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상당히 권장되는 행위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독서를 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을 많이 읽으면 지루한 때가 오고 다른 분야로 옮겨가는 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알기위해 하는 독서는 재미나 흥미위주로 하는 독서의 성격과 그 결이 매우 다르다. 그 이유는 고통스러운데 개선해야되는 것을 발견하고 또 발견해고 고치고 또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독서의 과정이 때로 내가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속에서 헤매는 게 좋다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내가 내 자신을 알기 위해 독서를 누군가에게 하라고 한다면 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라 할 것 같다.
지금은 한물이 간 것인지 아니면 한물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인지인 '자존감'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자존감은 뭐라 딱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떤 행위를 해야만 자존감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이 나에게도 적용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도 모르고 타인을 사랑하기에 앞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기에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것과 관련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책을 추천할 것 같다.
루이스 헤이는 고난과 역경이 많았던 사람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썼다. 사실 이 책 말고 다른 책도 있으나 책을 읽으면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나는 삶의 고통과 고락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학과에서 정약용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유배나 가면서 거기서 책을 뭘 그리 써냈는가? 원천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러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선비는 모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사서삼경을 읽게 되었다. 사서삼경이라고 하는 것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주역을 말하고 논어 중 학이시습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말을 일고 일신우일신이 떠올랐다.
학이시습지라고 하는 것은 배우고 또 익히는 것, 일신우일신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자신을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인간이 때로 얼마나 개같이 멍멍이가 되어 자전거를 타고 술을 마신 채 널부러진채 있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서 다시 자전거 타고 집에까지 갈 수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의 그 이상스러움은 나 역시도 토나왔기에 때로 멀쩡한 사람을 보면 그사람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은 책속에 있는 사람마저도 나와 같은 이상함을 목격해서였다.
유성룡은 이순신과 같이 전쟁을 겪은 사람인데 징비록을 읽다보면, 어떻게 하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은근히 되게 많이 나온다. 이것을 보면서 그사람은 사람을 평하기 좋아하는 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보면서 누군가 까내리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 행위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과정에서 나의 그 사특한 부분이 다 정상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삶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안다고 하는 것은 나를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사실 나를 알고자 책을 읽으라 했는데 책조차 읽기 싫다면 내자신이 싫은 것이기에 내 자신을 알려는 노력부터 시작이 되야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