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 부케순이, 축사 해줬는데…….

by 김까치

ISFP. 나는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없는 에너지가 깨어버린 항아리처럼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소수의 인맥만 내 울타리 안에 있으며, 집중 관리를 받는다. 인맥 또한 자신의 자산이 되는 세상 속에 약점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없는 인맥 다 없어지라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솎아내는 것도 일이기 때문에 △인 사람을 남겨두는 경우도 있었다.


[ 잘 지냈어? ]

그동안은 뜨문뜨문 오던 연락이 뭔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많아진다. 속셈을 숨긴 그들이 의뭉스럽다.

[ 나 결혼해. ]

[ 와, 축하해. ]


아, 원래 연락이 많던 친구면 뭘해줄까를 고민하게 되지만, 아닌 친구는 벌써부터 고민이 산처럼 쌓인다. 평상시 돈관리에 쥐약이던 나는 XX은행 어플에 들어가 잔고를 헤아렸다. 부처님이 현실에서 고행을 하듯, 나는 내가 입에 풀칠을 할 만큼만 일을 했고, 나머지는 부모님의 자산을 냠냠 갉아먹는 애벌레였기 때문에 벌써부터 ‘축의금’이 걱정되었다.


[ 와줄 수 있어? ]


싫어! 너를 위한 돈을 내면, 난 또 힘들게 일을 해야 돼. 집도비가 아니라 진짜 회사의 노예 도비가 되야한단 말이야. 하지만 인성이 쉬어터진 김밥처럼 굴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그들이 결혼을 끝날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상의, 하의, 가방, 엑세서리, 구두, 닳아 썼다면 새로 사게 다는 화장품까지. A와 B를 어림하다가 A가 더 좋은 것인데 B가 가격이 싸다고 B를 선택하게 되는 것에 대해 돌아오는 것은 또 비교였다.


‘ 남은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결혼을 하러 가는 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했냐. ’


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라 결혼식 끝나고 남은 나에 대한 비탄이 누군가 결혼식을 할 때마다 놔두면 음식물 쓰레기같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누군가의 결혼식을 망치라고 한 적은 하늘을 맹세코 없었다. 구두를 신고 2~3시간 걸려 지하철을 타더라도 결혼식에 방문해서 진심으로 축하해줬고, 축의금을 냈었다. 나아가 3명의 결혼식 수발을 들은 전적이 있다.


먼저 축가. 그녀는 허풍쟁이였다. 결혼을 안 한다고 했던 사람이었고, 자유분방하던 스타일이었다. 뭔 바람이 불었는 지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하며, 결혼식에서 뭘 해줬으면 하는 눈치를 계속 보여주었다. 축의금이 없어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를 꼬득여 동참시켰다. 막상 하겠다고 해놓고 축가전문가수가 아닌 답이 없는 노래 실력에 되게 스트레스 받았다. 선곡은 ‘데이브레이크의 좋다’였다. 원래는 미혼 친구가 미혼에서 나가니까 Steelheart의 She’s gone’을 부르겠다고 했는 데 그녀가 질색팔색을 했다. 농담이었으나 열받아서 진심이었다.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서 축가 연습을 하고, 그 축가에 동참했던 친구는 “야. 내 결혼식에도 해줘. ”라고 약속을 받았으나 그녀는 “나는 너 같은 딸이면 안 돼! ”라고 막말과 경찰조사를 한 번도 안 받아봐서 그런가. 그 조사 이후에 깨진 멘탈 수습중인 나에게 계속 축사를 써달라고 닦달하여 정이 다 털려 절교했다. 그 이후로 그녀인지, 그녀의 사칭이 스토커처럼 앞에 나타났었다.


두 번째 부케순이. 나는 그녀에게 정말 할말이 많다. 내가 축의금도 내고, 부케도 받아주고, 부케 받아서 캔들로 만들어줬는 데 왜 연락이 없어진 건지 정말 궁금하다. 그녀 역시도 갑자기 불현듯, 번개에 콩 구워먹듯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전까지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으로 얘기를 안하더니, 갑자기 왜 또 결혼에 대해서 예찬론자가 되었는 지 의문이 든다. 신혼여행인지 나부랭인지를 일본으로 가는 데 갑자기 집에 있는 고양이가 걱정된다고 했다.


[ 와서 고양이 밥 줄 수 있어? 고양이 맡길 데가 없어서……. ]

[ 괜찮아. 나 고양이 좋아해. ]


밸도 없이 주인 없는 신혼집에 고양이 놀아주는 사람으로 파견됐다. 고양이가 그리 성깔이 있는진 몰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느낌은 나의 착각일까. 낚싯대로 놀아주고, 똥도 치워주고, 같이 TV도 보고, 다른 장난감을 갖고 또 다른 터널로 유인해서 놀아주었더니 몇 시간 뒤 고양이가 문 앞에서 기다렸다. 가지말라는 것 같았다. 가려고 했는 데 남은 고양이가 불쌍해서 안 갔다.


주인 없는 집에 편히 잘 수가 없어서 쇼파에서 잠을 잤다. 뭔 힘이 남아돌았는 지 고양이가 캣타워에 미친 듯이 올라가고 점프뛰고 난리치다가 잠깐 잠이 든 내 얼굴을 쳐버리는 것이 홈캠에 찍혔다. 맞는 지도 몰랐다. 그 뒤로 고양이가 잘 지내는 지 안 물어보게 됐다.


마지막으로 축사. 내가 축의금도 주고, 아름다운 축사낭독도 해준 사람이다. 경우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우(境遇), 사리나 도리. 그녀는 내가 먼곳에서 오니까 숙소도 잡아주고, 바쁜 와중에도 솔찬히 안부를 챙겨주었다. 나는 그녀와 오래 우정을 유지하고 싶다. 그녀 역시 아이를 낳게 되니까 동료가 필요했던 모양인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 얼른 안정을 찾고, 짝을 찾아~ ]

[ 아직 안 급해~ ]


그러한 작은 대화, 별거 아닌 것들. 사소한 요소가 향후 관계가 이어질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언제든 연락은 환영한다.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야 되는 데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없다면, 아무리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되어도 오래 가기가 어렵다. 사실상 관계라고 하는 것은 Give & Take이고, 너무 안맞아서 오래 갈거라고 생각을 못한 세 번째 친구가 가장 오래된 베스트 프렌드가 된 것을 보면, 사람 일은 모르는 일 같다. 그래서 나는 챙길 사람만 챙기기로 했다. 내 자산이 그때보다 늘었으나 나 역시 인간관계에서 상인의 도를 찾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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