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연습

꼭 이겨야 하나요?

by 레오


폭염이 계속되는 오늘, 나는 마치 사우나 통에 갇힌 듯한 답답함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아이의 현대 미술관 수업 때문에 종로구까지 차를 몰았다. 휴일 오전 10시, 경복궁 앞은 주차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매는 자동차들은 마치 개미 떼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러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머리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졌다.


"여보, 어디라고?"


"11, 2에 있어."


"우리도 거기 있는데, 안 보여."


"안 보인다고? 여기 너무 더워, 어디 있는 거야?"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왜 이렇게 안 와? 기둥 번호가 2번이고 11번 열이라고!"


"헉, 11, 2 이라며. 기둥 번호가 11이 아니고 2라고? 말을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은 이 찌는 듯한 더위만큼이나 나를 짓누른다. 갑자기 몸속 깊은 곳부터 갈증이 느껴졌다.


'그래, 그냥 지고 말자.'


이겨서 무엇하겠는가? 소모적인 말다툼의 끝에는 승자 없이 패자만 남을 뿐이다. 오늘 점심은 기분 나쁘게 먹다 지칠 것이고, 집으로 가는 차 안은 아무 소득 없는 소란으로 가득할 터였다. 나는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싸울 준비라도 한 듯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도 뭔가 무안했는지, "어디로 갈까?" 하고 묻는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 밥 먹고 나서도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집으로 가도 돼."


내 말에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운전하며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자기주장을 내세우던 아내는 어디 갔나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점심 메뉴와 디저트를 먹는 내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얌전히 맛있게 먹어줬다. 평소 같았다면 한마디 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을 텐데,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꽤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회생활에서 나는 양보하고 타협하며, 심지어 굽신거리기까지 했었다. 과거 한 국무위원이 고성을 지르는 국회의원에게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싸우는 것이 아니고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특히 인상 깊었었다.


하지만 집, 즉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에서는 다른 나를 마주한다. 가족 앞에서는 가면을 벗게 되고, 속에 숨겨진 호전적인 DNA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배우자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지지 않으려 하고, 아이에게는 작은 실수에도 완벽을 요구한다. 대외적으로는 젠틀하고 유연한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날카로워지는지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나의 모습은 결국 나 자신과 가족 모두를 지치게 할 뿐이다. 피곤한 하루의 끝에 찾아오는 건 정서적 소진과 후회다. 승자 없는 싸움 끝에 남는 것은 공허함뿐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논쟁에서 이기려 들지 않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욕구보다 상대의 편안함을 먼저 생각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위한 길임을 깨닫는다. 비록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가족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와 집안에 감도는 온화한 기운을 느낄 때마다 이 연습의 가치를 실감한다.


오늘따라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달라는 평화의 기도가 귀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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