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풍경과 시』 /許萬夏

‘신은 풍경이라는 시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by 현목

오래 전에 허만하 시인의 시집 네 권과 산문집 『청마 풍경』울 사놓고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는 미안하고 무례한 말 같지만 의사(병리학교수)이면서 시를 쓴다고 해도 학문을 하는 여력에 어쩌면 아마추어적으로 쓰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억측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것이 엄청난 오류였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통감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젊어서 시를 공부하던 무렵 나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 그(스티븐 스펜더)의 시편들과 평론을 번역하여 발표했다」 놀랍게도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무렵이라고 하며 『시와 비평』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나는 풍경을 자연의 시라고 생각한다. 신은 풍경이라는 시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우리는 길 위에서 그 시집을 읽는 것이다. 우리가 읽는 것은 말의 목적(시니피에)이 아니라 아름다움(표현)이다」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은 아니 시집도 그렇지만, 풍경(그 안에 길도, 고갯마루도 포함되는 것이지만)에 대한 시정과 산문적인 술회를 수도 없이 말합니다. 따라서 허만하 시인 가지고 있는 풍경에 대한 인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청마 풍경』이라는 산문집의 自序에 잘 나타나 있다고 자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풍경이 우리 내부로 걸어 들어와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 낯선 본질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산다는 것은 낯선 것을 받아들여 낯설지 않은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낯선 것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길 위에 선다」


「풍경이란 수동적으로 눈에 비치는 영상이 아니라 숨어 있는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소산이란 것이 내 생각이다. .. 하나의 풍경을 찾아내는 과정은 거의 시 쓰기와 같다. .. 풍경은 형이상학적 가치다. 그것은 경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풍경을 찾아 길 위에 선다」


모든 시인이 다 이렇게 풍경에 대해서 시를 깨닫고 작시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허만하 시인 자신이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풍경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시적 영감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또 결과물을 얻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그가 어떻게 풍경을 대하고 거기서 어떤 방법으로 시적 긴장감을 얻어내고 시적으로 표현하며 그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아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보면 알 수 있지만 허만하 시인은 풍경이 주는 어떤 정서를 단순히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형이상학’이라는 데서 시정(市井)의 흔한 서정시와 격을 달리한다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허만하 시인은 ‘풍경‘이라는 어원을 원래는 서구에서 유래되어 일본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보(712~770)의 시에서 풍경이란 단어를 보고 놀랬다고 합니다. 「正時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바로 이것이 강남의 멋진 풍경 꽃잎 지는 이 철에 그대 다시 만나다니」

「돌계단을 내려설 때 문득 나의 시에는 형용사구가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허만하 시인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도 그것이 평소에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런 언급을 보자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의 시에서 보면 만연체처럼 긴 형용사구를 자주 만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허만하 시인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형용사구가 내용이 없는 빈 그릇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시적 긴장이 충일하고 감상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를 완성하는 데 조금도 허황된 수식어로 전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감동시킨 구절은 이 저서(『볼프스베데』)에 있는 다음과 같은 풍경에 관한 그의 성찰이다. ‘우리들은 형상을 생각한 데는 길들여 있지만―풍경에는 형상이 없다. 퐁경은 얼굴을 가지지 않는다―바꾸어 말하면 풍경 전부가 하나의 얼굴이고, 그 얼굴의 광대무변함 때문에…… 사람에게 두려움과 우수의 느낌을 심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릴케를 가리킵니다. 볼프스베데는 독일의 브레멘과 함부르크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한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풍경을 보면 무언가 형상(shape, form)의 고정관념을 가지려고 하지만 풍경에는 그런 형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보들레르 시 『악의 꽃』에서 인용합니다. ‘향과 색과 음향이 서로 응답한다’ 릴케의 시 「음악에」에서도 같은 종류의 말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옮겨가는 변화인가?―귀에 들리는 풍경으로’, 서로 다른 감각을 음악으로 이어주는 방법은 브들레르에 이르러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정지용의 시에서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라는 구절을 허만하 시인은 떠올립니다. 저는 이 구절이 정말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청각에 촉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릴케가 『볼프스베데』에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중의 모순되는 요청을 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연을 응시하는 일과 다시 또 자연 앞에서 눈을 감는 일이다」 릴케의 「풍경」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성문들과 아치들은 평화롭다/투명한 구름들은/늘어선 창백한 집들 위에서 물결친다/집들은 벌써 어둠을 한껏 빨아먹었다/그러나 갑자기 달로부터 한줄기 빗살이/미끄러지듯이 흘러 나왔다, 환하게, 마치 어디선가/대천사가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것 같다’


풍경에 대한 릴케의 이 두 가지 태도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풍경을 눈으로 보고 관찰을 합니다. 그 순간 그림을 눈에 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상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려면 눈을 감아야 하지 않을까요. 릴케도 「풍경」이라는 시에서 상상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옵니다. ‘물결친다, 빨아먹었다, 달로부터 한줄기 빗살이, 칼을 빼어든다’ 이 모든 것이 눈을 감고 상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당신의 내부를 찾아가는 길뿐이다」라고 릴케가 말했다고 합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것보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의 변화를 귀중하게 여기는 우리 나들이에는 이런 하찮은 일이 못내 반가웠다」

