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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Feb 25. 2022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감각은 생존을 통하여 형이상학으로 연결된다

  이 책은 정말 오래 전에 사서 반쯤 읽고 쳐박아 놓았던 책입니다. 장석주가 자신의 독후감을 모아서 펴낸 『취서만필』의 목차를 인터넷 서점에서 보니까 의외로 『감각의 박물학』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은 반갑기도 하고 반은 장석주는 독후감을 어떻게 썼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어서 서가에서 찾아내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처음 후각과 촉각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가 있게 글이 전개된다고 보였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청각, 시각으로 가면서부터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감각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 감각이 이루는 주변 현상에 대해서 장황하게 과학적으로 때로는 문학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감각 자체의 기전인 기초적인 과학적인 사실은 초장에 설명을 하기는 하지만 그 감각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은 생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어떻게 인간이 보유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기대했는데 그것이 제 생각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책 제목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것을 보고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어 사전에서 박물학을 찾아보았습니다. 박물학이란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본디 천연물 전체에 걸친 지식의 기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이라는 것을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이라는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았다는 셈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예상했던 감각에 대한 기술과는 조금 달리 나갔던 갔습니다. 


  다이앤 애커먼이 말한 다섯 가지의 감각에 대하여 저는 인간의 생존이나 번식 그리고 쾌락 나아가서 그것이 인간의 예술, 혹은 형이상학으로 확장되는가 하는 세 가지의 관점에서 주로 보려고 합니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은 의식의 경계를 규정하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타고 났으므로, 우리는 바람 몰아치는 감각의 경계를 거닐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감각이란 호기심 이전에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무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위기도, 포획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심장과 폐의 정지를 의미하지만 달리 말하면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데 이는 아무리 주요한 사상도 수행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각 기관에서 들어온 정보는 이미 뇌 속에 축적되어 있는 기억과 연결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01 후각

  후각이 인간의 생명과 가장 깊게 연결된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냄새를 맡습니다. 말하자면 후각은 거의 호흡과 같은 수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냄새에 대한 언어가 빈약합니다. 다이앤 액커먼은 냄새의 느낌을 자꾸 설명하려고 들지 우리가 시각적으로 색깔을 구분하듯이 명쾌한 언어들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제 생각에는 후각이 오감 중에서도 천대를 받아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제비꽃으로 고급 향수를 만들 수는 있지만 상당히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 고대 아테네인들은 제비꽃 향기에 취한 나머지 그것을 아테네의 대표하는 꽃이자 상징으로 삼았다.” 그저 산야에서 이름 없이 꽃이나 피는 줄만 알았는데 향기가 이렇게 특별하다 하고 아테네를 대표하는 꽃이라니 놀랍습니다. 아마도 내년에 비봉산에 올라가 제비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곧 코에다 대고 향기를 맡습니다. 그런 행위는 무엇을 기대하여 그럴까요. 아름답거나 상쾌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향기를 통해서 얻는 쾌감은 어디로 연결될까요.

  “누구에게나 향기에 얽힌 추억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냄새는 어릴 때의 범일동 매축지의 공동화장실의 냄새와, 라이락꽃 향기, 가지미 식해, 고름 냄새, 피 냄새…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서양 사람에게는 ‘노린내’가 난다고 했지요.


  “페르몬은 다른 동물의 배란과 구애 행동을 자극하거나, 힘과 영향력의 질서를 확립한다.” 인간에게도 페르몬이 있나요? 인간도 어떤 의미에서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동물이 페르몬을 풍기는 것과 근본 원리에서는 같다고 보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처럼 강렬하고 치명적인 냄새의 작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동물은 돌아다니면서 하는 것이 코를 대고 킁킁거립니다. 어떤 면에서 후각이 그들의 생존에 치명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시각과 청각이 중요하지만 그에 비해 후각은 생존하는 데 덜 필수적이 된 것 같습니다.       



02 촉각

  “D.H. 로렌스는 접촉을 피상적인 스침이 아니라 존재의 핵심까지 깊숙이 침투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촉각은 악수일 것입니다. 악수는 단순한 인사 치레의 형식일 수 있으나 그것은 인간 간의 정신적 교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 접촉은 언어나 감정적 접촉에 비해 10배나 강하다고 합니다.


