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19

19 라이락 향기의 미로에 취하다

by 현목

19 라이락 향기의 미로에 취하다



어디선가 미향이 풍겨왔습니다. 아니 그 향기는 풍긴다기보다 봄비가 이미 찾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이 긴장이 되어 봄비는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니 한참을 가다가 향기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연해 있는데 또 실낱 같은 향기가 다가왔습니다. 그것이 뇌리를 지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는 길을 봄비가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알지 못하는 깊숙한 곳을 찾아가서 무언가 만나고 오는 것 같습니다.


봄비는 무작정 따라나섰습니다. 끊어질 듯 말 듯 하는 그 향기를 잡으려고 바싹 쫓아갔습니다. 다가서면 그 향내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우정 느릿느릿 걸으면 코 앞에서 무언가를 유인하듯이 어른거립니다. 허겁지겁 따라가지만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봄비 앞에서 유혹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은근히 애가 타지만 속내를 그렇다고 드러내기도 멋쩍어서 그러지 아니한 척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향기는 어디선가 분명히 경험한 것이지만 봄비의 기억은 그것을 불러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봄비는 구체적인 경험은 상기해 내지 못하나 그게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였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 끌림에 대해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둠을 따라서 이제는 한참을 왔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은 언제나 지나다니던 허름한 양옥집이었습니다. 그 옛날 조영남이 불렀던 ‘불꺼진 창’에 나올 법한 집 같이 느껴졌습니다. 창문마다 그 흔한 형광등은 없고 집안에는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아직 야심하지 않은 시각에 오히려 그 집은 스산하고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았습니다. 정적을 깬 것은 야심한 밤의 고양이 소리도 아니고 향기였습니다. 이제는 어쩐지 목표물에 다가왔다는 예감이 드는지 향기의 두께가 더 두터워지고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봄비 앞에는 라이락 꽃이 봉오리를 맺고서 쌀을 튀기듯이 오글오글 달려 있었습니다. 봄비는 그 가운데를 걸어 들어갔습니다. 갈수록 그 곳은 미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작은 꽃봉오리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길처럼 다가왔습니다. 밤새 이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설사 그런다고 해도 도무지 지루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 들어갈수록 향기는 더 짙어지면서 아득한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바다 속 깊은 곳을 잠수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것은 고요한 미향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조용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석에 쇠가 붙들려 가듯이 발걸음은 그곳을 향하여 점점 더 빨리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그 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봄비가 그리도 찾아다녔던 이제는 아득히 잊었던 목소리였습니다. 그 앞으로 다가갈수록 소리는 더 커졌지만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봄비는 사방이 무서워졌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나오려고 몸을 돌렸지만 봄비의 발길은 그의 몸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긴 그림자처럼 늘어져 그가 왔던 방향으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가늘어져서 이제는 거의 몸통이 하나의 선처럼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는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봄비의 발길은 이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봄비의 머리와 발길이 이제는 찢어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려고 용을 썼습니다. 그때 다시 그에게는 미향이 다가왔습니다. 봄비의 찢어지는 고통을 달래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봄비는 그의 발길과 그의 몸통이 찢겨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둠 저 너머 봄비가 살아오면서 버팀이 되어주었던 환한 얼굴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봄비의 이름을 부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