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22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8)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 (14)

시쓰기의 '야마'


순유 순규야 잘 있었니.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 보내 주니 기분이 좋지. 너희들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의 표시라고 할 수 있겠지. 순유는 이마빡에 여드름이 생겼다고 하더라. 너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나무가 자라고 풀이 자라듯이 너희들도 어른이 되려고 하면 몸에서 여러 가지 홀몬이 나오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신체의 변화에 따라서 정신의 변화도 따라온단다. 그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이 한 가지 있지. 이제까지 어린애기일 때는 ‘나’라는 것(한문으로 유식한 말로는 ‘자아’라고 하지)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다가 이제부터는 ‘나’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면서 어른이 되기 시작한단다.


지난번 글쓰기(019)를 하면서 너희 엄마가 순유가 이번에 시쓰기반에 들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사실 깜짝 놀랐어. 그렇게 쉽게 들어갔을까 하는 의심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와 시쓰기의 동료가 되기 때문이지.


시쓰기반에 들어가면 당장 시를 써야 하는데 과연 시쓰기에 대한 아우트라인이나 알고 있나 하는 걱정도 들고 말이야. 그래서 순유순규서윤서우(물론 순규서윤서우에게는 좀 이르지만 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선은 이해하는 데까지만 이해하기 바란다)에게 어떻게 하면 순유순규서윤서우에게 ‘야마(山)’(일본말인데 숨겨놓은 해답, 핵심이라는 뜻이지)를 가르켜줄까 하고 줄곧 생각해 왔어. 사실 할아버지는 대학교 예과 2학년 때 시가 뭔지도 모르고 쓰기 시작했고 학교 졸업하고는 수련의 시절을 지나서 병원 개업하느라고 시를 적극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버린 적은 없었단다. 그럭저럭 이제 시를 안지 50년이 되어서야 시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시에 대해서 최근에 조금은 이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는 무엇일까? 할아버지가 요즘 읽는 책에 이런 말이 있어. 영국의 윌리엄 예이츠라는 시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는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남이 엿듣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시와 유행가가 가사가 어떻게 다를까? 유행가 가사도 엄밀히 말하면 시라고 할 수 있다. 유행가 가사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시는 에둘러서 얘기한단다. 예를 들어볼까. 유행가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직접 얘기하지만 시로 표현하면 ‘나는 너에게 장미라는 불을 밝히고 싶다‘라고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서 말하는 것이다. 우선 시란 사람의 감정(기쁨, 슬픔, 분노, 증오, 싫어함, 우을 등의 감정을 말한다)을 에둘러서 표현한다고 생각해라. 물론 나중에 더 시의 기법이 깊어지면 의미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선 시를 쓰려면 두 가지가 타입이 있다. 첫째가 함축적(어떤 뜻을 속에 담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방법과 둘째는 발견의 방법이 있다.


첫째의 함축적 방법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쓰되 행과 행 사이에 어떤 감정의 분위기가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이란다. 예를 들어볼까. 우리나라의 유명한 박목월이란 시인이 있어. 이분의 시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감정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지. 그분의 시 「나그네」를 보자.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는 행마다 거의 진술(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로 되어 있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고 해서 물론 직유법도 하나 있기는 하지. 강나루를 건너서 밀밭 길을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데 그 길은 남쪽으로 삼백리구나. 마을마다 술을 담거서 익고 있는데 저녁놀이 타고 있는데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있구나, 이렇게 거의 설명하고 있지만 행과 행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숨은 분위기, 즉 구름이 끼고 달이 떠 있는데 나그네가 혼자 길을 걷는 쓸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처음 쓰면 대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단다. 그런데 이런 식은 이제는 좀 구식으로 치고 있지. 물론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스타일이 되어 버렸어. 박목월 시인이 활동한 것이 1960년 70년대였으니까 말할 것도 없지.


두 번째가 발견의 방법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은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순유순규서윤서우가 몇 년을 고생하면서 배워온 것을 여기다 써먹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시대에 주로 시를 쓰는 방법이란다. 노벨 문학상도 탄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은 ‘시는 메타포(metaphor/은유)다’라고 말했다고 해. 물론 시를 쓰는 방법은 은유만은 아니야. 반어법도 있고 패러디도 있고 그냥 서술로 된 시도 있다. 말하자면 시에 있어서 은유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보면 돼.


그러면 어떻게 쓰면 될까. 여기가 중요하다. 여기가 아까 할아버지가 말한 너희에게 전해주고 싶은 ‘야마’이다. 이 ‘야마’는 시를 50년 동안 쓰면서 요즘 할아버지가 발견한 것이야. 이런 건 어디에 설명하는 책이 별로 없단다. 이걸 너희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긴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없이 길어지니 요점으로 직접 들어가자. 우선 어떤 사물 혹은 관념(관념이란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이라고 우선 생각 해 두어라)에 대한 본질(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어떤 사물의 성질)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해. 너무 어렵지. 쉽게 생각해 보자. 내가 시를 쓰려는 사물의 특징을 잘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에 대해서 쓴다고 하면 순유순규서윤서우가 생각하기에 사과라는 사물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 특징을 ‘지배적 인상’이라고 한단다. 우선 그 가능성부터 생각해 보면,

①사과는 붉고 주황색의 껍질이다

②사과는 과즙이 흥건한 살이다

③사과는 숨겨놓은 단단한 씨앗이다


이렇게 각자가 그 특징을 잡을 수가 있단다. 이 특징(본질)을 캣취할 때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할수록 그 시는 독창적이 되고,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 그것을 진부하다(새롭지 못하다) 혹은 상투적(늘 쓰는 버릇이다)이다라고 해서 평가를 별로 못 받게 되지.