「나는 타성화한 나의 일상성과 지속적으로 헤어져야 한다」


인생의 목적지가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사실 그 누구도 모르고 다만 우리는 어느 것으로 믿으려고 할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은 ‘풍경의 변화’를 귀중하게 여기는 일뿐입니다. 그러나 풍경을 그저 바라만 보아서는 의미 있게 살아나오지 못합니다. ‘하찮은 일’을 한다는 것은 풍경의 나뭇잎의 초록의 변화, 빛의 스펙트럼, 그늘, 바람의 촉감, 향기의 설렘, 이런 것들을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비로소 현현합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랭보의 견자(見者)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랭보가 그의 스승인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견자란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인습적 관념과 함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영혼을 인식해야 합니다. 신의 목소리를 내는 예언자가 돼야 하고 숨겨진 모습을 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견자는 기괴한 영혼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랭보는 감각의 착란과 언어의 연금술에 의해 현실과 다른 세계의 비전을 제시한 천재 시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 허만하 시인이야말로 또 하나의 ‘랭보’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새벽의 산길을 걸으면 숲이 짐승처럼 숨 쉬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믿는다. 시란 그 숨결 소리를 말로 잡는 것이다. 바람은 언제나 불완전한 말의 틈새로 새어나가고 만다. 시인은 상투적인 무리들 가운데서 고유한 외로움을 안고 바람처럼 풍경을 지나는 백년 과객이다」


시인이란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설명입니다. 숲의 숨소리에서 더 나아가 바람의 숨소리, 꽃의 숨소리, 잠자리의 숨소리…… 모든 사물의 숨소리를 듣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 하는 일입니다.


「대원사 경내는 여전히 정갈하였다」


수도 없이 나오는 사찰 이름 가운데 대원사가 없다는 것에 고개가 갸웃거리다가 드디어 대원사가 나왔습니다. 대원사에 이르는 지리산 계곡은 제가 비봉산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다니는 곳입니다. 이곳은 일주문에 方丈山 大源寺라고 쓰여져 있고 비구니의 수행도량이라고 합니다.


1985년 10월 말에 진주로 내려와서 봉직 생활을 하는 중에 주말이면 친구가 대원사 계곡으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처음 그곳에 가자 저는 세상에 이런 계곡도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계곡에 들어가서 버너에 고기를 구워 먹고 소주도 한잔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알딸딸하여 따뜻한 바위 누워 파란 하늘로 걸어가고 있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계곡내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 대원사 계곡의 적요를 자물쇠로 채워놓았습니다만.


「길은 우리 몸의 일부다. 길은 우리들 몸(경험)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인식의 대상이 되는 일이 드물다. 길은 성찰을 계기로 인식의 수면 위에 떠오를 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길위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인은 상식적 일상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에 산다. 나들이는 그런 비상을 제공해 준다. 지난해 나는 “시의 현장은 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언표의 배경으로 길은 새롭게 바라보는 일과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일의 변증법적 통일을 끊임없는 과제로 느끼는 지난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길에 대한 허만하 시인의 말을 길게 인용했습니다. ‘길’은 이 산문집의 제목의 첫글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어떤 면에서 이 책의 핵심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풍경의 다른 말은 길입니다. 길의 시학은 풍경의 시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길에 서기 전에는 일상 속에서 상식적인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울타리를 떠나는 것이 길이고 그 길에 서야 이제껏 보이지 않는 사물이 보입니다. 그것이 모순•대립•종합으로 가는 변증법입니다.


「나는 아직도 시의 뿌리에 성찰(사유)이라는 이 보수적인 언어를 박아두고 싶다. 반성해 보건대 당분간 내 시는 외형에 드러나는 가락에 기대지 않을 것이다. 운율은 깊은 강물처럼 안으로 흐르면 된다. 나는 사유의 깊이가 따르지 않는 단순한 기교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길은 끊임없이 있어야 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길 위에 있다는 것은 느끼기와 생각하기의 상응에서 비롯되는 실존의 각성이다」


허만하 시인은 시에서 단순한 리듬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깊은 사유를 요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적 이미지가 단순한 정서적 이미지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인간 삶에 지혜를 주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이 책을 통하여 그가 꾸준히 강조하는 포인트입니다. 이런 맥락이라면 어쩌면 청마에게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마도 감성보다는 지혜를 아포리즘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인제길에 들어섰을 때 문득 시에 관한 생각이 한오리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설악산 한계령 바위 빛깔과 황매산 바위 빛깔의 차이같이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는 일처럼 하찮은 일이 시라는 단상인 것이다. 아니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감수성의 단련이 시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하찮은 일’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기 위해서는 세밀한 관찰이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이미지와 유사성을 가지는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는 은유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뉘앙스도 결국은 은유적 사고방식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장 세잔은 릴케에게 시의 길에 있어서의 전향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그때까지 릴케가 기대어 왔던 상투적인 서정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세잔이 모네를 두고 “모네는 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을 때, 곧 이어서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세잔은 숙련의 극한까지 간 모네의 위대한 눈에서 결여를 보았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세잔은 벌써 눈을 넘어섰던 것이다. 마음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세잔의 회의』에 인용되어 있는 이 거인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그러므로 풍경은 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내 자신은 풍경의 의식이다.” 이것은 릴케가 말한 마음의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세계를 구형이나 원추형 또는 원통형으로 환원하는 것은 바깥 세계의 껍질을 보는 것과 그 차원이 다르다. 풍경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존재의 내부로 파고들어 비정한 구조를 잡아내는 경지다」


비록 모네의 눈은 위대했지만 그것은 시각적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뿐입니다. 이런 경지는 자칫하면 상투적인 서정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허만하 시인은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세잔은 사물을 구형, 원추형, 원통으로 환원하여 봄으로써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됩니다. 시인도 마찬가지라고 허만하 시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을 보면 릴케에 대한 언급이 대단히 많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분의 시작(詩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저는 릴케의 시를 읽으면 이제까지 왠지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군데군데 영탄조가 있어 조금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허만하 시인이 릴케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저도 다시 릴케의 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겠습니다.


