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주의’와 ‘환희’와 ‘대극합일(對極合一)의 사상’
베토벤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다가 조수철이란 이름을 발견했고 그가 베토벤의 ‘전문가’라고 하는 언급도 있고 해서 책을 구입했지만 당장 읽지는 않고 서가에 두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습니다.
조수철 교수는 중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지만 한 번도 같은 반에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직접 대면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성적이 최상급 레벨이었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 그가 서울의대 간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정신과 그것도 소아정신과를 전공했다니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유용한 지식도 많이 얻게 되고 베토벤에 대해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조수철 교수가 주장하는 몇 가지 주제는 그다지 동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키워드는 ‘영웅주의’와 ‘환희’와 ‘대극합일(對極合一)의 사상’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실 의사는 문필가와는 기본적으로 달리 과학에 기초한 사고를 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논리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베토벤을 ‘우상화‘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반 사람도 아닌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의사라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점이 많은가를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인간적인 허점은 거의 지적하지 않고 찬사만을 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합니다.
우선 그의 베토벤 음악의 작곡에 대한 방대하고 상세한 자료 수집과 일목요연한 정리에는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특히 베토벤 음악을 제1기, 제2기, 제3기로 나누어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현악4중주곡을 분류한 것은 저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제1기는 1796년부터 1801년에 이릅니다. 이 시기를 ’모방의 시기‘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모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총 32곡입니다. 그중에서 제1번부터 11번까지가 이 시기에 속합니다. 교향곡은 총 9곡 중에서 제1번과 2번이, 현악4중주는 총 16곡 중에서 초기 6곡이 여기에 속합니다.
제2기는 1802년부터 1814년에 이릅니다. 이 시기를 ’외향화 시기‘라고도 하는데 말하자면 베토벤 음악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802년은 너무나도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사건이 터진 해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은 아마도 2년 전부터 혼자서 알아 왔던 청각상실에 대해 고민하다가 하리일겐슈타트에서 요양 중에 자살할 결심을 하고 유서를 쓰게 됩니다. 하지만 어쨌던 자살을 하지 않고 그는 일변하여 인생관도, 음악관도 바뀌면서 베토벤 음악의 꽃을 피우는 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껏 하이든, 모차르트 같은 선배의 작곡 방식에서 벗어나 베토벤 자신의 이른바 ’고난에서 환희로‘ 혹은 ’영웅주의‘로 작곡 방식이 바뀐다고 합니다.
피아노 소나타는 제12번부터 27번까지 총 16곡이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교향곡은 그 유명한 제3번 ’영웅‘ 교향곡부터 8번까지가 여기에 속합니다. 현악4중주곡은 제7번부터 11번까지 5곡입니다. 유명한 ’라주모프스키‘ 3곡과 ’하프‘와 ’세리오소‘가 그것입니다.
제3기는 1815년부터 1826년까지입니다. 이 시기를 ’내향화 시기‘라고 하며 격동적인 제2기를 지나서 내성과 성찰의 경지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는 제28번부터 32번까지입니다. 교향곡은 그 유명한 제9번 ’합창‘ 교향곡이 여기에 속합니다. 베토벤은 1824년 <교향곡 제9번>을 작곡하고 나서 나머지 2년 동안은 오로지 현악4중주곡만을 작곡합니다. 그것이 현악4중주곡 제12번에서 16번까지입니다. 그리고 나서 6개월 후 베토벤은 1827년 3월에 아마도 간경변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쉽다면 쉬운 조수철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기는 힘들기는 하겠지만 객관적인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 조수철 교수의 베토벤 관(觀)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베토벤의 후기현악4중주곡들을 설명하면서 “모두 극도의 성찰을 통해 ’완벽한 심적 평화‘를 성취한 작품들이다. 조용히 흐르거나 그 속에 엄청난 ’내적인 힘‘을 지니며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하나로 통괄된 곡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인격적으로 성인의 경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음성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인격적으로 성인(聖人)의 경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음성‘이라는 조수철 교수의 논평을 듣자 천학비재의 저 같은 사람도 이건 너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성인이란 지혜도 있어야 하나 도덕적으로도 완벽해야 합니다. 아무리 베토벤이라고 하지만 음악적 지혜,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가 과연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수철 교수는 ’악성으로서의 베토벤, 그 교훈‘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베토벤이 어떻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요약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딱히 인격적인 성인이라기보다는 ’장인(匠人)‘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첫째 유전 요인, 둘째 조기 교육, 셋째 많은 선생님들과의 만남, 넷째 많은 후원자, 다섯 째 그 당시의 시대 정신(프랑스 혁명 등으로 인한 ’자유와 평등‘ 사상의 만연) 여섯째 베토벤 자신의 노력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이고 그럴 듯 하므로 이의를 달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일곱 째 베토벤이 앓았던 질병, 즉 청각상실을 듭니다. 정말 베토벤에게 청각상실이라는 고통이 없었으면 베토벤의 음악이 생성되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하는 이유도 다만 음악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청각상실이라는 고난을 극복하여 정상에 오른 그를, 평범한 우리는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조수철 교수가 베토벤 음악의 특징의 하나로 말한 ’영웅주의‘에 대한 고찰을 그는 융의 집단무의식 혹은 집단무의식을 이루고 있는 원형(archetype)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만 그렇게 어렵게 보지 않더라도 베토벤의 삶만을 일별해도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베토벤은 청각상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다가 거두고 그는 인생관이 바뀝니다. 고난에 주눅이 드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영웅주의‘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은 그의 ’영웅 교향곡‘, 피아노 곡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제21번(’발트슈타인‘), 제23번(’열정‘) 등이 대표적인 곡입니다.
