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진정성

사랑도 식는 날이 온다

by 현목

사랑이라는 게 어찌 보면 식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생각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자신을 모두 바쳐서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사랑이라 말하면서 좋은 말만 하고 립서비스로 그쳐 버립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대로 행하려면 자신의 전 존재를 다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진정성이 항상 문제가 됩니다.


사랑의 종류는 신의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리고 이성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특별한 한계를 달지 않으면 대개는 이성 간의 사랑을 사랑의 대명사로 사용하기는 합니다. 이 글의 제목으로 보면 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성 간의 사랑이라면 어릴 때 소년기에도 자신은 그 실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어렴풋이 자석의 에스극과 엔극이 서로 끌리듯이 서로가 이끌리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성숙한 청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른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알아갑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물이라는 거시적이라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종족 보존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행위들입니다. 반면에 미시적으로 보면 한 개인의 인생에서 자아를 성숙시키고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서 또한 필요한 행위가 됩니다. 이런 이성의 사랑의 행위에는 신, 부모, 친구 간의 사랑에서는 볼 수 없는 육체적인 접합과 그로 인한 쾌락이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필요악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쾌락이 없다면 인간은 이성 간의 사랑을 그렇게 열렬하게 할 동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의 운행이 다 그렇지만 인간도 그런 청년기를 지나서 육체와 정신이 어울려진 사랑으로 인해 가정을 이루면서 책임감도 가지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집니다. 그러나 육체는-정신도 마찬가지지만- 시들어가므로 젊었을 때의 사랑의 감정은 식어갑니다. 나이가 들면 이른 sexless love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랑은 분명 식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 쾌락이 주는 것만으로의 사랑을 극복했다고 보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늙어서도 정력이 왕성하여 여성의, 혹은 남성의 편력이 많은 사람도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이 식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인생의 산의 능선을 더 많이 올라가서 그의 앞에 전개되는 풍경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 탓이 아닐까요. 자신만을 위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리던 온갖 탐욕을 조금은 제거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랑이 식는다’는 것도 긍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자기 희생이라는 말의 다름이 아니라고 봅니다. 신의 사랑, 부모의 사랑, 친구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교육을 받아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신을 사랑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은 평생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그의 마음에는 사랑해야 한다는 도덕률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려면 내 호주머니에서 당장 단돈 천원이라도 나가야 하고 아니면 자신의 육체의 노동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경험해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희생적인 사람도 간혹 만나기는 합니다만. 그러니 자연히 그저 입으로만 사랑, 사랑, 사랑 하면서 실제로 진정으로 행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물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조금 예외적입니다. 그것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거의 본능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랑은 정말 자신이 사랑이라는 말하는 만큼만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사랑이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