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21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7)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 (12)

풍경을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하자



순유야 순규야 집에서 생활하려니 지루하고 답답하지. 할아버지도 72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날은 처음이란다. 어쨌든 잘 참고 견디어 이겨내서 학교엘 다시 가도록 해야 할 거다. 아이들에게는 전염 기회가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손 자주 깨끗이 비누로 씻고 마스크 꼭 하고 다니고 사람 많은 데는 피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얼마나 될까? 머리카락 두께만한 집진드기의 1/100이 세균 크기란다. 그 세균의 1/100 내지 1/1000이 바이러스 크기라고 해. 1nm(나노미터)는 1mm의 100만분의 1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크기는 약 100nm이라고 알려져 있대.


바이러스의 구성은 단백질과 핵산(DNA, RNA)으로 되어 있고 이것들은 혼자서는 증식이 안 되고 숙주세포(기생 생물이 감염할 수 있는 세포)내에서 복제하여 증식한단다. 만약 숙주 세포가 없으면 증식을 못한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무생물이기도 하고 생물이기도 한 이상야릇한 존재야. 문제는 이 바이러스 중의 하나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 중에서도 폐에 있는 세포를 숙주세포로 이용하여 증식하면서 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요즘 허만하 시인이라는 분에게 홀려서 그분의 책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허만하라는 분은 1932년 생이니까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16살 많아서 지금 88세가 되지. 부산에 산다고 해. 그분은 경북의과대학을 나와서 기초의학 중에 하나인 병리학(pathology)를 전공한 학자이자 교수이란다. 병리학이란 것은 인간이 병에 걸린 조직을 떼어 내어 염색을 하고 현미경을 통해서 세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이분은 병리학자이면서도 글쓰기를 좋아해서 중학생 때는 바지의 뒷주머니에 문고판 책을 꼽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대학생 때부터 시를 쓰고 나이 37살에 첫 시집을 냈고 30년 후인 1999년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고 해.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이분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시집을 다 집에 사놓고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어떤 계기가 있어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분의 산문집 중에 『길과 풍경과 시』라는 책을 오늘 할아버지가 다 읽고 나서 생각나는 게 있어서 너희들에게 특히 순유순규서윤서우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허만하 시인의 이 책 중에 「모래알 한 알의 무게」라는 제목의 글의 시작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분이 어떻게 이 글을 썼는지 잘 보고 생각하고 머리에 기억해 두어라. 할아버지도 배우는 심정으로 이 부분을 분석하면서 참고로 하려고 한다. 할아버지는 너무 늙어버려 어떤 새로운 것을 하려면 몸에 잘 익숙하게 되지 않는다. 대신에 너희들은 어리기 때문에 지금 잘 연습해서 몸에 익혀 두면 나중에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그리고 창조적으로 생산해 낼 수가 있다.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알리고 싶은 것이다. 허만하 시인은 부산 광안리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해운대 바닷가로 갔어. 그때의 자신의 감상을 글로 쓴 것이다.


1) 허만하 시인의 방식:

「가을 바다 물빛을 조용히 만나 보고 싶어 해운대 모래사장을 찾았다. 여름이 남긴 수많은 사람들 발자국이 사라지고 없는 오전의 해변은 뜻밖에 조용했다. 하늘 먼 언저리에 윤곽도 없는 구름이 부드러운 붓 자국처럼 살짝 묻어 있을 뿐 갠 하늘의 아름다운 깊이 때문에 군청색 물빛은 한결 더 맑았다. 문득 가을 바다는 여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2)할아버지 방식 ①

너희들도 나도 별 생각없이 허만하 시인이 만난 해운대 풍경을 글로 쓴다면 이런 방식으로 될 것이다.

