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쓴 편지』 許萬夏

‘상상력은 지각으로 얻은 이미지를 고의로 비틀어 놓는 능력이다‘

by 현목

이 책은 『길과 풍경과 시』와 기조는 거의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길과 풍경과 시』보다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미지의 길 위에 서고 싶었다. 시시각각 새로운 감수성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 소망으로 나는 나들이 길 위에 섰다. 그것이 시의 길이란 사실을 길 위에서 깨닫기도 했다. 길은 나에게 사색의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이 말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고 허만하 시인이 주로 절과 고갯마루 계곡 등을 다니면서 자신이 풍경을 통해서 마주치는 어떤 정서, 또 그 정서를 통한 이미지로 등가되는 어떤 형이상학으로 도달하는 과정을 자신의 평생의 시작(詩作)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시를 써야한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 자신은 사천에 와서 한 3년간 점심때마다 논두렁을 한 시간 가량 걸으면서 발견한 야생화들을 핸드폰으로 찍어서 저장해 놓고 앱을 통해 이름도 확인해 두었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풍경을 통해 시를 만들 듯이 저도 이 야생화를 가지고 시를 짓고 싶으나 생각만 막연히 하지 능력이 닿지 못해 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생화(사물)를 보고―랭보의 견자처럼―본질을 찾아서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거나 관념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역부족입니다.


「이 풀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분자생물학적 실험에서 겨울의 저온 노출이 꽃핌을 촉진하는 필수 조건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겨울 추위는 개화를 억제하는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광주기에 의한 빠른 꽃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겨울의 저온 노출이 꽃핌을 촉진하는 필수조건이라는 말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이런 유추를 하기 쉽습니다. 인간에게 고난은 꽃들의 저온 노출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개화를 억제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인간도 고통을 통해서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라고 말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이런 교훈류의 이야기를 티뷔 같은 데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너무 센티멘탈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의 뇌는 편안함을 좋아하고 그리로 지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완성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입버릇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나에게 고난을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피하다가 어차피 닥치면 참고 견디고 그리하여 극복이 되면 고난을 찬양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섬진강의 매화 이야기를 허만하 시인은 합니다. 광양 다압 매화 마을이 워낙 유명하여 한두 번 가보기는 했지만 너무 사람이 많고 교통이 번잡하여 이제는 잘 안 갑니다. 매화를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당혹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꽃은 맑고 귀티가 나지만 나무 자체의 풍모는 그에 따라 주지를 못합니다. 둥치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볼품없이 솟아 있습니다. 고목이 되면 둥치와 줄기가 오래된 옷처럼 너덜너덜한 느낌을 받습니다. 매화하면 선비라고 하는 선입견을 받아온 터라 그 자태에 약간 갈등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2,3년 전에 대구의 서예가 토민 선생님에게 글을 받아서 제 서가에 걸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16장 일부입니다. 행초로 쓴 글씨인데 토민 선생님의 특징은 유려하면서도 그 안에 졸함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 봅니다.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 가나 결국 모두 그 뿌리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 뿌리를 돌아감은 고요를 찾음입니다. 이를 일러 제 명을 찾아감이라 합니다.) 사실은 토민 선생님의 매화 한점이 욕심이 나지만 아직은 여건이 안 되어 소원성취 못하고 있는데 때가 되면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노을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말을 잃어버리지요. 노을은 하나의 놀라움입니다」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과 시집을 읽으면서도 새삼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노을, 바람, 햇빛, 강물 구름 이런 말이 너무도 빈번히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자연으로서 가장 강렬하게 자신의 몸을 부딪치고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주체는 자신의 의식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한계를 잘 알고 그 유한함을 무의식 중에 의식하는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만나는 저녁 노을은 색깔마저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노을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그런 노을에 그가 감동하고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보았던 ‘필봉’이란 이름의 산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셋 있소. 하나는 양양 일월면 주실 마을(조지훈 생가)에서 바라본 필봉, 다른 하나는 해남 윤선도 고택 녹우당(綠雨당)에서 바라본 안산 바른편 필봉 그리고 산청 왕산(王山) 옆 필봉산이오. 이 가운데 산청의 필봉이 으뜸이었소」

왕산 옆 필봉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반가운 마음입니다. 거길 갔다 온 적이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녹우라는 말이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초록비’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하고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멋있는 고택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송재학의 시 「성산포에 비가 오면 -제주시편 3」에 나오는 청우루가 생각났습니다. ‘해 없는 날 그곳은 빗소리의 근거지,/동쪽 하늘에 자주 청우루(聽雨樓) 편액을 탕탕 못 박는 먹구름’


중국의 평요고성(平遙古城)(산서현 중부 평요현에 있다고 하는데 북경과 남쪽 서안 중간 지점, 중국의 한가운데 있습니다)의 청우루라는 편액을 보자 청우라는 말이 제가 써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까웠습니다. 저의 호를 윤선도처럼 ‘청우루’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상상을 한 셈입니다. 지금은 비가 와도 아파트에 있으니까 비의 정취를 못 느낍니다. 어릴 때는 집에 있으면 비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도 듣고 추녀 끝에서 비가 땅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도 쳐다봅니다. 자연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그런 정취가 그립습니다.