  인간이 혼수에 빠져 정신이 거의 없을 때 인간의 오감 중에서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것이 동통이라는 촉각입니다. 환자의 가슴 부위를 꼬집어도 반응이 없으면 감각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서로 만지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인류도, 자식도, 생존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기를 만지는 게 기분이 좋지 않다면, 엄마는 아기를 제대로 안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서로를 만지고 쓰다듬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섹스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우리는 신체의 접촉이 인류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솔 샨버그의 말입니다. 접촉에 쾌락이 없었다면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섹스도, 자식의 양육도 없었을 것입니다. 새끼는 신체접촉을 통해서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촉각의 기능 중에 또 하나는 공간 감각 즉 삼차원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어둠 속에서 촉각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이 공간 감각은 촉각은 물론이고 시각과 청각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보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고통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고통이 없는 상태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제 직업과도 상관이 많으니까 마지막으로 동통에 관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돌연사(sudden death)를 하는 경우는 차치하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프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동통을 없애 주기 위해 진통제 나중에는 마약에 속하는 약물까지도 투여합니다. 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 동통이었는데 생의 마지막에 이 동통의 신호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03 미각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친한 친구에게 하는 말입니다. “언제 시간 나면 밥이나 한끼 먹자.” 미각은 사람과 사람을 사귀는 데 한 역할을 합니다. 무슨무슨 모임을 하자면서 콘서트 홀에 가지 않습니다. 미각을 충족시키는 음식점에서 모입니다. 이런 식의 모임은 참으로 많습니다. 돌잔치, 회갑잔치, 생일날 동창회, 회사모임…… 모두가 음식을 놓고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각이 사회적이고 또 그만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중요한 감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좋은 것도 과하면 부담이 된다고나 할까요. 요즘 티비 프로를 보면 어딜 가나 먹는 프로입니다. 그것도 맛있는 곳을 찾아가서 음음 신음소리를 내면서 먹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섹스를 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성적인 쾌락을 남용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습니다. 하지만 미각을 즐기는 일은 자유롭습니다. 미각의 쾌락은 어쩌면 성적 쾌락과도 같은 종류일지 모릅니다. 신경학자가 아니라서 확언을 못하지만 미각의 쾌락 때와 성적 쾌락 때에 뇌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이 같은 종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각은 인간의 생존에도 연관이 있는 것은 이미 예상이 됩니다. 인간이 먹는 것에 미각이라는 쾌락이 없었으면 생존을 위해 그렇게 먹는 행위를 했을까요. 이빨로 저작하는 노동을 인간이 흔쾌히 했을까요. 긍정적인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04 청각

  소리는 크든 작든 어떤 물체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의 분자의 파동이라는 사실을 먼저 머릿속에 상기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리가 전달되는 과정은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외이가 소리를 잡아 고막에 전달하고 고막에 연결된 세 개의 뼈를 움직여서 액체가 담겨 있는 내이에 도달합니다. 내이에는 달팽이 모양의 와우각이라는 튜브가 있어 이 속에는 청각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해주는 미세한 털(유모세포)이 들어 있습니다. 내이의 액체가 진동하면 털이 움직이고 이것은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뇌에 정보를 전달합니다.


  귀의 감각 기능 중에 중요한 것은 소리를 듣고 공간상의 위치를 아는 일, 또 하나는 평형 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음악을 듣고 즐거움을 느끼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왜 음악을 듣고 쾌감을 느끼는 지에 대한 설명은 다이앤 애커먼도 명쾌히 설명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보상을 통해 진화해 왔다는 말이 고작입니다. 저의 천박한 생각으로는 인간이 음악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뇌가 만들어낸 아름다움(美)라는 추상의 세계, 형이상학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합니다.     



05 시각

  “세계는 눈을 통해 들어올 때 가장 풍부한 정보와 가장 즐거운 느낌을 제공해 준다. 추상적 사고는 눈이 본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인체의 감각 수용기의 70퍼센트는 눈에 모여 있으므로, 우리는 주로 세계를 봄으로써 그것을 평가하고 이해한다.” 


  오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각이라는 말 같습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을 지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에 속합니다. 다른 동물들과의 차별점은 많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확연한 것은 언어 사용과 그 언어 사용이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추상적 사고의 시발이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라고 다이앤 애커먼이 말합니다.


  안구의 망막에는 두 가지 세포가 있는데 간상세포와 원추세포입니다. 간상세포는 어둠 속에서 활동하고 흑과 백을 구분합니다. 원추세포는 색깔이 있는 밝은 낮에 기능하여 푸른색, 붉은색, 녹색을 본다고 합니다. 

  시각이 하는 일은 밝고 어둠과 색깔과 형태를 구분하고 공간 감각을 전달합니다. 시각은 청각과 마찬가지로 시간예술이 아닌 공간예술로 기능이 확장됩니다. 그 예가 회화와 조각일 것입니다. 후각예술, 촉각예술, 미각예술은 없습니다. 왜 시각은 회화라는 영역으로 더 넓게 전개되어 인간을 이끌고 갈까요. 이것도 청각예술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美)이란 인간의 추상의 세계와 형이상학 세계에로의 진화적인 발전이 아닐까요.     

  인간의 몸에서 최전선에 있는 오감은 결국 일차적으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진화가 보상에 의해 발전해 왔다고 말했듯이 감각을 사용한 댓가로 쾌락이라는 보상을 통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다웁고 감히 말해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감각을 통해서 생존과 번식에서 머물지 않고 추상의 세계, 형이상학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일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추기: 장석주의 『감각의 박물학』의 독후감을 이 글을 쓴 다음에 읽어보니 그래도 제 글이 ‘하바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어 안심이 됩니다. 그는 역시 의사는 아니니 감각을 접근하는 방법이 저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또한 아쉬운 점은 그의 독후감이 치밀하지 못하여 시각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이지만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바사와 시온(樺沢紫苑)이 말한 독후감 ‘마구쓰기’를 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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