「해운대가 그리워 해운대 모래사장을 찾았다. 늦여름이어서 사람들은 붐비지 않았고 뜻밖에 조용했다. 수평선 위의 구름이 드문드문 떠서 지나가고 있었다. 내 발밑에 파도가 와서 쓰러지자 나는 구두에 바닷물이 묻을까 봐 풀짝 뛰어 뒤로 물러났다. 멀리서 갈매기 몇 마리가 푸른 바닷물 위를 날면서 끼룩끼룩 소리를 질렀다」

이 글과 앞의 허만하 시인이 쓴 글과 특별히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할아버지가 글을 쓸 때 제일 먼저 무엇을 하라고 했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지. 이 해운대에 대한 글은 특히 더 그렇다. 이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설명한 것이 할아버지 방식 ①이다. 앞의 허만하 시인은 그림을 그린 후에 눈에 보이는 대로 설명하지 않았단다. 그 풍경의 모습을 은유를 사용하여 상상하였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풍경을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변성•변형)했다고 하지. 이것을 잘 해야 생생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읽는 사람이 감탄하는 멋있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허만하 시인은 젊어서 아마도 적어도 대학생 때부터 쓴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이것을 진정으로 시작한 것은 몇 년이 안 된다.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이해해도 실제로 글로 쓰는 것은 내가 생각한 만큼 잘 되지는 않아. 하지만 너희들은 지금부터 잘 연습해서 몸에 익혀 두면 나중에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허만하 시인과 같이 쓸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내가 애타게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자, 그렇다면 할아버지 방식으로 해운대 풍경을 메타몰포시스한 글을 한번 써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3)할아버지 방식 ②

「해운대의 짠 바닷바람이 나를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불러내었다. 그리움은 자석인지 내 살갗을 잡아당긴 것이다. 뜻밖에 늦여름의 한적함이 해운대 아스팔트 위에 낮게 깔려 그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여기 오면 어지러운 세상사를 한 곳에 집중시켜 한 곳으로 가리키는 수평선이 언제나 있었다. 수평선 위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은 내가 닿지 못하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파도가 머리를 하얗게 부수면서 달려들자 나는 발을 들고 폴짝 뛰었으나 이미 추억은 바닷물에 젖어버렸다」


이렇게 할아버지 방식으로 써보았다. 할아버지 방식 ①과는 확실히 다르지. 여기서 한번 복습해 볼까. 여기에는 파, 마늘, 시금치 같은 음식 재료가 많이 있다. 말하자면 해운대, 바닷바람, 모래사장, 그리움, 자석, 늦여름, 한적함, 아스팔트, 발자국, 수평선, 구름, 추억, 바닷물 등등이 음식재료인 셈이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것, 우리가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식으로 붙여서 글을 쓰면 평범한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아까 말한 변성•변태(metamorphosis)시켜서, 다시 말해 상식 밖으로 연결시켜서 상식적인 아닌, 통상적인 아닌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단다.


할아버지 방식 ②는 잘 쓴 글은 아닐지 몰라도 이걸 통해서 이런 원리를 알고 또 무엇보다 연습을 해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정말 잘 기억해 두고 명심하기를 할아버지는 간곡히 부탁한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글은 다 이렇게 써야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진술을 주로 해서 글을 쓰는 글이 있다. 가장 쉬운 예로 논술에서 ‘무엇에 대해서 논하라’고 하면 설명하는 식으로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아버지가 위에서 말하는 것은 문학적인 글, 특히 풍경에 대한 글은 이런 식으로 쓰면 좋고, 이걸 잘 하면 어쩌면 시 쓰는 것은 식은 죽먹기가 될지도 모른다.


자, 이번에는 순유순규서윤서우의 차례다. 할아버지가 이미 음식 재료(해운대, 바닷바람, 모래사장, 그리움, 자석, 늦여름, 한적함, 아스팔트, 발자국, 수평선, 구름, 추억, 바닷물 등등)를 이미 얘기했지. 물론 여기다가 너희들이 좋아하는 걸 더 넣을 수도 있고 너희들이 맛없다고 생각하는 걸 뺄 수도 있어. 이걸 잘 버무려서 너희들이 글을 허만하 시인 방식으로 써 봐라. 단 좀 전에 말한 것처럼 그냥 상식적이거나 통상적이 아니고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를 해야 한다. 자, 그럼 너희들이 이제 해운대 백사장에 와 있다. 눈을 감고 위의 재료들을 가지고 상상해 본다. 그리고 쓴다.


4)순유순규서윤서우 방식


오늘은 이만 쓸 게. 공부 열심히 하고……. 바이.




2020년 3월 22일 밤 8시 26분

학이재(學而齋) 우거(寓居)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