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쎄했던 첫인상은 대부분 맞는다.
지난 글(#14)에서 처음으로 “좋은 선배”라고 느꼈던 리더의 퇴사를 기록했다.
그 선배가 남기고 간 건 업무 기준 뿐만이 아니라, 팀이 버틸 수 있는 안정감과 신뢰였다.
그런데 그 선배가 떠난 뒤,
조직에는 정반대의 리더가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고 싶게 만든 사람이었다.
오늘은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리더십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리더 채용에서 무엇을 더 조심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가장 처음 놀랐던 건
그 사람이 입사한다는 사실을 나도 몰랐다는 점이었다.
조직을 함께 꾸려야 하는 팀과의 미팅은 한 번도 없었다.
리더 후보자를 만난 건 상위 직책자였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맥락에 의해 어떤 후보자를 검토하고 있는지 공유되지 않았다.
(아마 실장님 입장에서는 공유할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미 피플그룹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흐름 자체가
여러 이유로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확대”라는 방향을 계속 밀어붙였고,
그 첫 단추가 리더 채용이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체감했다.
리더 채용은 단순히 한 명을 뽑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팀이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입사 첫날, 첫주에 가장 충격이었던 건
‘내용’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 사람은 본인이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본인이 경험한 방식을 전제로 본인의 상식과 다른 점에 대해서
맥락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를 포함한 구성원들에게는 그랬다.
반대로,
상사이거나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친절했다.
설명도 세세했고, 말도 조심스러웠다.
그 대비가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한 문장이 계속 맴돌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자리가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마음까지 멀어진 순간은
그 사람이 HR이라는 직무를 대하는 태도에서 왔다.
어느 날 그는 회사와 타 조직 구성원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본인이 맡은 조직의 구성원들 앞에서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걸 보면서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HR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이 회사에 잠시 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HR은 조직 안에서 갈등을 ‘정리하고 구조로 남기는’ 역할에 가까운데
그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그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고 확신했다.
적어도 내가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에서는.
리더십은 평온할 때보다 이슈가 터졌을 때 더 드러난다.
조직에서 크고 작은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는 해결하려는 모습보다 “본인은 수습기간이니 나서지 않겠다”는 태도로 뒤로 빠졌다.
시간이 지나 수습기간이 끝난 뒤에도 상황을 정리하기보다
본인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음에도 각 담당자를 압박하거나 괴롭히는 방식으로 반응했다.
업무시간에 본인의 개인업무를 보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더 확신하게 됐다.
“이 리더는 팀의 문제를 풀기보다, 팀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업무의 생산성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빠르게 갉아먹었다.
나는 그 리더와 절대 맞지 않았다.
이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상위 직책자에게 “이 사람이 문제다”라고
보고하고 싸우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지금 나는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나?
여기에서 다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가능한가?
결론은 단순했다.
“떠나는 것이 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나의 퇴사 과정은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 사람을 확인시켜 주었다.
퇴사 면담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갈 곳이 있어서 좋겠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 왜 있지?”
“이게 퇴사 면담인가?”
퇴사 당일에도 비슷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퇴근하려고 기다리는데
그는 “미팅”을 핑계로 메신저도 확인하지 않았고, 자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주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동시에 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 ‘오래’는 그 사람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성원들을 괴롭혀서라도 본인의 자리는 보전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남긴 방식이 결국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웠다.
좋은 선배와 정반대의 리더를 연속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리더십을 조금 더 구조적으로 보게 됐다.
① 리더십은 “좋은 사람/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 유형과 조직의 상황이 맞는가(Fit)의 문제일 수 있고,
② 가치관과 조직문화의 결이 어긋나면
리더는 조직을 살리기보다 먼저 균열을 만들 수 있고,
③ 무엇보다 리더십은 결국,
신뢰가 생기게 만드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리더를 뽑거나, 리더십 이슈를 다룰 때
“감각”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리더십을 데이터로 본다는 건
사람을 숫자로 줄 세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리더십이 지금 필요한지’를
조직이 합의할 수 있게 돕는 언어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리더십 유형 진단으로
리더의 기본 경향(과업/관계, 변화/안정, 통제/자율)을 확인하고
리더십 역량·역할 몰입/성장지수로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보고
가치관/조직문화 Fit 진단(조직문화 진단)으로
이 리더가 조직의 방식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점검하고
리더 신뢰도(리더-구성원 신뢰)를 함께 보면
‘쎄함’이 단순한 기분인지, 구조적 위험 신호인지
훨씬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선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쁜 선배는 되지 말자고 나는 종종 다짐한다.
리더십은 결국
사람을 떠나게도, 남게도 만든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두 리더는
그 사실을 너무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다.
혹시 지금
새로운 리더를 영입했는데,
또는 영입을 앞두고 있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쎄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자문해보면 좋겠다.
그 쎄함은 기분 문제인가, 패턴 문제인가?
이 조직의 문화와 기준 속에서 그 리더십은 작동할 것인가?
사람들은 그 리더를 신뢰할 수 있을까?
리더는 ‘사람 한 명’이 아니라
조직의 공기와 기준을 바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