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통해 이미지를 자세히 그려보기’
이 책도 다시 살펴보니 2012년 8월에 읽어 봤으니 10년이 됐습니다.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이 책은 나탈리 골드버그나 주디 리브스와 같이 문학적 글쓰기보다는 바버라 베이그가 말하는 ‘의무적 글쓰기’ 혹은 ‘기능적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베이그가 한 말 중에서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것은 고작 이런 말뿐이었습니다. ‘작가가 하는 말보다 말하는 방식을 보고서 글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작가가 사용한 말의 예술성에거 순수한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작가가 전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문장이 주는 맛을 얘기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베이그의 책에서는 일단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베이그가 주대상으로 하는 의무적 글쓰기나 기능적 글쓰기는, 다시 말해 실용적 글쓰기는 주로 보고서나 과학적 논문 같은 것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수도 없이 많지만 대개는 ‘~해라’, ‘~하지 말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베이그의 조언 중에서 저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상상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었습니다. 베이그의 말에 의하면 ‘상상력은 감각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정신적인 기능이다’라고 합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은 모두 상상의 산물입니다. 문학이란 상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고등교육에서의 초점은 추상화된 지식, 지적 능력의 단련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명확한 사고와 주장을 펼치는 능력은 갖추어져 있으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글은 잘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나옵니다. 바로 상상력을 단련하는 방법을 베이그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미처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선 눈을 감고 백지 한 장을 떠올립니다. 바둑판 같이 네모칸을 그립니다. 그 다음 그 속에 빨강을 채워봅니다. 둘레의 네모를 원으로 바꿉니다. 원을 파랑으로 합니다. 다시 네모로 갑니다. 네모칸을 지우고 백지로 돌아옵니다. 이런 식으로 초록, 노랑으로 채우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를 자세히 그려봅니다. 예를 들면, 햇빛이 고양이 털을 하나하나 속으로 들어간다,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 가르랑 소리를 낸다, 이렇게 상상을 해봅니다. 더 나아가면 상상력으로 자세한 그림을 그려봅니다. 햇빛이 고양이 털 속을 헤치고 들어가자 초록색이 반짝거렸다, 혹은 개가 거리를 건너간다, 차를 뛰어넘는다, 구름 위를 달린다, 개의 발이 구름 속으로 빠진다, 바람이 불어 구름을 뒤집는다……. 이렇게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그림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시각 등 오감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그릴 수도 있고 더욱 과격하게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심상적(mind picture)으로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제로 (Zero Draft)‘라는 말을 이 책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초안(草案)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흔히 쓰는 초고(草稿)는 영어로는 ’Rough Draft’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글, 즉 독후감을 쓰면서 제가 하고 있는 행위가 베이그가 말하는 ‘제로 드라프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후감을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그 자리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것을 쓴다든지, 책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쓴다든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확하게 집어내어 정리하여 알려준다든지 합니다. 그 중에서도 후자가 베이그가 말하는 ‘제로 드라프트’를 이용하면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제시하고 싶은 점 서너 가지에 적합한 것을 책에서 취사선택하여 ‘제로 드라프트’를 만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막연히 책의 내용만 발췌한다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반드시 자신의 관점, 깨달은 점을 밝혀 두어야 합니다.
셋째, 책의 마지막에 베이그는 ‘작가의 길을 따라가기’라는 챕터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작가가 되려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충고입니다. ‘작가가 되려면 오직 두 가지가 필요하다. 글을 쓰려는 욕구과 자신의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려는 시간과 정력을 쏟으려는 자세이다.’
무얼 말합니까? 글을 쓰려는 열정을 가져야 하고, 목표를 세운 다음 시간과 정력을 거기에 전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글쓰기 작가가 되는 데만 통용되는 논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직업에도 다 적용됩니다. 아니 공부하는 중고대학생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베이그의 말을 더 인용합니다. ‘아이스크림 맛에서부터 텔레비전 채널까지 선택할 것은 끝이 없다. 이 많이 다가오는 시간 중에 선택하여 글쓰기로 채워넣어야 한다.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뭔가를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즉 영화관이나 친구를 방문하는 일 등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베이그가 설마 친구를 절대로 찾아가지 말라고야 했겠습니까. 쓸데없이 친구 찾아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나에게 부여된 일하는 시간 외에 주어지는 여가의 시간에 글쓰기로 소비함으로써 나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런 시간을 찾아가서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베이그는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글쓰기가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기를 바라는가?’ 이 말은 목표를 세우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글쓰기를 해서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 거기서 자신의 성취와 기쁨을 향유하려면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지 말고,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유튜브를 보지 말고 그 시간에 글쓰기―학생이라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시간과 정력을 쏟지 않고 그냥 최고의 작가가 되겠다는 욕구만 가져서는 하세월(何歲月)이 될 뿐입니다.
중학생이 된 손주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보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는 시간에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상기해서 그 시간에 목표에 필요한 내용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납니다. 물론 이런 인과율이 완벽하게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인생의 어려움이고 불공평이고 신비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지금은 베이그의 이 말을 믿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