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18

18 별이 희망이다

by 현목

18 별이 희망이다



봄비는 별 사탕이 되었습니다. 알이 그다지 굵은 것은 아닙니다. 잔잔한 별들이 부서져서 된 것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별이란 하도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의식 속에서는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요. 그들이 우리의 소망을 상징하여 항상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흑암만 있고 반짝이는 별들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하고 시든 풀처럼 고꾸라지고 종내는 다 죽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별들이 어느 날 서로 부딪쳐서 산산조각이 나서 봄비가 되어서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별 조각 아니 봄비 조각들이 아무런 부피와 무게도 없이 어딘가 내리면 그곳에서는 생명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봄비가 그런 거창한 대의명분을 가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겨우내 말랐던 식물이나 땅에 대해 한줄기 생명수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봄비는 오늘은 자기들이 오는 길을 배반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 보리라는 것입니다. 지구 중력이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 그런 모험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결심을 한 것이지요. 하늘을 향해 움직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제껏 가진 모든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습득해야 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는 동력을 얻자 생각보다 쉽게 하늘을 향해 떠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봄비가 이렇게 생명을 건 모험을 하려고 한 것은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계절이 주는 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봄비는 이제는 너무 산다는 게 타성이 젖어서 어떤 기쁨도 생명감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지난 세월 너무 익숙하게 인이 박혔던 길에서 벗어난 다는 게 그로서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지요. 봄비에게 친구가 생겨서 그나마 그런 일탈을 시도했을 겁니다. 바람이 아니었다면 그로서는 꿈도 못꾸고 다시 그 옛날의 단조로운 생활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물론 단조로운 것이 다 악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조롭고,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이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오늘은 어쨌든 봄비의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늘로만 치솟을수록 봄비는 외롭다고 느꼈습니다. 기온도 더 떨어지고 보이는 것은 암흑 천지였습니다. 봄비는 이 우주의 근본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기쁨에 자신의 고독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바람과도 작별하고 공간에 부유하는 자신의 별들만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렇게 위에서 은하수처럼 빛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밑을 내려다보자 아득히 보이는 봄비가 떠나온 고향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그 곳으로 갈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속에서 봄비는 겉의 옷부터 얼기 시작했습니다. 팔다리를 점점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전신을 타고 들어오는 한기가 자신의 신경망 곳곳으로 전기처럼 삽시간에 흩어져 왔습니다. 봄비는 온 몸의 감각이 점점 둔해져 갔습니다. 아까부터 참지 못할 통증도 이제는 무덤덤해졌습니다. 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무감각은 해일처럼 목을 향해 쳐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숨도 꼴깍하고 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꼈습니다. 봄비의 마음은 그래도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으나 그 마저도 동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봄비는 하늘로 올라온 것을 그제야 후회가 아니라 기뻐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반짝이면서 자신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은 그로서는 작은 영광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이제 완전히 얼어버렸지만 그의 정신만은 맑고도 차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