기왕에 나온 이야기니까 제 호 이야기도 하고 싶네요. 저의 호는 현목(玄木)입니다. 1985년 제가 의정부에 잠시 있을 때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 스승인 삼여(三如) 송용근 선생님이 지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자는 스님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검다, 오묘하다, 깊다, 고요하다, 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목자는 나무, 질박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뜻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 외 김호인 선생님이 지어 주신 남운(南雲)이라는 호도 갖고 있습니다. 서재 이름을 원래는 공자의 학이편 처음에 나오는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호자 세 개를 따서 ‘三乎齋’라고 지었으나 인터넷에 보니 다른 사람이 쓰고 있길래 낙담하다가 어느 날 ‘學而’라는 말을 따서 짓자고 해서 지금까지 학이재(學而齋)를 제 서재의 이름으로 삼고 있습니다. 삼여(三如) 선생님도 좋다고 하여 學而齋의 글씨도 써 주셔서 제 방에 걸어놓았습니다.


「형, 우리는 끝내 정신의 대숲에 살기를 함께 약속합시다. 변경에서 시를 쓰는 외로움을 맑은 긍지로 삼도록 대숲을 건너는 바람 소리가 귀뜸해 주고 있소」

‘정신의 대숲‘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제는 물욕을 내려놓고 정신의 대숲에서 부는 바람 속에서 살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조지훈 시인이 좋아했던 한시 한 구절이 내 여행 수첩 첫머리에 올라 있소. .. “산다운 산 다 보고 남은 산 없으니 눈썹에 흰 눈이 가득하다/看盡千山雪滿眉”라는 허방산(許舫山) 선생의 한 줄이오」

허만하 시인이 여행에서 돌아와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해서 글을 쓸까 하고 궁금해 했는데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그는 여행 수첩을 사용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유럽 여행을 가서 조금 사용했으나 그때뿐 지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료가 많이 모였으면 글이 더 풍부해졌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다 물빛과 노을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계절이 겨울이지요. 겨울철에 바다와 노을은 저마다 본연의 빛깔을 되찾지요. 자연을 따라 정신도 투명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인적 없는 썰렁한 들녘을 바라보며 낙엽이 구르는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는 길 위에서 참된 자아의 모습을 만나려는 뜨거운 소망 때문에 스며드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소」

허만하 시인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물빛’입니다. 저는 바닷물을 보거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저수지를 보아도 물에 햇빛이 반짝이는구나 하는 정도지 거기서 물빛을 특별히 구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허만하 시인의 이 작은 차이가 시인으로서의 엄청난 실력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사소한 것에 집중하고 그 이미지 내지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창의 계방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는데 갑자기 제 머리에는 한자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계방산이라고 읽으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뉘집 아이 이름처럼 산이름이구나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桂芳山이라고 읽으면 읽는 순간 계수나무의 향기가 많은 산이구나 하는 상상이 그려집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산이름이구나 하는 것과 계수나무의 향수를 그리는 것은 차이가 엄청납니다. 우리의 머리 속의 상상력의 능력이 도저히 비교가 안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차이가 무수히 생긴다고 하면 그 총합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런데도 한글전용이 이 민족의 정신력에 이로움을 끼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혼자서 낯선 길을 더듬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동행하러 뒤쫓아 왔다는 말을 하면 들길을 앞장서는 것이었다」

허만하 시인은 1990년인 58세에 뇌졸중이 와서 수술을 하고 모르긴 해도 한쪽 수족이 불편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다니시고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정말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글에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몸으로 평지도 아닌 고갯마루, 오지로 찾아오시는지 불가사의합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독일어 시 한 구절이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떨어지는 것을 깨닫고 놀랬다. “위베르 알렌 깁페른(Ueber allen Gipfeln/ 이스트 루(ist Ruh)(모든 봉우리 위에 휴식이 깃들고)란 한 구절이었다. 그것은 의예과 독어 시간에 배웠던 괴테의 시 첫 구절이었다」

제가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릴 때 아마 중고시절에 시를 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외우는 시가 거의 없습니다. 놀랍습니다. 괴테의 「나그네의 밤노래」라는 시를 아직도 암기를 하고 있다니 부럽기까지 합니다.


「하이데거는 모든 사색은 시작(詩作)이고 모든 시작은 사색이다“라고 말했다. .. 그동안 시적 언어는 상상력을 담보로 지나치게 감각에 기대어 온 것을 반성해야 할 것 같다. .. 나는 한국 시도 이제는 철학과 사귀어야 할 분수령에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상을 장미의 꽃으로 느낀다“는 엘리엇의 말을 살펴보더라도 선행하는 것은 사상이다. 이 사상을 향기로 만드는 언어의 특수한 양식이 시다」