릴케의 첫시집 『인생과 노래』에 수록된 한 6행시라고 합니다. ‘나에게 누가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내 삶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를/나는 비바람 속을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닐까/물결이 되어 나는 못에 사는 것은 아닐까/그리고 나 자신은 빛 바래어 창백하게/이른 봄 추위에 떨고 있는 저 자작나무가 아닐까’


릴케 시의 한 특징인 ‘세계내면공간’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두 가지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육신이 활동하는 공간이 있고 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의식이 작동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내면공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가 어쩌면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비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내면공간에 대해서 허만하 시인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릴케는 후기에 가서 세계내면공간이란 어휘를 그의 작품 안에 그대로 사용한다. ‘모든 존재를 뚫고 하나의 공간이 퍼져 있다/세계내면공간이. 새들은 조용히 날아간다/우리들을 뚫고, 아아 자라나려는 나/내가 바깥을 보면, 한 그루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시는 ‘사랑이여, 내면 이외는 어디에고 세계는 없다’라는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제7 비가」에 나오는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 사물은 시인의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뚜렷한 형태를 가지고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안과 바깥을 가장 순결한 근원적 감성으로 총체적으로 느낄 때 세계는 오히려 낯선 것이 되는 게 아닐까」


비슷한 말을 독일의 신비주의자 야코브 뵈메(1575~1674)가 말합니다. 「사람은 ‘안 세계’와 ‘바깥 세계’의 두 세상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 안에는 ‘안’과 ‘바깥’이라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갑자기 제게는 세계내면공간이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에게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사물도 죽은 무생물이 아니라 인간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스위스의 라론 마을의 언덕 위 시골 교회에 릴케의 유명한 묘비명이 새겨진 묘비가 있다고 합니다. 1926년 51세에 릴케는 장미꽃을 자르다가 가시에 찔리어 죽게 됩니다. 그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장미여,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수많은 눈시울 밑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즐거움이여.’ 여기서 허만하 시인은 눈시울을 포개어져 있는 장미의 꽃잎이라고 보았고 한송이 장미가 릴케의 보이지 않는 정신의 암호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묘비명을 보면서 언젠가 올 저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진주에 1985년 10월말에 왔습니다. 1988년에 개업을 하고 남들처럼 위대한 슈바이처 정신이 아니라 먹고 사는 데 급급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생업에 지칠 때도 있어서 1992년부터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비봉산을 자주 올라갔습니다. 그 산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산이 너무 허접해서 인적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비봉산의 어느 지점을 가면 그 당시 벚나무 묘목들을 심어놓았는데 거리는 오백미터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 그 벚나무 둥치가 제 팔 한아름이 되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유골의 반은 여기다 묻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봄이 되어 벚꽃이 피면 꽃을 보고 저 멀리 펼쳐져 있는 원경의 고요를 즐기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때는 제 묘비명을 지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한 세상 어정쩡하게 살다 갑니다. 실례했습니다’라고요.


「바슐라르는 상상력이란 통상 생각하는 것처럼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각한 이미지를 데포르메하는 능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허만하 시인 자신을 바로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글을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한 묘사(시각적 묘사, 심상적 묘사)가 아니라 어떤 사실을 개념화한 추상적인 단어를 구사하여 설명합니다. 바슐라르는 감각으로 지각한 이미지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데포르메(나중에 허만하 시인은 메타몰포시스라고도 말합니다만)하여, 다시 말해 그 이미지를 비틀어 변형시켜 통상적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로 형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 허만하 시인이라는 것을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통감하는 바입니다.


이 산문집을 읽다가 창원의 불모산 성주사(聖住寺)라는 절 이름을 보자 갑자기 허만하 시인은 절이라도 순례를 하는지 왠 절 이름이 이렇게 많지 하는 생각과 함께 책에 나오는 절 이름을 다 헤아려보자고 했습니다. 창원의 聖住寺, 위천 麟角寺, 오대산 月精寺, 능가산 來蘇寺, 구례 華嚴寺, 청도 雲門寺, 용문산 龍門寺, 월출산 道岬寺, 김천 靑巖寺, 하동 雙磎寺, 해남 大興寺, 사천 多率寺, 순천 仙巖寺, 속리산 法住寺, 해남 美黃寺, 구미 桃李寺, 無量寺, 설악산 陳田寺, 비슬산 瑜伽寺, 하동 七佛寺, 지리산 大源寺, 화순 雲住寺, 강진 無爲寺, 남평 雲興寺, 남원 實相寺, 월출산 天皇寺, 진짜 많네요.


「섬진강이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굽이마다 강기슭에 그 모습을 나타내는 넓고 깨끗한 모래사장과 때로 잔잔한 물길이 얼비치는 모래바닥 위를 흐르며 어른어른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만하 시인은 대구 출생이고 병리학을 전공하고 나서는 거의 부산에서 주거하신 분인 것 같은데 섬진강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갑자기 섬진강의 한자가 궁굼해졌습니다. 섬은 蟾으로 뜻은 두꺼비, 달 또는 달빛, 연적(硯滴)으로 나옵니다. 진은 津으로 나루, 나루터, 기슭입니다. 두꺼비가 있는 기슭의 강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달빛이 비치는 기슭의 넓고 길게 흐르는 큰 물줄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 곁에는 언제나 남강이 흐르고 있으나 섬진강 같은 정감이 들지 않습니다. 아마도 주위의 도시적인 풍광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섬진강 하면 아련한 강줄기의 휘어짐과 하늘이 거울처럼 비치는 반짝이는 강 표면, 따뜻한 모래사장이 납작한 평면이 되어 아득한 지리산 속으로 거꾸로 흐르면서 사라지는 것이 연상됩니다.