조수철 교수의 ’영웅주의‘ 논리에 동의는 하지만 한두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베토벤이 그때의 시대정신인 ’자유와 평등‘에 경도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 ’자유와 평등‘이 과연 ’영웅주의‘와 같이 병행될 수 있는 사상인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조수철 교수가 말하는 부분입니다.
’말기 소나타에 와서는 중기의 극적인 표현은 사라지고 극도의 성찰을 통해 고난과 기쁨이 하나가 되는 상태의 영웅주의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현악4중주곡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며 베토벤이 일생 동안 추구했던 ‘영웅주의’가 <현악4중주곡 제12번(Op.127)>에서 재현되는데, 중기의 격렬함과 불같은 정열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 자유로움, 평화로움, 고요함의 형태로 표현된다.‘
한마디로 견강부회라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중기의 그 격렬함은 ‘영웅주의‘의 원형이라고 치더라도 말기에까지 그런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베토벤의 초기 작품도 나중의 ’영웅주의‘을 배태하기 위한 태동이 기간이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베토벤이 일생 동안 추구했던 영웅주의‘란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이런 극단의 감정을 가진 베토벤이 어떻게 ’대극합일의 사상‘을 가졌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까요.
조수철 교수가 베토벤 음악의 특징으로 말하는 ’환희‘는 어떤 면에서 ’영웅주의‘와 비슷한 논리입니다. 그의 좌우명이라고 하는 ’고난을 거쳐 환희로‘처럼 그는 신체적인 고통을 참고 이겨내서 마침내 환희를 부르는 경지까지 올라갔으며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승리자로서 노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환희의 대표적인 음악으로는 누구나 잘 알다시피 교향곡 제9번 ’합창 교향곡‘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수철 교수가 베토벤의 음악의 특징으로 든 것이 ’대극합일의 사상‘입니다. 사실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어서 저로서는 매우 생소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죽내 교수라는 분이 강의한 내용이 있어서 훑어보았습니다. ’대극합일’은 불교의 중도 사상이고, 융의 심리학을 관류하는 사상이다. 중도로서의 사상이란 집착하지 않고 깨달음의 경지로 가는 것이다.‘ 등등이 나와 있습니다. 조수철 교수도 노자, 장자의 글을 가지고 장황하게 설명합니다만 쉽게 말해서 아니 속되게 말해서 ‘도가 텄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대극합일의 사상‘이 베토벤 음악의 특징을 이루는지 저로서는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조수철 교수는 베토벤 음악 중에서 ’대극합일‘의 특징을 보이는 음악으로서는 후기현악4중주곡을 자주 예로 듭니다. 후기현악4중주의 고요하고 평안한 음악들이 바로 ’대극합일의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합니다.
’이러한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보수와 개혁, 흑과 백, 동과 서, 남과 북, 귀하고 천함, 선과 악, 높고 낮음, 행복과 불행, 있고 없음, 아름다움과 추함, 더러움과 깨끗함 등 모든 것이 대극적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대극적 상황에서 모든 인간이 가장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대극관계에서 벗어나 하나로 통일되는 ’하나 사상‘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로 통괄되는 과정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조수철 교수의 논리는 개념들이 혼동되어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자연과 인간‘ ’나와 타인‘ ’개혁과 보수‘의 개념들은 ’하나‘ 혹은 대극합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선과 악은 중도 사상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선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이 세상은 선한 것도 없고 악한 것도 없다, 그러니 악한 사람도 받아주어야 한다고 하면 인간 세상의 도덕은 다 포기해야 합니다. 이러한 대극합일이란 현상계에서는 어렵고 인간의 이상적인 이념의 세계에서 지향하여야 할 것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베토벤의 ’대극합일 사상’의 결론으로 몇 가지를 듭니다. 첫째, 베토벤은 ‘성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 관계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둘째, 베토벤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셋째, 베토벤은 ‘투쟁’과 ‘평화’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넷째, 베토벤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다섯 째, 베토벤은 조화로움과 부조화로움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여섯 째, 베토벤은 ’성(聖)‘과 ’속(俗)‘을 하나로 통합하였다.(이건 종교음악을 두고 한 말임) 일곱 째, 베토벤은 ’전통과 ‘개혁’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베토벤만이 특별히 위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이미 평범한 사람들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단계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고 우울하다가 다 수용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베토벤만이 인격적으로 훌륭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그가 든 베토벤의 음악의 특징으로 ‘대극합일 사상’을 드는 것이 딱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정말 심정적으로 와닿는 설득력은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샾이니 플랫도 없는 오선지에서 겨우 도레미솔… 정도를 읽는 실력이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4중주를 어쨌든 백번을 듣는다고 해서 이제 36번째 듣고 있습니다. 후기현악4중주를 들으면서 실력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전혀 대극합일의 사상이 제 몸으로 와닿지 못하고 오히려 파란만장한 베토벤의 삶의 애잔함 속에서 승화된 슬픔을 느낍니다.
