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한 걸음 내딛을 용기

by 히힛

교회에 새로 오신 여자분이 계셨다. 나는 그분을 따로 만나보고 싶었다. 이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 내 주변에는 이혼하신 분들이 없었고 이혼을 경험해 보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연락처를 받아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궁금한 게 많아 여쭤보고 싶은데 혹시 만날 수 있는지 여쭤보았고, 그분은 가능하다며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셨다. 뜬금없는 연락임에도 잘 받아주셔서 감사했다.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분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다른 상황이었으나 너무도 공감되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 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이혼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데 아이가 있으니 면접을 봐도 붙기가 쉽지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분은 아들 둘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출퇴근 날과 시간을 조절해서 쓸 수 있다고 했다. 속으로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었다. 나에게 전에 무슨 일 했었냐고 물어보셨고, 웹디자인을 했다고 말씀드리니 "같이 일 해볼래요?" 하셨다.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분이 회사의 실세인가?' 싶었다. 마침 회사 홍보팀에 디자이너가 필요했다고 설명해 주셨다. 다만 정해진 입사절차가 있으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주면, 대표님께 얘기해 보고 이메일을 통해 자료가 전달되면 작성해서 다시 보내달라고 하셨다. 몇 달 동안 고민하던 취업 문제가 이렇게 해결된다고? 그래도 입사 확정은 아니니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생각하기도 했다. 평상시 잘 알던 분도 아니고 궁금한 게 있어서 한번 만난 분을 통해서도 이런 일을 일어나다니! 만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있었던 일을 상기해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울컥 눈물이 났다.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상황에 절망이 엄습해오고 있었는데 이제야 뚫려있는 하늘이 보였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다듬은 뒤,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이메일 답장이 왔다. 내가 만났던 분은 팀장님이셨고, 이메일로 입사지원서류를 받았다. 에세이라고 불리는 여러 항목들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데 나의 삶을 과거부터 미래까지 아울러야 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보였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만난 기회인데, 꼭 잡고 싶었다.


그 뒤로 면접을 보고, 입사일이 잡혔다. 육아하며 일을 해야 하다 보니 9 to 6 출퇴근이 어려운데, 그 고충을 아는 팀장님의 배려로 하루 4시간 재택근무, 주 1회는 회의 겸 출근하게 되었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아이를 돌보면서 회사를 다니며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나의 상황을 배려해 주는 좋은 상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드디어 내가 겪었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몇 가지 일들을 털어놓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였기에 엄마는 많이 놀라고 믿기 힘들어하셨다. 반복해서 사실이냐고 물어보셨다. 이혼을 하겠다는 나에게 엄마는 속상해하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엄마는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 아이가 없을 초반에 한 번 그랬을 때 얘기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고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다려주면 그가 좋게 변할 거라고 믿고 있었고 가정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괜히 엄마에게 얘기하면 그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할 것 같았고, 그 일로 이혼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집을 따로 얻을 형편은 안되니 친정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때 친정에는 아빠, 엄마, 남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빠와 이야기해 보시겠다고 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연락이 왔고 나와 아이가 친정에 가면 동생이 이사준비를 해서 추후에 집에 얻어서 나가기로 했다. 동생이 쓰던 방을 나와 아이가 쓰기로.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갔다. 아이 다니던 유치원을 마무리하고, 친정 근처 유치원을 알아보았다. 친했던 아이친구 엄마들과도, 교회 사람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건 늘 쉽지 않다. 교회와 친정은 거리가 멀어 왕복으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코로나 시기라 온라인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교회는 일단 옮기지 않기로 했다. 이삿짐을 옮겨주실 용달차 기사님도 알아보았다.


아이에게는 친정 가서 살 거라고 미리 얘기했다. 그가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가 별생각 없이 할머니 집에 가서 살 거라는 얘기를 했나 보다. 그가 나에게 확인차 물었고 나는 맞다고 했다.


친정에는 꼭 필요한 짐만 가져가기로 하고 안 쓰는 것들을 버리며 정리하고 가기 하루 전까지 아이 재워놓고 리빙박스에 짐 정리를 했다. 그가 들어와 짐 싸는 걸 방해하거나 해코지하면 어쩌지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은 비가 왔는데 헌 옷수거함을 몇 번씩 왔다 갔다를 하며 옷정리를 했다. 비 오는 밤중에 이 무슨 고생인가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용달 기사님이 오셔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가려고 하는데 그는 슬픈 발라드 종류의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를 안고 엉엉 울면서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말을 했다. 사랑을 논하기엔 그동안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놓는 모습이 싫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달라지길 바랐고, 그 일을 옆에서 돕고 싶었다. 그런데 불가능한 일이더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계기로 달라지겠다는 마음을 먹고 노력한다면 그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주체가 되어 달라지기로 마음먹으면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생길 수 있다. 주체가 타인인지 본인인지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노력은 뼈를 깎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 이틀, 며칠간 뼈를 깎는 노력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매일 꾸준히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가족 앞에서. 그래서 사람은 웬만하면 잘 바뀌지 않는다.


선을 그어도 그 선을 화가 났다는 이유로 기어코 넘는 그를 보며 그가 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게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살 수는 없었다. 나와 아이를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최종목표는 이혼이었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그와의 분리가 첫 번째였다. 홧김에 이혼을 잘만 얘기하더니 그는 정작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 손을 잡고 살던 곳을 나오는데 후련하면서도 큰 일 없이 집을 나올 수 있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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