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그렇게 가을은 다가왔다.
어릴 적 가을은 9월 초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어오르며 시작되곤 한다. 낮에는 햇살이 따갑다가도 해 질 녘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골목과 놀이터는 온통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다방구',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밤늦도록 즐겼다.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우당탕 뛰는 소리에 골목길은 활기가 넘쳤다. 집집마다 구수한 된장찌개, 김치찌개, 고등어구이 냄새가 풍겨왔지만, 어머니들의 "밥 먹어라" 하는 외침에도 아쉬운 줄 몰랐다. 결국 퇴근하신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야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태풍이 오면 학교를 빠질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던 철없던 시절도 기억한다. 마침 다음 날 수학 쪽지시험이 있었는데, 큰비가 내리자 풀기 싫은 마음에 우산도 없이 밖으로 나가 비를 맞았다. 기온이 뚝 떨어진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감기에 걸렸다. 그렇게 심하게 아프진 않았지만, 태풍까지 왔으니 학교에 못 가겠다며 능청스럽게 꾀병을 부렸다. 그렇게 태풍이 지나고 나면 더위는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가을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9월인데도 여전히 30도가 넘는 폭염에 허덕이다 문득 겨울을 맞이한다. 불타는 지구를 보며 우리가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와 편리함만을 좇아 썼던 일회용품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태풍이 이 뜨거운 땅을 식혀주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대 기우제는 하늘에 비를 기원하는 제사였지만, 그 이면에는 가뭄으로 불안에 떠는 민심을 달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비는 언젠가 반드시 내린다는 것을 알기에, 무당은 비가 올 때까지 그저 제사를 지내기만 하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쉬운 일이 또 있었을까.
잠시나마 지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기우제를 지내본다. 비는 언젠가 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시기를 바라면서다. 지구를 향한 간절한 기원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부터라도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본다. 우리의 노력이 모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자연의 순리를 되찾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아이들에게 키즈카페나 워터파크가 아닌, 시원한 바람과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