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 가고 처음 처갓집에 가니 장인이 준 것은 비장의
수였다 달콤했다는 기억밖에 없다 나중에 그게 매실주란
걸 알았다 사는 게 팍팍하면 남해 바다를 보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신 매취순이 가르쳐준 비밀은 알코올 농도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월급쟁이로 지내다가 오랜 만에 집에 와서 냉장고
안에서 기다리던 비밀을 열었다 그건 노리끼리한 색이었고
투명한 병에 들어 있었다 보리차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마셨다
목젖을 시원하게 적시고 내려갔지만 히든 카드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혀 위에 물고 있다가 삼키면 파도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쌉쌀한 포말이 일었다 매실과 백설탕과 소주가 어두운 광에서
몇 년이 지난지 모르겠다 거긴 소주도 백설탕도 매실도 없었다
서로가 몸을 주어 녹아져 있었다 잘 삭아 있었다
지나온 세월은 구름이 많았을까 해가 비치는 날이 적지는 않았을
거다 단지 비바람 친 날만 기억의 창고에 남아 있을 테니까 이젠
그게 다 녹아서 형체도 없다 달콤하고 쌉쌀하고 신 기억의 형해만
남기고 간다 죽고 나서 내 인생을 음미할 때 달콤하고 쌉쌀하고 신
것이 각각 따로따로 돌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잘 발효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