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을 넘어선 자유의 존재다
육개월 전쯤에 우연히 ‘네이버 열린 연단’에서 강연한 백종현 교수의 「순수이성비판」을 들었습니다. 사실 강연 중에 백종현 교수가 말한 “제가 칸트보다 칸트를 더 잘 아는 사람입니다”라는 말 외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칸트를 안 지는 오래 되었지요. 칸트는 독일 사람인데 생활이 얼마나 규칙적인지 그가 산책하는 시간을 보고 주민들이 지금 몇 시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그가 평생 자기 살던 곳을 떠나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 가능한 건지 하면서 별난 사람인가보다 했습니다.
칸트의 원작은 번역본이라도 뭔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백종현 교수 외 몇 분들의 해설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대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갈피를 잘 못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철학용어들이 생소하니까 내용보다도 우선 그 철학용어에 정신이 팔리게 마련입니다. ‘순수이성’이라니 그럼 불순한 이성도 있나, ‘초월’은 무엇을 넘어간다는 거지, ‘경향성’이 욕망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왜 경향성―영어로는 ‘기울어진다’는 의미인데―이라고 하지, 등등 많습니다. 이건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것 아닌 증상들을 가지고 의사들끼리 의학용어를 쓰면서 뭐라뭐라 하면 일반인은 못알아 듣습니다.
그러던 중에 읽은 김진 교수와 한자경 교수가 공저한 『인생교과서 칸트』는 기획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개의 해설서는 칸트의 3대비판서의 원저에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것입니다. 반면에 이 『인생교과서 칸트』에서는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중요한 주제를 뽑아서 제시하고 두 분의 교수가 각자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읽으면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산뜻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전부를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만.
저의 개인적인 느낌은 김진 교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스타일 같았습니다. 자연히 생각의 폭이 넓은 면도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 것은 무언가 복잡하지 않나 했습니다. 반면에 한자경 교수의 이야기는 간략하고 분명한 면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나름으로 소화한 것을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칸트 책에 대해 독후감을 제가 쓴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겨우 숲에 들어가서 나무들 이름도 알아내기도 힘든데 숲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서 진정한 의미의 독후감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읽으면서 인상이 깊었던 장면만 말해보려고 합니다. 김진 교수는 ‘자연악은 인류문화의 진보를 위한 도전’이라는 제목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길지만 생략하면서 인용합니다.
(2011년 일본 도후쿠[東北] 지방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과 대형 쓰나미로 말미암아 수만 명의 인명 피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라는 초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일본 지성인들은 .. 일본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경고라고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은 군국주의 조상들의 반인륜적 학살행위를 미화하면서 전쟁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진정 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는 등 후안무치하고 야비한 형태를 보임으로써 세계 각국의 비난에 몰려 있는 처지다. .. 그러므로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징벌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칸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정치인들은 3·11 대지진을 자신들의 부당행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칸트 얘길 하다가 뜬금없이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가 나오는 저의가 이상했습니다. 할 수는 있다고 해도 철학자로서의 냉철한 논리가 없습니다. 시민운동가의 소리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연재해는 ’신의 복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말을 김진 교수는 인용했습니다. 칸트는 자연재해가 종교적·도덕적 가치판단과 관련 있는가에 대해서 ’터무니 없는 호기심‘일 뿐이라고 일축하고’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일본의 대지진을 이렇게 논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베, 군국주의, 학살행위, 진정한 사과와 배상, 세계 각국의 비난’ 등을 말하는 게 철학자로서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 논리라면 왜 중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지. 조선이 중국에게 얼마나 많은 침략과 수모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역사책을 읽지 않았는지 그의 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 일은 세월이 너무 흘러서 별 상관없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진 교수는 자연재해에 대해서 더 논리를 전개합니다. 물론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칸트의 생각을 전하는 것입니다만. 사회는 ‘반사회적 사회성’에 의해 발전하고, 국가들 간의 전쟁도 결국은 인류의 문화발전으로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재해도 그러한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개인이 성숙해진다고 합니다. 물론 칸트도 전쟁을 인정하면서도 ‘영구평화’를 주장하므로 모순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이와 같은 논리가 맞다면 조선에 대한 일제의 침략은 민족적인 비극이었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나라가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진보를 위해 일본은 ‘필요악’이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김진 교수는 일본에 대해 심한 비판을 한다면 칸트의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그러한 언급을 하는 것이 철학자로서의 자세가 아닐까요. 게다가 의도는 안 했겠지만 자연재해로 2만 여명이 그들의 죄값으로 죽임을 당한 그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연민의 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 사회는 일본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말을 하면 사회가 벌떼 같이 일어나니까 말하기가 조심스러워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는 일반인보다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좋지 않고, 나이까지 들다 보니 기억력과 이해력이 떨어져 칸트의 사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좀 더 젊었을 시절에 칸트를 읽었으면 제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지금과는 달랐으리라는 아쉬움은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