「책읽기는 나들이와 같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풍경(경험)을 만나는 신선한 충격의 세계에 들어가는 즐거움이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행도 그렇거니와 독서도 어려움을 이기는 인내를 요구할 때가 많다」


책 읽는다는 것이 좋다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서 그랬는지 이제껏 책과는 친하게 지낸 셈입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돌아보면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척했습니다. 책을 사다만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서가에 있는 책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 나이에 후회되는 것은 어릴 때 좀 더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산발적으로 읽어서 어떤 흐름이나 맥을 잡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은 읽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삼매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 차면 다른 짓을 해서 포맷을 해야 다시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루퍼트 브루크(1887~1915)라는 인물을 소개하는데 처음 보는 인물이고 28세 때 종군하다가 병사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좋은 일이 있다. 첫째는 시를 읽는 것, 둘째는 시를 쓰는 것, 세 번째가 가장 좋은 일은 시를 사는 것이다’ ‘나는 천 마일을 걷고 싶다. 천 편의 시를 쓰고 싶다. 천 잔의 맥주를 마시고 싶다.’ 그는 그의 소원대로 시를 살다가 간 시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걷기를 좋아하지만 천 마일은 못 걸은 것 같고 시는 2백편은 썼을까, 맥주는 브루크의 소원대로 천 잔은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 인용이 불가피해진다. 언어란 인용의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르헤스의 선구적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텍스트는 또 하나의 다른 텍스트를 흡수 변형한 것이다’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의 문학 이론도 수긍이 된다. 하나의 텍스트가 태어날 때는 그 텍스트는 이미 있었거나 또는 공시적으로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독창적인 글을 쓰라고 많이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독창적인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 전대의 인용 위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확장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그의 독창적인 발견이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아인슈타인 앞에 그와 비슷한 발견한 업적들이 많이 있었으리라 상상됩니다. 서양 고전음악을 베토벤과 기타라고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존재인 베토벤도 기실 하이든을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짓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이미 저는 허만하 시인이 말한 것을 수도 없이 인용하고 있으니까요.


「제주도 섭지코지 언덕 위에서였다. 구름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눈부신 햇살 둘레에서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어스름을 앞질러 치자빛으로 물든 구름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휘어진 지평선을 따라 미끄러지던 구름은 다시 바람 속에 자취를 감춘다. 더 먼 세계를 동경하는 영원한 순례자의 길」


‘구름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라는 글을 보자 저도 모르게 앗!이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구름을 그렇게 평생토록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못했지 하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섭지코지라는 지명은 처음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바다와 파란 하늘과 등대, 등대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만약 섭지코지에 서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로웠다. 햇살이 너무 세서 눈부셨다. 코발트색 바다가 종이처럼 평평했다. 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지렁이 등처럼 구불구불하고 바람이 내 귓가로 스쳐지나갔다’ 뭐 이런 정도로 썼을 것 같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문장과 저의 문장은 실력 차이가 현저합니다. 이것은 바이올린을 어렸을 때 배웠는가 아니면 나이 오륙십이 되어 배웠느냐의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허만하 시인처럼 쓰려고 하면 다시 저의 정신을 쥐어짜서야 겨우 이 정도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은 언제나 구름을 따라간다. 눈부신 햇살은 코발트색 바다에 닿자마자 튀어올라 반짝이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이 되자 어스름은 치자빛 노을 속으로 제 몸을 녹여든다. 구름은 치자빛 노을이 아프다. 구름은 길을 친구 삼아 휘어지면서 어둠에 잠긴 산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정도 쓰는 것이 거의 제 정신의 한계입니다.


「근래 풍경은 한 권의 시집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풍경을 찾아 길 위에 서는 것이 한 권의 시집을 읽는 행위인지 또는 한 권의 시집을 쓰는 일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는 창조라기보다도 끊임없는 연수다. 나는 내 시를 단련하기 위해서 동해 나들이를 계속하는 셈이다」

시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시상(詩想)이 떠오른다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기다리고 있다가 무언가 감동이라든지 시적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때 그것을 가지고 더 발전시켜서 한 편의 시를 만든다고 하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시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강태공이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아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닦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상이 떠오르면 그제사 끼적이는 것이 아니라 대장장이가 칼을 벼리듯이 날마다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에서 너무 허약합니다. 재능도 별로 없는데 ‘연수’도 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입에 감떨어지기를 바란 셈입니다.


「나의 시의 모태는 숙련공의 솜씨가 아니라 집요하게 다져진 사색이라 생각한다」


이 말은 허만하 시인이 몇 번이고 말한 것입니다. 시는 솜씨, 즉 표현의 기술이라기보다 깊은 사색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길상호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시인상도 많이 타고 훌륭한 분으로 모두 인정합니다. 저도 시를 읽으면 상상력이 탁월하여 어쩌면 마치 디즈니랜드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를 다 읽고 나면 그 표현의 현란함을 느낄 수는 있었으나 저의 능력 부족인지 내용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 한 시인의 시정신과 그의 시적 방법의 전신(轉身)을 의미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란 각성을 했다. 그것은 시집을 낸다는 행위에 대한 평가 기준의 기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시집을 내고 싶어하겠습니다. 자신이 만든 시가 하나의 작품으로 제대로 모양새를 갖춘 것을 보면 나름 감개무량하기도 할 것입니다. 시집을 유명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는 시인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저 같이 내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남이 알아주는 정도의 실력은 없으면 이른바 자비 출판을 하게 됩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나르시시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시집 『모호한 중심』(2004년)을 들춰보기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유치한 얼굴을 볼까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내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같은 과오를 저지를 것 같아서입니다.


