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제야 객관적으로 보인다

by 히힛

아이와 함께 친정에 도착했다. 친정 현관 안쪽으로 내가 싸 온 짐들이 쌓여있었다. 짐을 줄여 최소로 가져왔지만 장난감을 비롯한 아이 짐이 있다 보니 양이 꽤 되었다. 엄마는 엄마의 생각보다 많은 짐이 불편했나 보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 이 많은 걸 다 어디에 정리하냐고."

집에서 들고 온 정수기를 재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엄마는 계속 나에게 화가 난 듯 보였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다가도 엄마가 아이나 다른 가족들을 대할 때와 나에게 대할 때가 달랐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차갑게 대답했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듯 행동하는 엄마가 답답하고, 내 마음은 서러웠다. 내가 어떻게 지내다가 온 건지 알면서, '그동안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좀 쉬어라.'라는 말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건 냉대와 거절감이었다.


불편하지만 어찌할쏘냐. 집을 구할 돈은 없고 어쨌든 친정에 얹혀살아야 하는 상황이니 불편해도 적응해야 했다. 빚을 갚으면서 아이와 빠듯하게 살아야 하니 월세 명목으로 돈을 드리기도 어려웠다. 눈치껏 엄마가 하는 집안일을 도왔다. 흔쾌히가 아니라 여기서 살려면 내가 이런 거라도 해야지 라는 의무감 같은 마음이었다.


친정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다.

그가 나에게 했던 일들을 얘기했을 때는 감정적으로 그에 대한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은 별거 중이지만 이혼할 거야라고 얘기하면 엄마는 이혼은 안된다고 얘기했다.

"네가 진짜 사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지. 아침밥은 차려줬니? 그래도 아침밥은 차려줬어야지, 너도 너 할 일은 했어야지. 살면서 이혼생각 안 해본 사람 있어? 다 참고 사는 거다. 사람은 다 부족한 게 있다. 너 변했다. 성경에도 이혼은 죄라고 한다."라고 말하던 엄마는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게 어떻게 엄마 일이야 내 일이지."라는 대꾸가 저절로 나왔다.


엄마가 하는 모든 얘기들은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엄마는 그가 처음 한 번 그랬을 때 얘기하라고 했지만, 얘기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참다가 말한 나에게도 이혼은 안된다고 하는데 한 번 그랬으면 이혼하라고 했을까? 참고 버티고 살아보다가 더 이상은 죽을 것 같아서 나온 사람한테 화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 엄마가 안 겪어봐서 모르는 거야. 아빠가 폭력적인 사람이었다면 엄마가 참고 살 수 있었을까? 모든 사람은 장단점이 있지. 하지만 폭력은 그냥 하면 안 되는 거지 단점이라고 할 수 없잖아. 가정폭력이 왜 신고의 대상이 되는데. 범죄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하면 안 되는 거니까.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닌데." 엄마에게 말하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내 얘기, 엄마는 엄마얘기만 하다가 끝났다. 벽이 느껴졌다. 엄마는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엄마인데 왜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감정이 올라와 울면 엄마는 왜 그런 걸로 우냐며 우는 나를 나무랐다. 엄마는 감정을 표현하고 수용하는 것에 서투르고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자라면서 대화하는 방법이라던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잘 배우지 못했다. 나중에 커서 여러 가지 배워가며 따로 노력해야 했다.


엄마가 밉고 화가 나면서도 주변의 현실이 보였다. 내 또래 사람들은 결혼하고 10년 넘으면 어느 정도 기반도 잡고 집도 장만하고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거나 여행을 보내드리거나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드는 때인 것 같은데 나는 아이를 데리고 무일푼은커녕 빚까지 만든 채로 갈 곳이 없어 친정으로 들어오고, 부모님께 따로 용돈도 못 드리고 효도도 못하는 내 처지와 비교되었다. 부모님께 필요한 게 있을 때 마음껏 사드릴 수 없어 속상했다.




몇 년 전, '엄마친구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배우 정소민이 맡은 배석류라는 캐릭터는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대기업을 다니며 변호사가 직업인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퇴사와 파혼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석류의 엄마는 그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딸에게 모질게 대한다.


드라마에서 2화에서 석류와 엄마가 싸우는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 너 꼴도 보기 싫어. 온종일 자빠져 자고 실없이 처웃기나 하고.”

“얼마나 못 잤으면 저럴까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얼마나 웃을 일이 없었으면 쟤가 저럴까 그런 생각은 안 해?”

“남들 다 그러고 살아. 혼자 유난 떨지 마.”

“남들 다 그래도! 엄마는 좀 내 마음 알아주면 안 돼? 엄마! 나 힘들어서 왔어. 나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좀 쉬어라, 고생했다 그렇게 좀 말해주면 안 돼?”

“알아! 너 고생한 거 내가 알고 하늘이 알아. 그래서 그래! 남들은 돈 많아 가는 미국 유학 전액장학금에 생활비도 전부 지가 벌고 그렇게 어렵게 이룬 걸 내팽개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그냥 둬. 네가 나한테 어떤 딸인데, 네가 얼마나 큰 자랑인데!”

“나는 왜 항상 엄마의 자랑이어야 돼. 가끔은 흉이어도 흠이어도 그냥 엄마 자식인 걸로는 안돼?”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리도 내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가 있을까?

석류의 엄마는 가난과 학벌로 인한 성공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을 석류의 성공으로 채우려 했다. 하지만 석류가 파혼하고 퇴사했을 때, 단순히 딸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듯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의 엄마도 내 결혼 실패가 엄마 자신의 일로 느껴졌던 건 아닐까.




엄마는 한 교회에 40년 넘게 다닌 권사님이다. 예전에는 성경을 더 율법적으로 가르치기도 했고, 엄마의 사전에 이혼은 없는 단어이다. 살면서 이혼은 안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인데 엄마에게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건 없었다. 그럴 때 참 답답했다. 마음을 공감받지 못한다는 게.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하냐라고 하는 엄마의 마음에는 '권사님 딸이 별거 중이래. 이혼한대'라는 상황이 엄마에게는 허용이 안되어 보였다. 엄마 스스로 직면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나 또한 엄마처럼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봤겠지. 내가 경험해 보니 알겠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엄마는 내가 가정폭력을 겪고 이혼을 하려는 별거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못 받아들였다. 그중 큰 이유는 사람들이 알까 봐 의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들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문제를 고민하며 지나왔기에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내 마음이나 상황보다 엄마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더 중요하구나.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엄마의 문제구나. 바뀌기 쉽지 않겠다.'


결혼 전에도 엄마와 싸울 때는 있었지만 결혼 후에 떨어져 있을 때는 엄마와 통화하면 애틋하고 싸울 일이 없었는데 같이 살게 되니 매일 살얼음판이었다. 예전에는 그저 롤모델처럼 엄마처럼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이제야 엄마가 한 사람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이런 단점이 있었구나. 엄마는 어쩌다 감정을 억압하며 살게 됐을까? 엄마의 어린 시절이 문득 궁금해졌다.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받아봐야 나눠줄 수 있는데 엄마도 감정적으로 수용받는 가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을 물어봤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안 좋은 얘기는 타인에게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얘기하면 말이 전해지고 약점이 된다고 나에게도 주변사람들에게 안 좋은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얘기하기도 하고, 말이 전해진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한다. 나는 엄마가 "우리 딸이 이런 일로 집에 와있어서 속상하다." 이런 얘기를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좋겠다. 하소연도 하고 감정을 해소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았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는 것 같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만 토해내는 듯하다.

엄마는 어쩌다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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