어떤 사상을 개념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논리적인 전개로 사람을 설득하면 그것은 철학이 될 것입니다. 시는 사상을 ‘장미꽃’으로 향기로 혹은 이미지로 환원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허만하 시인은 한국 시도 너무 지각의 상상력으로 경도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유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터넷에서 김우창 교수의 릴케 시에 대한 강의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니다. 「로마의 분수」 「영양(羚羊)」 두 편을 해설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시는 감정이 아니라 어떤 사유에 대한 시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제껏 시를 쓴다면 희노애락의 정서를 나타내려고 했지 철학적 표현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앞면에 드러나 있는 현상에 시선을 빼앗기기 일쑤다. 바다는 물빛 한 번의 번뜩임을 위하여 눈에 뜨이지 않는 남청색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깊이를 바라보는 정신을 현대는 잃어가고 있다. .. 여름 바람의 결과 가을 바람의 결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둘레에서 사라지고 있다. 나들이란 이동의 수단이 아니다. 길 위에 선다는 것은 영원한 과정에 대한 헌신이다」

물빛의 여러 가지 다름을 느끼고 여름바람과 가을바람의 결의 차이를 지각하느냐의 여부가 시인이 되고 안 되고의 갈림길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눈앞에 전개된 현상에만 시선이 가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맙니다. 또 그 차이를 느끼는 우열에 따라서 시인의 우열도 결정됩니다. 따라서 그런 작은 감각 하나하나에 얼마나 세세하고 예민해야 하느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유난히 고갯마루(재)를 좋아합니다. 사실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지만 막상 절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불교의 교리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절 주위의 풍광과 고갯마루가 수도 없이 그의 산문집에 나옵니다. 재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고개는 인류에게 길을 가로막는 장벽인 동시에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이어주는 다리의 기능을 하기도 하는 특수한 자리다. ..고갯마루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메타포가 된다. 고개는 장벽과 소통이라는 서로 모순된 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을 보면 그의 출생지는 대구이고 부산에서 거의 생활을 한 것 같이 보이나 강원도와 전라도에서도 잠시 살았던 얘기가 나옵니다. 특히 강원도 동점역을 유난히 애착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왜 그러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동점역을 첫시집(『海藻』)의 제목으로 삼고 싶었는데 여의치 못했고 나중에 일본어로 자신의 시집을 낼 때 그 시집 제목을 『銅店驛』으로 했다고 합니다. 한자로 역 이름도 범상치 않고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역으로 현재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이라고 합니다. 무언가 신비하네요.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이 있고 새로운 철학을 찾는 열기가 고여 있던 지하실. 저마다 새로운 개념을 하나씩 가지고 찾아 들던 우정이 싹트던 공간.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야스퍼스 같은 이름들이 친구 이름같이 떠오르던 나날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무렵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고 카뮈를 만났다」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제 대학생활이 저 멀리 구름 속에서 아련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당시는 종로의 ‘르네상스’ 고전음악 감상실이 있었고 명동에도 있었습니다. 허만하 시인처럼 만난 작가들이 있습니다. 저는 헤르만 헤세, 카뮈, 키에르케고르, 생텍쥐페리, 브람스 등이 생각나지만 허만하 시인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수박에 겉핥기였습니다. 제 젊은 날의 아쉬웠던 점은 허만하 시인같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없었습니다. 그저 피상적인 문학 공부와 얄팍한 감상뿐이었던 제 청춘에 대한 후회가 잔설처럼 남아 있는 쓸쓸함을 맛봅니다.


「나는 LA 교외 라팔마에 있는 성도 집에서 자던 날,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지배하고 있는 신비한 힘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때 자기를 시골 간이역 역장에 비기는 것이었다. 그 은유를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 마르셀의‘ 만남의 철학’은 이런 경위 모두를 초월한 원초적인 의미로서의 실존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저는 성격이 적극적이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자연히 교우 관계도 많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친구는 대여섯명에 그칩니다. 그나마도 제가 적극적으로 연락하는 법은 별로 없고 내가 아쉬워 부탁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내게 편지라도 연락하면 반드시 답장은 하는 편입니다. 허만하 시인의 친구와의 모습을 보고 반성하는 점이 많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남지 않은 여생을 제가 성격이 바뀌어야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메일이 아니라 구식으로 편지지에 봉투에다가 우표를 붙여서 부치려고 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상상력은 지각으로 얻은 이미지를 고의로 비틀어 놓는 (데포르메하는) 능력”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뚤어진 기둥은 그 무렵 대목(大木)들의 새로운 상상력의 소산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길과 풍경과 시』에서도 나온 말인데 굳이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를 쓸 때는 절실한 것입니다. 거창 수승대의 누각을 받치고 있는 네 기둥 중 왼쪽 기둥이 엿가락보다 더 비틀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슐라르가 말한 ‘지각으로 얻은 이미지의 데포르메’를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길을 떠나는 일은 낯선 바깥과 열린 마음으로 사귀는 일이다. 이 사귐을 통하여 생소했던 지형은 낯익은 풍경이 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으로 나그네는 길 위에 선다. 그것은 바깥을 향한 나들이가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내부를 향한 발걸음이란 것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했다」

「프루스트는 “발견을 위한 길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말을 했다」

허만하 시인은 결론적으로 ‘길 위에 서는 일은 단순히 경치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정신의 깊이와 넓이를 키우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평생의 철학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終)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