「그 칼자국의 깊이 같은 음영이 있는 언어를 나의 시에 살리고 싶다. 이따금 옛날 절터에서 얻었던 가릉빈가(迦陵頻伽) 와당(瓦當) 조각을 바라보며 팽팽한 긴장을 잃고 심심해지려는 내 시의 안일을 경계하고 있다」


시에는 긴장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목월이나 김광규 시인의 시를 읽으면 긴장이 별로 없습니다. 다 읽고 나면 잔잔한 파도가 모래사장을 훑고 지나간 다음 물결 자국이 보이듯이 여운이 남습니다. 그러나 시란 정통적 혹은 원류적으로 긴장을 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긴장의 핵심은 은유입니다. 허만하 시인은 그러한 은유조차 기술로 끝내지 말고 깊은 사색에 의해 빚어진 은유야말로 허만하 시인이 말한 ‘칼자국 깊은 음영이 있는’ 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릴케도 ‘푸르다’라는 표현에 고심한 흔적을 『세잔에 대한 편지』에 남기고 있다. 그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을 건너면서 “간신히 싸늘하고도 푸른빛의 바다”를 느낀다. 푸른색에 대한 그의 감수성은 다양하게 전개된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푸름”과 “스스로 견디고 있는 푸름”을 읽고 세잔에서는 “폭풍우의 푸름”을 읽고 있다. .. 나는 살아 있는 푸름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바다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바다의 푸름이 무대(해류)에 따라 변하는 모양을 조용히 관찰하고 싶다」


릴케는 「청수국」에서는 ‘파란빛은 스스로 띠지 않고/그저 멀리서 반사시키는 산형 꽃차레들’이라고 파란빛을 표현합니다. ‘푸르다’의 표현에 대한 릴케의 방법은 저의 시작(詩作)에도 어떤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노람, 붉음, 초록……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가 바닷가 모래밭을 즐겨 찾는 이유의 하나는 그곳에 서면 바위로 된 해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 하나하나에는 지구의 역사가 묻어 있다. 수백만 년에 걸친 바다와 육지의 오랜 교섭을 암초로 된 해안에서는 느낄 수 없다」


여기가 상투적 서정에서 사색으로 전환이 이뤄지는 대목이 아닐까요. 대개는 모래사장을 보고 ‘내 사랑이 남긴 잔해가 파도에 쓸리는 소리를 듣는다’라고 상투적으로 말하기 쉽습니다. 이것을 내 손가락 사이로 지구 역사의 시간이 한알한알 빠져나간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시적 표현의 발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시도 그렇지만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것이 비록 산문으로 되어 있어도 그 부분만 따로 떼어내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는 것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얼까요. 허만하 시인이 어느 날 해운대 백사장엘 갔습니다.


「가을 바다 물빛을 조용히 만나보고 싶어 해운대 모래사장을 찾았다. 여름이 남긴 수많은 사람들 발자국이 사라지고 없는 오전의 해변은 뜻밖에 조용했다. 하늘 먼 언저리에 윤곽도 없는 구름이 부드러운 붓 자국처럼 살짝 묻어 있을 뿐 하늘의 아름다운 깊이 때문에 군청색 물빛은 한결 맑았다. 문득 가을 바다는 여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도 그렇지만 산문도 허만하 시인과 저와 다른 점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저도 해운대를 좋아하고 때때로 그리워합니다. 제가 허만하 시인이 되어 해운대로 갔다면 어떻게 썼을까요. 아! 여기가 제가 손주들에게 글쓰기를 연습시킬 때 그토록 강조하던, 먼저 글을 쓰기 전에 (풍경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라고 말하던 것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전율이 입니다. 눈을 뜨고 풍경을 보고 눈을 감고 풍경을 다시 그리는 것을 허만하 시인은 철저히 한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과 절망의 두 극 사이에서 자석 바늘처럼 예민하게 떨고 있는 가냘픈 존재다. 지구가 북과 남의 양극으로 균형을 잡고 광막한 우주 공간을 돌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도 천사의 깨끗함과 악마의 더러움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모순에서 필연적으로 기도가 탄생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조건은 저기 있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동일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로 언어를 사용하여 윤리도덕을 생각해 내고 진선미를 이상으로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인간의 내면에는 원초적인 본능과 인간의 이상과의 알력(軋轢)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 왼쪽이 극히 성하면 악인이요 오른쪽이 극히 우세하면 성인이고 나머지는 평균 곡선을 그리면서 약간 더하거나 약간 덜하거나 할 뿐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인 생존(의식주)과 번식이라는 이 조건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외적인 사람들이 물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반화가 아닙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릴케의 『푸른 수국』의 한 대목이었다. 로댕의 가르침과 세잔 체험을 겪고 난 후의 언어의 조형성과 형태의 완벽성을 추구한 새로운 변신의 산물인 『신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신시집』의 시를 읽어보았지만 언어의 조형성과 형태의 완벽성을 추구한 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대목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푸른 수국’을 검색하다가 고려대학교 김재혁 독문학 교수의 「릴케의 서가」라는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거기에 「부르크젠하우스에서, 사물시의 서정성」이라는 제하에 「청수국」이라는 시가 실려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김재혁 교수와 릴케가 가상의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두 번째 읽어보다가 속된 말로 땡잡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물시에 대해 설명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잘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길지만 공부하는 셈 치고 저나름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교수는 릴케가 시문학사에 독보적인 궤적을 남기게 된 것이 바로 그 사물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저도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릴케라면 아는 것은 「가을날」이라는 시 정도입니다. 릴케의 사물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표범」 「청수국」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라고 합니다. 사물시의 정의를 말한다면 구체적으로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묘사하는 시입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묻습니다. 사물시에서 사물만을 묘사하려고 했나요? 아니면 선생님 자신의 내적 상황을 어느 정도 투영하여 그려 넣으려고 하셨나요? 릴케가 대답합니다. 나는 사물의 본질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나중에 보면 알지만 이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사물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동원한 시적 능력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사물시를 어떤 방식으로 썼느냐는 거지요. 그건 나의 연상의 힘입니다. 끝없이 사유하기인데 사물이 말하게 두는 것입니다. 릴케의 이 대답은 제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물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인데 사실 뇌가 없는 사물이 말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결국은 시인 자신이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은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말해보자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릴케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사물을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물의 정신을 발견하자는 것이지요. 이때 제 머리에는 허만하 시인의 「물결에 대해서」와 「얼음」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물결과 얼음에 대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관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릴케가 김교수에게 부연 설명합니다. 사물의 정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물의 아름다움이나 유용성 뒤에 숨어 있는 그 사물만의 가치 즉 성스러움을 빛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릴케는 자기가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보들레르의 「썩은 시체」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말하자면 썩어문드러진 몸뚱아리에 대한 보들레르의 세세하고 정확한 묘사와 관찰 대상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보고 릴케 자신도 무릎을 치고 좋아 나도 모방해보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김교수가 사물시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청수국」을 낭송합니다.

