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살아내기
푸르른 6월의 초여름, 아이는 5살에 새로운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유치원 원장님과 선생님이 잘 챙겨주셔서 그런지 별일 없이 아이는 잘 적응해 나갔다. 다만 친정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에어컨 생활을 하다가 없는 곳에 오니 불편함은 있었다. 선풍기로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아이는 잘 때 머리에 땀을 흘리면서 자는 체질이라 열대야가 있는 밤에는 아이도 나도 힘들었다. 더우니까 밤에 잠도 잘 안 왔다. 에어컨 있을 때는 무더위를 선풍기로 버티니 아이 등에 울긋불긋한 땀띠가 났다. 에어컨 있을 때는 땀띠도 안 났는데... 속상했다. 엄마와 냉랭한 관계 속에서 에어컨을 사라고 권유할 수도 없었고 내가 흔쾌히 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위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전에는 에어컨 바람 쐬며 시원하게 잤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상황도 100% 만족할 수는 없구나.' 싶었다. 더위를 견디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와 같이 지내는 것보단 나았다. 덥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아이는 친정에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나자 매일 자기 전에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왜 내 장난감 망가뜨린 거야? 아빠가 왜 그런 거야? 그때 삼계탕 왜 버린 거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 몇 주를 지나 몇 달 정도 그 일은 매일 계속되었다. 울며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어린 나이에 무서움을 넘어서 공포와도 같은 일을 겪게 한 것이 미안했다. 다른 평범한 아빠였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인데 말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아이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면 첫 번째는 그 일은 아이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고, 두 번째는 그 일이 아이의 마음 안에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기로 했다. 마음을 토닥여주는 게 전부였다.
“그래 너무 속상하고 무서웠지? 화가 났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그건 아빠가 잘못한 거야.”
몇 달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아이는 그 말을 하며 우는 일을 멈췄다.
그 일이 아이 안에서 소화가 좀 됐나 보다.
그럼에도 아이는 엄마와 내가 말다툼을 하며 목소리가 조금 커지기만 해도 “무서워~”를 말하며 울기도 했다. 싸우는 분위기가 싫은 것 같고 큰 소리에 민감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의 마음이 편해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집에서 4일 재택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날이 오면 아이는 나에게 가지 말라며 온갖 짜증과 떼를 썼다. 출근날마다 아이를 떼놓고 나오는 게 힘들었다. 타이르다가 안되니 아이에게 화내게 되고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를 떼내느라 몸으로 실랑이도 해야 했다. 그날 하루에 쓸 에너지를 아이와 아침에 다 소모하는 느낌이었다.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올 텐데 왜 그러는지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야 좀 보인다. 아이가 많이 불안했구나. 그 당시에는 시간 맞춰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의 마음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출근을 해서 팀장님과 아침일로 힘들었던 마음을 이야기하면 이가 제일 중요하니 아이 먼저 챙겨라. 11시까지 와도 된다. 나도 아이들 어릴 때 일하느라 잘 못 챙겼는데 그게 제일 후회된다."라며 선배 워킹맘으로서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는 조언을 해주셨다.
집에 엄마가 있으면 눈치가 보이고 친정이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아이 유치원 끝나면 아이와 산책도 하고, 계곡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간식도 먹으러 가고, 아이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가족보다 아이와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일을 하면서 번 월급으로 빚을 갚기 시작했다. 풀타임 근무가 아니었기에 120만 원 정도 되는 급여로 아이와 내가 생활하기에 모자랐지만, 그중에서도 매달 50~60만 원 정도 되는 빚을 갚으며 남는 돈을 쪼개서 살았다. 살 것, 먹을 것을 줄이고 줄여야 하는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내 것보다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 사게 되고, 무조건 가격이 제일 저렴한 걸로 골랐다. 항상 부족하게 살다 보니 내 삶이 구질구질한 것 같고 자신감도 떨어지더라. 그래도 어쩌랴. 일단은 살아야지.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였다. 나에게 삶의 질은 배부른 소리였고,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생존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은 마음에 밤에는 아이를 재워놓고 상품등록하는 부업을 하기도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작은 보탬이 되기도 했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덜 불안했다. 하지만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니 매일 피곤했다.
엄마는 내가 돈을 쓰는 것에 민감했다. "급여받는 대로 다 쓰면 안 되고 저축해야 해."라며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의 의도는 안다. 딸이 나중에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엄마도 아빠가 모아논 돈이 없는 상황에 결혼해서 돈을 아끼고 아껴가며 모으느라 고생하며 사신 것 또한 안다. 아이의 필요한 물건들을 배송시키면 엄마는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쓰냐며 저축은 하고 있냐고 나무랐다. 저축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고민고민 하다가 꼭 필요한 걸 저렴한 걸로 골라서 산 건데.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엄마의 생각만으로 나를 재단하는 게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남동생은 친정 근처로 따로 집을 구해서 나갔는데, 동생 대신 동생이 얻은 집에 나와 아이가 나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시는 사람이 북적북적한 곳에 사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도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