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웃음이 드물고 무뚝뚝하셨던 나의 어머니에게도 환한 미소가 피어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와, 차가운 바람이 걷히는 3월, 하얀 목련이 눈부시게 피어날 때였지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노래를 듣거나 하얀 목련을 볼 때면 자연스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에게도 그토록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대상이 내가 아니었다는 것에 작은 서운함이 스치기도 합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요?
엄마가 되기 이전, 아니 어쩌면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서기 전의 나는 늘 세상 가장 바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보다는 친구들과의 만남, 취미 생활, 공부에 파묻혀 나 자신에게만 몰두했던 시간이었죠. 특히 어머니와는 서먹한 관계였던 거 같습니다. 오롯이 다섯 아이를 키워내느라 어머니는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으셨을까요. 당신에게도 분명 노래와 꽃을 사랑하는 소녀 같은 감성이 있었을 텐데, 삶의 무게에 짓눌려 그 웃음을 잃어버리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가 대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나마 남아있던 웃음마저 사라지신 듯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홀로 3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내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시절을 사셨을까, 문득 궁금해지곤 합니다. 당시 어머니의 일상과 마음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기도 하죠. 나 역시 엄마가 되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고 믿었던 미혼 시절, 세상의 중심은 오롯이 '나'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은 후부터는 그 중심이 아이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사실 결혼에 큰 뜻이 없던 나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꼭 한 명 갖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나를 꼭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죠. 설렘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육아는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이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 울고 웃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로 인해 나의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까지 모두 변했습니다.
열여섯 살이 된 아이를 마주하며 돌이켜 후회하는 점은 아이를 '나의 것'이라는 소유물처럼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이 그 자체의 빛남보다는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주기를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과정 내내 나 자신이 지치고 고단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아이를 대할 때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네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잠시 맡기신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라'고요. 이제 와 생각하면, 아이로 인한 좌절과 슬픔은 아이의 모습이 아닌, 아이에게 내 삶의 그림자를 투영했던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피터팬처럼 자신만의 네버랜드에 머물고 싶어 하는 아이의 세계를 무참히 짓밟는 후크선장이 바로 나였던 것 같습니다. 왜 아이의 순수한 네버랜드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를 나는 왜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현실로 끌어내려했을까.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그 근원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닥칠 수도,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형체도 소리도 없는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죠. 그 불안은 온전히 내 안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행복감은 잊은 채 그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 자신도 아이도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라주지 않을 때, 나는 그만큼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홀로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간과했던 것은, 과연 '내가' 원했던 아이의 삶이 진정 '아이'가 행복한 삶이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지금도 혼자만의 세상에서 충분히 즐겁습니다. 그러면 된 것인데, 나는 그때 왜 그토록 나 자신만의 만족을 강요했던가. 요즘 들어 저는 아이에게 양가감정을 느낍니다.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정답'대로 살아주지 않을 때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좌절감이 스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하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안도와 비로소 받아들임의 감정을 느낍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운명처럼 내게 찾아와 나의 아이가 되었고, 나는 그 작은 생명에게 삶을 불어넣어 주었죠. 그렇게 나와 아이는 끊을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 이 긴 삶의 여행을 함께 떠나야 합니다. 물론 아이에게 늘 꽃길만 걸으라고 말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안내해 주는 길이 진정 아이에게 꽃길일지는 나조차 알 수 없으니까요. 대신 아이가 걸어가는 길 내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힘들어 지치면 땀을 닦아주고, 환한 웃음으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존재로 남아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삶에 지친 나의 모습보다는, 마치 하얀 목련을 바라볼 때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아이에게 보여주려 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시절 나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딸인 나를 늘 걱정하고 계셨을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셨겠지요. 마치 모성의 대물림처럼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겁니다.
가끔 아이의 어린 시절 귀여운 사진들을 볼 때면, 그때의 나는 과연 이런 감정을 온전히 느꼈을까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그저 삶의 염려에 짓눌려 바쁘게만 세월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That is why it is called a "present".' 어제는 역사가 되고 내일은 미스터리이지만, 오늘은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선물' (현재) 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요. 이 소중한 선물을 내게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 삶의 무게와 염려는 당신이 가져가주세요. 저는 오늘도 그저 꽃처럼 웃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