청수국


마치 팔레트에 마지막 남은 초록빛처럼

이파리들은, 마르고 투박하고 거칠다,

파란빛을 스스로 띠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반사시키는 산형(繖形) 꽃차례들 뒤편에서,

그것들은 울어지친 듯 파란빛을 대충 반사한다,

파란빛을 일부러 다시 잃어버리려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래된 파란 편지지들처럼 그것들 속에는

노랑, 보라색 그리고 잿빛이 깃들여 있다;


어린이의 앞치마에 어리는 것 같은 퇴색한 빛깔,

더 이상 해질 게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우리는 한 작은 생의 짧음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지만 산형 꽃차례 중 하나에서 갑자기

파란빛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초록 앞에서

감동적인 파란빛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릴케가 눈을 감고 듣고 나서 한마디 합니다. 청수국을 이렇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엄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사물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사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것은 진작 생각해 봤지만 사물과 대화를 한다는 착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김교수가 벼르고 별렀던 것을 얘기합니다. 릴케 선생님 ‘파란빛을 스스로 띠지 않고 그저 멀리서/반사시키는 산형(繖形) 꽃차례들’이라는 표현은 상상으로 얻기 힘든 표현입니다. 파란빛을 스스로 띠는 게 아니라 거울처럼 반사한 것이라고 하니 무상함, 덧없음을 더 확실히 느끼게 합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이 부분이 당신의 「청수국」 중에서 사물시의 진수를 보여준 부분이라고 확인하는 셈입니다. 청수국과 릴케 선생님이 나눈 대화가 이 작품이기도 합니다. 릴케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렇고 말고요. 저는 청수국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요.

김교수는 릴케에게 다가가 사물시의 실제적인 면을 묻습니다. 청수국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색채였습니다. 청수국의 색채 중에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는데요 하나는 청수국의 꽃잎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이파리들이었습니다. 릴케의 대답입니다.


김교수가 청수국을 보고 어떤 점이 시상으로 떠올라서 시를 지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고 릴케는 청수국의 두 가지 색깔, 즉 파란색과 초록색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건 사물시를 쓸 때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시적 변용을 하겠느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교수는 내친 김에 사물시의 약점에 대해 육박해 들어갑니다. 사물시를 쓸 때 개인 감정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노래한다는 것은 사물시의 원리인데 선생님의 이 시의 ‘오래된 파란 편지지’나 ‘어린 아이의 해어진 앞치마’ 같은 표현은 선생님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다그칩니다. 릴케는 움찔했습니다. 사실 새로운 시각에서 써보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의 감정이 조금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이 말은 저에게는 백퍼센트 완벽한 사물시는 없다는 릴케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김교수는 릴케를 더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강연에서 “사물에서 자신의 영혼을 읽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사물이 갖는 상징성이나 등가성을 말하는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까.


김교수의 이 말은 사물시도 결국은 객관적 묘사를 하지만 그것이 시인의 정서를 상징, 은유로 치환된다는 말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릴케는 이제는 포기한 듯이 담담히 말합니다. 예, 나는 청수국에서 인간적 시듦과 번뇌를 보았습니다. 청수국은 내게 나이듦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릴케는 결국 청수국이라는 사물을 통해서―비록 객관적으로 했다고 할지라도―거기서 인생의 시듦, 나이듦의 정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청수국을 보면서 1월 말쯤 사천 논두렁을 점심 시간에 거닐면 어김없이 큰개불알풀의 푸른색과 초록색 이파리를 봅니다. 여기서 제가 느낄 수 있는 정서가 무엇일까요. 엄동설한에 창백한 꽃을 피우려는 안쓰러움이라고 한다면 제가 큰개불알풀을 청수국처럼 집중 관찰하고 대화하여 큰개불알풀의 푸른색과 초록색을 모티브로 잡고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어 큰개불알풀이라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씀으로 인생의 애처움이라는 정서를 느끼게 하는 하나의 시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김교수가 목표를 다 이룬 듯이 릴케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를 합니다. 선생님이 청수국과 대화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청수국의 아픈 사연과 이를 위로 하는 선생님의 음성 말입니다. 게다가 이 시는 열넉줄의 소네트 형식이네요. 역시 선생님의 노련한 반전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교수님을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그것마저 캣취해내다니. 릴케가 말합니다. 수국의 파란 모습의 색깔이 바래져 가는 데서 인생을 느꼈습니다. 말하자면 제 시의 모티브에 해당합니다. 인생의 비애, 비참함으로 끝내기에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반전을 시도했습니다. 앞행에서 계속 인생의 어둡고 쓸쓸한 정서만 풍기다가 마지막에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산형 꽃차례 중 하나에서 갑자기/파란빛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초록 앞에서감동적인 파란빛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마지막 행은 수국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죽는 것 같아 보여도 더 살아 남을 거예요.”


김 교수가 긴 대화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괴테가 서정시의 근본은 내적 감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물시에도 객관적 사물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릴케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럼요. 시의 해석은 시를 읽은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성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의 내면에 있는 것이니까요. (김재혁 교수의 「부르크젠하우스에서, 사물시의 서정성」이라는 글을 제 나름으로 각색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나무 잎새들의 색은 네 가지다. 즉 그늘, 빛, 윤기와 투명성이 그것이다. 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식물의 잎새는 색의 혼합이며 이 가운데서 가장 넓은 부분의 색이 주조가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무심히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나무 이파리들입니다. 그저 타원형의 모양에 초록색이라는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그가 그늘과 윤기를 지적한 것에 놀랐다고 하는데 결국 사물을 세세하게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이 말은 사소한 것 같애도 글쓰기의 기초이기 때문에 정말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글쓰기도 있습니다만.


