 어려운 구조는 무엇이었는가

좋은 리더가 남아 있을 때 팀의 조직몰입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런 질문들은 “그 사람이 아쉽다”로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좋은 리더’라는 감각을 조금 더 ‘데이터’와 ‘언어’로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를 들어,

리더십 진단(유형·역량·역할 몰입/성장지수)를 통해
조직이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지금 리더들이 어떤 상태인지 점검하고

조직몰입도 진단을 통해
“좋은 리더가 있는 팀이 왜 버티는지”, “어디에서 신뢰가 쌓이고 무너지는지”를 조금 더 명확히 확인해보는 것

이런 도구가 있어야만
좋은 리더를 “운 좋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의식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7. 좋은 선배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들


나는 지금도 종종 그 선배의 행동을 떠올린다.

단호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정리하던 장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던 방식

사람을 남기고 떠나던 마지막 인사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는 건 운일 수 있지만,
좋은 리더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건
설계의 문제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배운다.
사람과 조직 사이에서,
그 선배에게 배운 리더의 태도를
내 일의 기준으로 조금씩 옮겨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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