자, 여기가 오늘의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렇게 순유순규서윤서우가 잡은 특징(본질)을 이제까지 배운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특징(본질)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서 채워넣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 할아버지가 4-5년 이상을 연구한 송재학이란 시인이 있어. 그분의 시중에 「튤립에게 물어 보라」라는 시를 예로 들어서 분석해 보자. 시를 편하게 볼 수 있게 번호를 매긴다.


①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②튤립, 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③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는 꽃

④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⑤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⑥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⑦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⑧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⑨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⑩…… 튤립에게 물어 보라


튤립이란 꽃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냐. 붉고, 둥글면서 위로 올라가면 오목하고, 꽃의 맨 위를 보면 톱니바퀴처럼 요철이 있고, 등등의 모양을 상상할 수 있다. 아까 내가 사과라는 사물에서 말한 특징(본질)을 이 송재학이란 분은 튤립이라는 꽃에서 어떻게 보았을까 생각해보자.


a)송재학 시인은 튤립의 보면서 그 특징(본질)을 모차르트 음악가라고 봤단다. 즉 튜립을 보니까 모차르트 음악처럼 가볍고 즐겁고 투명한 그런 느낌을 받은 거야.

b)튜립은 리아스 해안이다라고 생각했어. 아까 내가 튤립꽃의 가장 윗자리가 톱니바퀴 같이 요철이 있다고 했지. 그걸 송재학 시인은 리아스식 해안이라고 했지. 리아스식 해안이란 해안선이 굴곡이 심한 것을 말한다.

c)튤립의 특징(본질)을 등대의 불이라고 봤다.

대충 이 세 가지를 튤립의 특징(본질)이라고 송재학 시인은 발견한 것이야. 이것이 중요한 단계다. 그다음 단계는 자신이 발견한 이 특징(본질)을 은유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 볼까.

a)튤립은 모차르트다⇒이 특징(본질)을 송재학 시인은 ①④⑨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①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요건 은유법으로 말하면 ‘튜립은 모차르트다’를 조금 다른 식 으로 표현한 것뿐이야.

④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요것도 위에 있는 ①과 같은 방식이지.

⑨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내가 걷던 길이 모차르트 음악으로 환했다 는 거지.

b) 튤립은 리아스식 해안이다.⇒이 특징(본질)을 송재학 시인은 자신의 사춘기가 리아스식 해 안 같은 마음을 가졌구나 하면서 ⑤⑧의 문장으로 만들었지.

⑤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내 사춘기는 리아스식 해안이다를 이렇게 표현한 거야.

⑧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리아스식 해안이 사춘기의 마음이라고 했으니 까, 즉 자신의 사춘기에 어떤 마음의 병, 예를 들면 여자를 짝사랑하는 마음의 병이 들었 다고나 할까를 이렇게 표현한 거다.

c) 튤립은 등대의 불이다⇒이 특징(본질)을 ⑥⑦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⑥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튜립은 등대의 불이다를 직유로 표현했어.

⑦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등대의 붉은 빛 즉 튜립이 내 마음에 들어왔 다는 거지.

나머지 ②번 ⑩번은 진술이고 ③은 튤립은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는 꽃’이라고 해서 일종의 은유이기는 하나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해서 뺏다.


이상 설명을 했는데 이해가 됐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어렵지. 할아버지도 50년 걸려서 깨달은 것인데 너희가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그러니 앞으로 시를 쓰는 기회가 되면 다시 반복해서 읽어주기 바란다.. 제목을 정하는 방법은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이야기할 게.


마지막으로 정리할게. 시를 쓰려면 첫째, 쓰려는 대상(사물 혹은 관념)에 대한 특징(본질 혹은 지배적 인상)을 3개 내지 5개 정도 찾을 것. 둘째 그 특징에 맞는 이미지(그림), 즉 은유를 발견한다. 셋째 이런 이미지들이 시적 통일성을 이루어야 해.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너무 이상한 이미지는 빼야 해. 넷째 너무 은유만 쓰면 읽는 사람이 잘 이해를 못하니 소통을 위해 진술을 조금 넣는다. 알았지^^ 순유순규서윤서우에게 숙제를 낼게. 너희들 집에 있는 봉봉(서윤서우에게는 봉고)의 특징(본질)을 세 가지 정도만 발견해 봐라. 그 다음에는 그 특징(본질)에 맞는 이미지(그림) 즉 은유를 만들어 시를 한편 지어보도록 해보라. 그리고 내게 보내면 같이 분석하여 어디가 부족한지를 서로 생각하고 몇 차례 수정하면서 이 시 「튤립에게 물어 보라」처럼 완성해 보자. 제목은 「봉봉에게 물어 보라」 혹은 「봉고에게 물어 보라」라고 하자.


그럼 아까 우리가 사과를 가지고 시를 지어보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마무리지어 보자. 시의 제목은 송재학 시를 모방하는 것이니까 쉽게 「사과에게 물어 보라」라고 하자.



붉고 주황색의 껍질은

아무도 모르게 품고 싶은 마음이다

속살 속에는 언제나

비바람과 햇살이 반짝인다

숨겨 놓은 단단한 씨앗이

사과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남기고 싶은 말이다


어려운 것 읽느라고 수고했다. 그럼 바이.




2020년 5월 25일 밤 8시 1분

학이재(學而齋) 우거(寓居)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