「글쓰기란 언어로 낯선 착란을 만드는 일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여 예술의 목적은 사물을 이화(異化)시키고 비(非)일상화시키는 데 있다고 한 러시아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가 생각납니다. 글쓰기, 특히 시작(詩作)에 있어서 시어가 낯설어야 합니다. 착란이란 어지럽고 어수선하고 처음에 뭐가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모든 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어란 대부분 일상어가 아니기 때문에 읽으면 낯설고 착란을 일으킵니다. 허만하 시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란 어떠한 것이냐고 할 때 바로 이 말이 딱 들어맞다고 생각합니다. 낯설고 착란을 일으키는 수사법의 핵심은 은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왜소해지기 일쑤인 나의 시야를 넓힐 때 이 대목을 기록한 나의 노트를 들추어 본다」


허만하 시인은 그의 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어떻게 저장하고 재생산하나 하는 것이 책을 읽어내려가는 도중 내내 궁금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지능지수로 인해 탁월한 기억력에 의지할 수도 있으나 이 짧은 문장으로 엿보면 어쩌면 그는 책을 읽으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노트에 필기해 두고 그것 또한 어마어마한 것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엘리엇식 표현을 빌면 생각하는 시인과 생각하지 않는 시인의 차이는 사상의 질의 차이가 아니라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을 표현할 줄 아는 시인과 그렇지 못한 시인의 차이로 귀결하고 만다. 우리 시의 지층이 엷은 것은 생각을 요구하는 깊이가 없는 시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허만하 시인은 그의 인생에 대한 사상과 같은 가치가 있는 정서적 표현을 했다고 봅니다. 지층이 얇은 예로 얼핏 머리에 떠오른 것은 소월의 「진달래꽃」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이별의 감정이 ‘지나치게 심정적이고 투명하기’까지 합니다. 읽는 사람에게는 더 호소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거기서 심원한 사상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이 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면도 있다는 것도 고려해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일부 시인 및 비평가는 시 읽기에 있어서 문학 작품의 언어는 의미의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일종의 지각적 성질을 가진 감각적 대상이기도 하다는 기본적인 사실, 즉 고유한 무게와 울림과 빛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그들은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만 읽는다」


대부분의 독자는 시를 읽으면 이 시인이 여기서 무얼 말하려고 하지, 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해되면 시를 다 이해했다고 치부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이루는 기법을 염두에 두고 그것조차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 같습니다.



마당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비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떨어진다. 중앙에는 불연속의 얇은 커어튼(혹은 그물), 가벼

운 듯한 물방울들의 집요하지만 비교적 느린 추락, 활기없는

끝없는 강수, 순수한 대기현상의 응집된 파열. 담 왼쪽과 오

른쪽으로 조금 떨어져서는 무겁고 낟알이 된 빗방울들이 더

욱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거기에는 밀알만한 크기. 저기

에는 완두콩만한 것. 다른 곳에서는 구슬만한 것. 가로대 위

와 창의 팔걸이 위로는 비가 수평으로 흐르고, 그 아래 쪽으

로는 볼록꼴의 사탕 모양으로 매달린다. 위에서 굽어보면,

작은 양철 지붕의 전표면을 따라 비는 매우 얇게 지붕의 미

세한 돌기와 파문에 의해 생긴 수많은 흐름으로 물결지며 흘

러내린다. 곁에 달린 빗물받이 홈통에서, 비는 큰 경사없이

깊은 개울처럼 모여 흐르다가, 갑자기 거칠게 엮인 완전한

수직의 밧줄 모양을 택해서는 땅으로 떨어진다. 빗물은 부서

져 눈부신 장식끝 모양으로 된다.

하나 하나의 모습엔 독특한 거동이 있다. 또 거기에 어울

리는 독특한 소리가 있다. 모두 하나의 복잡한 메카니즘처럼

밀도 있게 움직인다. 시계 태엽장치처럼 위태로우면서도 어김

없이. 그 태엽은 떨어지는 일정한 수증기 덩어리의 무게.

수직선이 땅에 부딪치는 소리, 빗물받이 홈통의 콸콸 소리,

징 치는 듯한 아주 조그만 소리들이 단조롭지 않게 섬세한

합주를 하며 되풀이되고 울려 퍼진다.

태엽이 다 풀려도 어떤 톱니바퀴들은 얼마간 작동을 계속

하는데 점점 느려지다가 마침내 모든 기관장치를 멈추고 만

다 이윽고 해가 다시 나타나면 곧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멋진

장치도 증발한다―비가 왔다.


―「비」


이 책에는 미국의 윌리암즈 시인이 프랑시스 퐁주의 「비」를 영역한 것을 허만하 시인이 중역한 시가 일부 실려 있습니다. 1997년에 발간 된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시집에 실린 「비」 전문을 옮겨봤습니다. 전체를 보아야 좀 더 감상하는 데 나을 것 같아서입니다.