칸트는 근대 미학의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을 ’반성적 판단‘ 이라고 합니다. 반성적 판단은 특수한 사실로부터 보편자로 나아가는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송재학의 시에서 명자나무꽃을 보고(특수한 사실) 떨림과 수줍음(보편적 사실)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미적 판단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성적 판단에는 심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이 있습니다. 후자는 자연에 대하여 내리는 판단입니다만 이 부분은 복잡하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예술 철학에는 세 가지 중심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술가가 우선이라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주로 니체가 주장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중심이 됩니다. 이의 예로는 플로베르가 있는데 그는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세속적 삶을 희생했다고 합니다. 둘째는 작품이 우선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헤겔과 하이데거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 예술을 창작한 작품이 우선이지 예술가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시인 네루다는 시는 뛰어나지만 그는 여자 관계도 복잡하고, 사회주의를 외쳤지만 자신은 부를 누리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작품은 우수해도 친일시비에 걸리면 그 작가는 힘듭니다. 셋째는 예술가,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감상자가 중심입니다. 감상자가 예술 작품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란 예술적(아름다움의) 재현의 규칙을 새롭게 제정하는 창조적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예술 작품에는 ’감성적 이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감성적인 것은 특수한 것이고 이념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붉은 장미(아름다움)를 보면서 특수한, 우연한 현상을 느끼고 동시에 어떤 이념, 즉 보편적인 것을 떠올릴 때 이것을 ’감성적 이념‘이라고 부릅니다. 베토벤의 경우를 들면 베토벤의 음악이라는 소리의 특수한 현상이 보편적인 이념, 즉 영웅, 환희 혹은 대극합일을 이끌어냈다는 말이 됩니다.
칸트는 특히 감상자에 대해서 취미판단을 분석하여 그 기전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감상자의 심미적 체험의 핵심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것으로 음미하는 취미판단입니다. 취미판단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객관적 조건에는 ’감성적 이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주관적 조건은 마음의 생기(쾌락)입니다. 우리가 어떤 아름다움을 보고 ‘감성적 이념’에 부딪친 순간 우리의 인식능력들은 자유로운 유희를 느끼고 그것은 마음에 생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칸트는 인간의 정신에는 감성과 상상력과 지성과 이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감성과 지성을 연결하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이 상상력에 의해 우리는 미적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까지 칸트의 미학은 김상환 교수의 『왜 칸트인가』에서 『판단력비판』 부분을 참조했습니다)
칸트의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베토벤의 음악을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 조망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이라는 예술가는 결코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가족 간에도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베토벤을 조기교육 시킨다고 무리했고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베토벤이 가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동생들과의 관계도 불편하여 의절하기도 했고 나중에 회복되기도 합니다. 동생 카를이 죽은 후 조카 카를을 과잉보호하여 그 자신이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베토벤의 임종의 순간에도 나타나지 않은 조카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시키는 베토벤을 보면서 육친의 피란 이렇게 진하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베토벤은 청각상실로 비사교적으로 되고 타인에 대해 무례하고 난폭한 언동을 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길지 않은 그의 생에 중에 ‘나무 위키’에 찾아보니 연인관계에 있었던 여자가 아홉 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여섯 명이 귀족이나 거상의 딸이었습니다. 귀족의 딸과 연애를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한 연인 어쩌고 하는 것에는 역시 세속적인 냄새가 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한 음악가가 된 것은 청각상실이라는 엄청난 고난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미적으로 아름다운 작곡들을 남겼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위대한 작곡가이라고 해도 그것을 기화로 인간 자체를 성인으로 만들고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의문이 드는 것의 하나는, 베토벤이 ’청각상실‘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베토벤의 그런 음악이 작곡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베토벤이라는 작곡가의 삶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합창’ 교향곡, ‘발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 ‘열정’ 소나타, 후기현악4중주곡을 들으면서 과연 그는 영웅과 환희와 대극합일을 느낄 수 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베토벤의 삶의 위대성도 중요하지만 칸트가 말한 ‘감성적 이념’과 ‘마음의 생기’로 베토벤의 음악을 느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