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조직사이, 다시 배운 HR(#16)

#16. HR조직이 커진다고, HR의 위상이 자동으로 올라가진 않는다

by 사람과조직사이

회사가 피플팀을 피플그룹으로 키우기로 했을 때,

나는 그 변화가 꽤 반가웠다.

회사가 이제는 사람과 조직의 문제를
정말로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조직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제는 HR도 좀 더 체계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팀 단위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닐까”
“조직이 커지는 만큼, 사람과 제도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 자체는 틀리지 않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변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해 보니,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팀이 그룹이나 본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전략적인 HR조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름이 바뀌는 것과 역할이 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커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는 (솔직하게는 지금까지도) HR이 있어야 하는 조직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영과 지원의 기능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채용하고, 평가를 운영하고, 보상을 정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는 역할.

꼭 필요하지만,

전략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뒤에서 받쳐주는 기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고 사업이 복잡해질수록 회사도 알게 된다.
사람의 문제는 결코 뒤에서 조용히 정리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리더십, 협업, 역할 충돌, 정보 공유, 기준 정렬, 성과 운영 같은 문제는
결국 조직의 성과와 직접 연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HR조직을 키우겠다는 결정 자체는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적어도 이 회사가 이제는 사람과 조직을 비용이나 관리의 영역만이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인 경영의 영역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진 조직이 꼭 성숙한 조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수록,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보였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조직이 커지면서 HR의 역할이 더 넓어졌다기보다
오히려 ‘관리’의 색채가 더 짙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HR에게 관리 기능은 필요하다.
기준을 만들고, 지키게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정리하는 일은 분명 HR의 역할이다.
그 역할이 없으면 조직은 금방 흔들린다.


하지만 관리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관리의 목적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제하고 줄 세우는 쪽으로 기울어질 때 문제가 시작된다.


어느 순간부터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처럼 다뤄지는 분위기가 생기면,

그 조직 안에서 HR은 전략 파트너가 아니라 감시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HR이 지켜야 할 원칙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믿는다.

최소한의 기준선은 분명해야 하고,

그 기준을 어겼을 때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도 명확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것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HR이 누군가의 기분이나 권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같은 기준 위에 세우는 조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그 기준이 흐려지면 HR은 쉽게 오해받는다.
특히 잘못된 HR조직의 리더는 그 권한을 마치 자신의 권력처럼 쓰기도 한다.

원래 HR의 권한은 조직을 위해 잠시 맡겨진 기능에 가까운데,
그것을 영향력이나 통제력으로 사용하는 순간,
HR의 위상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빠르게 무너진다.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였다

피플팀이 피플그룹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내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리더는 어디까지 연결하고, 어디서 막는지.

필요한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 공유되는지.

실무자는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지.

HR 데이터는 누구의 언어로, 어떤 기준으로 활용되는지.


나는 결국 이런 것들이야말로
HR조직의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타이틀이 커지는 것은 쉽다.
조직도를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를 정리하고,
리더십 라인을 건강하게 세우고,
정보 흐름을 끊기지 않게 설계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


겉으로는 커졌는데 실제 운영은 더 폐쇄적이고 더 수직적으로 바뀌었다면,
그건 성장이라기보다 복잡성만 늘어난 것에 가깝다.




정보를 나누지 않는 HR은 스스로 힘을 잃는다

특히,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HR 데이터와 정보가 HR조직 내에서 흐르는 방식이다.


직책에 따라 활용 가능한 정보 범위가 다를 수는 있다.
민감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데이터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열어두는 것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팀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위계를 만들고,

소통의 통로를 끊고,

필요한 정보 접근까지 제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은 보안이 아니라 비효율이다.

시스템은 보호를 위해 설계되어야지,
누군가의 통제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장면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리더는 팀을 두 개로 나누어 놓고,

그 결과 실무자들은 업무 일정을 놓치게 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왜 일정을 놓쳤느냐고 다시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여러 번 생각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정말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분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팀을 나눴다면 각 팀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역할과 권한, 정보 접근 체계도 함께 설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구성원들은 원래 하지 않아도 되었던 자료 요청과 확인을 추가로 해야 했고,
이 정보를 공유해도 되는지,
이 요청을 해도 되는 것인지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정보를 나누지 않는 구조는 단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축시키고 조직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문화는 HR이 만들 문화가 아니다.




HR이 한 단계 올라가려면

나는 HR조직이 한 단계 올라가려면
조직도보다 먼저 설계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사적으로 어떤 HR 데이터가 필요한지 정리하는 일.

그 데이터를 현황판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

누가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공유할 것인지 기준을 세우는 일.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룰을 현업과 긴밀하게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HR조직이 먼저 그 기준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이런 것들이 쌓여야 비로소 HR은
전사를 통제하는 조직이 아니라, 전사를 정렬시키는 조직이 된다.


사실 다른 조직 입장에서 HR은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는 조직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지켜야 할 기준을 말하고,

때로는 불편한 피드백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HR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신들이 세운 기준을 스스로 가볍게 여기지 않는지,

조직에 요구하는 태도를 내부에서는 지키고 있는지,

HR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통제’가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나는 HR조직의 레벨업은
규모가 커지는 것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이 기준을 스스로 옳다고 믿고,

그 믿음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정보와 실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문화,

기준이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신뢰,

그리고 리더가 그것을 연결하는 방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커진 뒤에 남는 질문

나는 여전히 HR조직이 커지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사람과 조직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질문은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HR조직을 키운 뒤,
무엇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있는가.


이름이 바뀐 뒤에도 정보는 여전히 막혀 있고,
리더는 연결하기보다 통제하고,
구성원들은 더 눈치를 보게 되었다면,
그것은 HR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HR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이 더 불편해진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결국 HR의 위상은 조직도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정교하게 구조를 설계했는지,
얼마나 분명하게 역할을 나눴는지,
얼마나 투명하게 데이터를 활용하는지,
그리고 리더가 그것을 얼마나 건강하게 연결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팀이 그룹이 되는 것은 시작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커진 뒤에 HR이 어떤 조직이 되기로 선택하느냐다.


작가의 이전글사람과 조직사이, 다시 배운HR(#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