「시인 프랑시스 퐁주를 통해 나는 일인칭 단수인 ‘내’가 사라진 무(無)의 자리에 서 있는 시를 만났던 것이다. 자기의 무화란 면에서 그것은 흥미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일인칭 단수로서의 ‘나’에게 노골적으로 묶여 있는 작품을 읽는 데 싫증이 나 있었다」


프랑시스 퐁주는 릴케와 더불어 사물시를 말할 때 언제나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그의 이 시를 보면 첫행 ‘마당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부터 15행째 ‘빗물은 부서져 눈부신 장식끝 모양으로 된다’까지 거의 시각적 묘사로 되어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만 늘어놓은 셈이니까 허만하 시인이 말한 ‘내’가 개입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으므로 퐁주도 반전을 시도합니다. ‘하나 하나의 모습엔 독특한 거동이 있다. 또 거기에 어울리는 독특한 소리가 있다. 모두 하나의 복잡한 메카니즘처럼 밀도 있게 움직인다. 시계 태엽장치처럼 위태로우면서도 어김없이 그 태엽은 떨어지는 일정한 수증기 덩어리의 무게’, 여기는 퐁주의 객관적 묘사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 시작됩니다. 비는 독특한 거동이고 독특한 소리, 밀도 있게 움직인다. 태엽장치처럼 위태롭다, 태엽은 수증기 덩어리의 무게다,라고 이제껏까지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을 냅니다. 하만하 시인이 말하는 ‘내’가 나타납니다.


마지막 부분은 넓은 의미에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태엽이 다 풀려도 어떤 톱니바퀴들은 얼마간 작동을 계속하는데 점점 느려지다가 마침내 모든 기관장치를 멈추고 만다. 이윽고 해가 다시 나타나면 곧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멋진 장치도 증발한다’ A=태엽이 다 풀려도 어떤 톱니바퀴들은 얼마간 작동을 계속하는데 점점 느려지다가 마침내 모든 기관장치를 멈추고 만다. B=이윽고 해가 다시 나타나면 곧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멋진 장치도 증발한다. A=B, 즉 태엽장치도 언젠가는 멈추고 비도 해가 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가 왔다’라고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여 읽는 사람이 비가 온다는 것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릴케가 「청수국」 시에서 수국의 파란빛이 빚어내는 인생의 시듦에 대한 정서적 투영을 보여준 것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서보다는 사유 쪽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사물시라고 하더라도 시인 자신의 정서와 사유 즉 ‘내’가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너무 노출되지 않고 상투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 퐁주의 시는 김광규 시인과 같은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김광규 시인은 행갈이를 하는 운문이고 퐁주는 행갈이가 없는 산문이라는 것만이 다를 뿐입니다.


「현대시의 비조(鼻祖)가 보들레르냐 랭보냐 하는 논의가 있기는 하되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랴. 시인에게는 시인 자신의 형식이 문제 될 뿐이다. 산문시가 20세기의 주요한 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보들레르나 의미보다 작열하는 이미지와 언어 자체의 빛에 더 역점을 두었던 랭보가 산문시를 썼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시의 출발이 보들레르 혹은 랭보라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보들레르는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랭보가 시의 세계사적 위치에서 그런 자리매김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가 천재라고 하고 37세에 요절한 것도 그런데 20대 때 5년간 지은 시들이 현대시의 시조 운운하니 정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한때 프랑시스 퐁주의 산문시에 매료된 적이 있다고 하면서 『사물의 편』에 나오는 「비」 「굴」 「젊은 어머니」 「오디」가 특히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프랑시스 퐁주의 시적 방법론을 세 가지 정도 듭니다. 첫째, 자연에 대한 독특한 시각과 표현, 둘째 과학적 정밀성, 셋째 감정의 고양을 억제하고 있는 지적 긴장을 듭니다.


앞에서 언급한 퐁주의 「비」에서 보면 허만하 시인도 산문시를 쓰지만 프랑시스 퐁주와는 많이 다릅니다. 허만하 시인은 어떤 풍경을 여기 「비」처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묘사를 안 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일상적이지 않고 낯설고 앞에서 허만하 시인이 말했던 ‘착란’을 일으키게 하는 글쓰기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월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인의 시정신의 발현의 도구로 어떤 것을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산문시는 대단히 어려운 장르다. 말은 노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원초부터 말을 만들어내는 몸의 운율적 속박을 숙명처럼 가지고 있다. 그 속박은 소리를 분절하는 심층 구조보다 더 심층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산문시는 그런 운율과 행갈이 또는 되풀이가 없는 글에서 우러나는 가락을 이미지 또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살리며 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저는 운문보다 산문시가 더 쉽다고 생각했는데 저와는 정반대이군요. 현재까지 제가 가진 지식으로는, 정진규 시인의 산문시는 단문의 은유 문장의 연결이어서 그 산문시를 행갈이를 하면 바로 운문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은유적 표현은 자신도 시인했듯이 만연체 같은 형용사구가 많습니다. 그것은 읽어내기가 좀 벅차지만 제대로 이해만 하면 그 시적 이미지는 풍요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직접 경험하여 쓴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는 거의 진술로서 즉 서사적 묘사로 어떤 정서를 유발하고 반전으로 들어가서 그 이미지로 연상되는 또는 유발되는 현재 혹은 다른 이미지와 연결하여 시적 감흥을 일으킵니다. 제가 읽은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에서 수잔 티베르기앵이 소개하는 산문시 쓰는 방법이 바로 이랬습니다. 저는 이게 바른 산문시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이런 식으로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허만하 시인이 시도하는 산문시도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1926~)의 산문시에 대한 견해는 이렇습니다. 「산문시는 한 나라의 사이키(psyche)와 문학이 추상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허만하 시인은 우리의 시도 이제는 구상에서 추상의 세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말인가, 라고 릴케와 동양의 사상을 사랑하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라고 말합니다. 허만하 시인을 이해하려면 청마(靑馬) 유치환, 대여(大餘) 김춘수, 릴케, 프랑시스 퐁주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아야겠습니다. 허만하 시인 자신의 마지막 말로 마쳐야겠습니다.


「시인은 가을의 연어처럼 모천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다시 길 위에 서는 것이다. 자신의 안쪽 미지의 깊이를 찾는 것이다. 그 길은 목적과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원초적 목마름이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가랑잎 한 잎(또는 새의 깃털 한 자루)의 한정없는 가벼움만으로도 시인의 감성은 벌써 새로운 질서를 가지게 되다. 변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