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 3등으로 졸업한 우등생의 말로末路

by 김까치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머리로 그리고, 상상하며 배 한척을 띄워 가고 싶은 마음과 같다. 그렇게 가서 다다른 곳은 맥주를 4캔씩 따도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 속에 나를 던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때로 나는 나를 이토록 술기운에 일정기간 젖어들어 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걸어온 길에 깃발을 꽂아 살펴보니, 그것이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세상이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응분일수도 있고, 때로 어떻게 했어야 했다고 하는 것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추억팔이를 하면서 살기에 인생은 짧고, 오늘 이시간도 매초와 매분이 시계바늘로 스쳐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멈출 때가 된 듯 하다.


학점.JPG


나는 12학번으로 지금 학교에 입학한 사람이 돌이켜본다면 화석중 아주 고생물 화석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상시 잘할 수 있는 것과 평상시 잘할 수 없는 것의 차이가 아주 극명하게 보였는 데, 여기서 우리 부모님과 부처님, 하나님을 다 걸고 맹세할 수 있는 것은 족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쓰는 언어로 흔히 아웃사이더, 아싸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유대관계가 그리 깊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생활을 재밌게 보냈을까?에 대해서는 깜깜이로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성적표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경영학과에 입학한 것이 아니었고, 복수전공을 선택해서 굴러들어온 돌인데 있는 돌을 쳐버렸다. 내가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기로 시작한 시점은 2014년 2학기부터였다. 근데 중간에 한 학기빼고 모두 4.5/4.5를 맞았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1등이었기 때문에 학비가 면제 되서 다닐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환경상 경영학과 속 사학과는 1~5명 사이였는 데 그 사이에서 경영학과 학생들도 눈여겨볼 만큼의 성적을 냈다고하는 것은 내가 이 학문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된다.


나아가 일반적인 선택을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한 적이 없다. 물리치료과에서 사학과로 옮겼고, 사학과로 경영학과로 복수전공을 하는 과정에서 그 비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유럽여행을 20박 22일 다녀왔기 때문일 것이다. 캐리어가 영국에 입국한 첫날부터 고장났기 때문에 이 고장난 캐리어 문제를 가지고 독일에 갔을 때 어떻게 해야될지를 고민을 했었고, 이것과 관련해서 아주 값싸고 질이 좋은 캐리어를 사서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과 관련해서 돈을 헤아리면서 어쩌면 이 돈이 어떻게 움직이지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사학과 교수님과의 면담도 영향이 있었다. 나는 돈이 없는 역사학과 전공생이었기때문에 이후에 이어질 대학원과정에 우리부모님이 돈을 대주실 거라는 것을 애초 배제했고 그래서 역사학도로 대학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역사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역사학이 근간이 되지 않는 삶을 산 적은 없다.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도 어쩌면 역사학은 그저 유물이 모셔져 있고 그 유물을 보고 지나가는데 지나지 않는다면, 내가 본 역사학은 누군가의 삶속에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의 기록에 그것을 기록하고 다시 봄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었고, 내가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멘토를 꼭 찾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멘토는 정부기관에서 돈을 주고 뽑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점, 졸업하고 난 다음의 시점에 취업을 해주겠다, 혹은 대학원 진학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약속을 한 브로커처럼 구는 사람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점에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선량한 이웃으로, 착한 언니로, 똑똑한 오빠로 있을지 모르나 결정적인 순간에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졸업하고 나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이율배반적인 감성과 감성과 이기적인 생각속에 그들이 헤매고 헤매지 않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있었고, 내가 공부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때마침 나를 사특하게 현혹시키는 '오버워치'도 나왔었고, 사무직만 진리라고 나또한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총집합된 나의 인생은, 92년생이라는 점이 통탄스럽기 그지가 없다. 돈이 없는 92년생 김까치는 돈이 없는 상태로 방랑자가 되어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답을 궁구히 찾았고, 결국 직업의 전선에서 CEO와 노동자를 법으로 잇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경험을 갖춘 상태로 직업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직업을 찾아주고, 특정 누군가에게 줬던 따뜻한 위로의 편지를 이제는 누군가와 나눠서 가지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또한 우등생으로 살아왔고 우등생으로 살면서 법학전문대학원을 염두해두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을 가기위해 본 LEET의 점수는 언어이해 8개, 추리논증 10개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답이 없어보였고 PSAT을 봐서 7급 지역인재도 생각했으나 답이 없는 상태여서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것이 정당하다고 보지도 않고, 오히려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구몬교사로 일을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것은 교육의 단계가 다 커리큘럼으로 되어있고 어렸을때부터 그런 읽기의 교육을 착실히 받아온 아이들은 수능을 잘보는것은 기본이고 수능의 버프를 받아 즉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행시로 가는 것도 매우 쉽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시부활을 주장했으나 글쎄. 사시가 부활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끝일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법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맞으니까.

작가의 이전글연애 포기했고, 결혼도 포기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