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글쓰기』 레리 W. 필립스 엮음

행복도 단련이 필요하다

by 현목

어네스트 헤밍웨이라고 하면 몇 가지 특징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유독 전쟁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제1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여도 했고 그 경험으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문체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단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다와 노인』으로 노벨상을 탄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기왕에 헤밍웨이에 대해 독후감을 쓰는 김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제가 몰랐던 사실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1899년에 태어나서 1961년에 사망했는데 그것이 우울증 때문에 엽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인데 그도 권총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의사이면 가정형편이 어렵지도 않았을 것인데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고 기자가 됩니다. 결혼 생활이 평탄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네 번을 결혼했다고 하니까요.


헤밍웨이는 이 책에서 작가의 자질에 대해 네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재능과 훈련(노력)과 정직성 그리고 상상력입니다.


첫째 재능에 대해 헤밍웨이가 말합니다. “먼저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많이.” 이 말을 보자 저는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글쓰기가 좋아서 50년 넘게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오늘에 와서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 저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일류 작가는 될 수 없구나 하는 좌절감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노심초사했던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오직 재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사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아이큐가 월등히 높은 사람에게 아이큐가 낮은 사람은 같은 노력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노력보다는 재능이 먼저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훈련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노력에 해당됩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노력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헤밍웨이는 한 문단을 완성하기 위해 오전 내내 작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라고 합니다. 헤밍웨이와 고쳐쓰기 얘기는 너무도 많이 인구에 회자(膾炙)됩니다. 그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고쳐썼다고 합니다.(이 말은 200번, 혹은 600번 등 말이 많이 엇갈립니다) 이 책에서 헤밍웨이는 “하지만 나는 더 나은 작품(『강 건너 숲속으로』)을 만들고 실수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잘라내기 위해 206번을 읽었다네.” 사실 여기에 오면 저로서는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일류 작가도 이런 노력을 하는데 제가 쓴 글을 100번이라도 고쳐쓴 적이 없으니까요.


셋째는 정직성입니다. “좋은 글은 진실한 글이다.”라고 말합니다. 당연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팩트’가 진실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아무리 작가가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쓴다고 해도 그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가 자신이 진심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진정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그대로 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본능에 대한 세간의 판단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내면을 빠져나오면서 우리가 옷을 입듯이 윤색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넷째는 상상력을 말합니다. 문학이란 상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작가마다 다를 것입니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문장이 간략하면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체의 수식어가 없다고 합니다. 헤밍웨이는 말합니다. “비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상징적 표현이란 건 없습니다. 바다는 그저 바다입니다. 노인은 그저 노인일 뿐입니다. 소년은 소년이고 물고기는 물고기입니다. 상어는 그냥 상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딸기는 딸기다’라는 식의 표현을 주장하는데 그것도 문장 표현 기술의 하나의 방법이지 이것만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림도 대상을 그대로 실사(實寫)할 수 있지만 세잔이나 고흐처럼 대상을 변형시켜서 그릴 수도 있습니다. 표현의 기법 문제는 작가의 성향에 따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헤밍웨이는 마지막으로 글쓰기와 행복에 대해 말합니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전으로 내가 지금껏 했던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나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글이 잘 써질 때 저는 행복하답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의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무언가 모순을 느낍니다. 헤밍웨이는 이미 1954년에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이때가 55세이고 7년 후인 1961년에 권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이미 세상의 평가과 영광을 부여잡은 그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와 행복은 그렇게 만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글쓰기를 혼자서 해서 그런대로 만족한다면 제 인생 자체를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단한번 부여된 인생을 어떻게서든지 행복하려고 노력합니다. 행복이란 글자의 의미가 오묘합니다. 행(幸)의 뜻은 ‘운(運)이 좋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행복은 노력에 의해서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수에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살아오면서 이런 현상을 사실 수도 없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라면 무언가 신비의 베일에 싸인 요술 보자기처럼 생각합니다. 먼 미래에 그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 만족과 편안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배우자 만나서 원만한 부부생활을 할 때, 자식이 잘 될 때, 넓은 쾌적한 집에서 살 때, 돈 많이 벌 때, 명성을 얻을 때, 병 안 나고 장수할 때……, 이런 기본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과 정반대가 불행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세속의 행복을 마다하고 무언가 자꾸 하늘에서 행복의 별을 따려고 애를 쓰다가 한평생 다 지나갑니다.


문제는 이런 순도 백 퍼센트의 행복을 다 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이런 세상의 행복도 너무 겨우면 안으로 썩기 시작합니다. 미국에 빌 아무개는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명성과 재산을 가졌으니 행복하리라고 생각되지만 그에게도 성적 문란의 냄새가 납니다. 그 부인이 이혼하여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을 보면 돈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습니다.


행복 운운하는 고수들은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돈의 위력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 생활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행복할 확률은 높습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저 포도는 시다’는 이솝 우화에 의지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덕과 행복이 일치한다는 칸트의 최고선의 행복은 사실 장삼이사인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념으로는 존재할지 몰라도 너무나도 멀리 있는 이상향일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한평생 살면서 행복을 향유하려면 순도 백 퍼센트의 행복이 아니라 순도 오십 퍼센트 미만이라도 내것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뜬구름처럼 흘러가는 행복이 내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박한 행복이 내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법정 스님이 말한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말씀도 이것을 가리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출근하다 보면 보도블럭 틈에 끼여서 겨우 자라고 있는―이는 단지 제 판단입니다만―이름 모를 풀을 볼 때마다 저 풀은 하필이면 보도블럭에 날아와서 생명을 피우고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구는 비옥한 땅에서 누구는 돌 틈에서 겨우 견디고 있습니다. 보도블록에 끼인 풀을 보고 너는 행복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행복을 누리려면 주어진 삶에서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수용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단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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