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시적 방랑과 유럽 여행』김재혁

‘시인은 창작을 실현하는 시점에 가장 참되다’

by 현목

「릴케는 눈의 인간이었으며 공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 공간에 대한 그의 특별한 감각은 여행과 방랑을 통해서 창작의 근본 자양이 되었다. 이별이나 사랑 같은 추상적 개념도 그에게 오면 이런 공간 개념으로 그려졌다」

김재혁 교수가 이 책을 시작하면서 서문에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 책을 다 읽고도 릴케의 시가 공간개념으로 썼다는 느낌은 잘 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이면서 수도사 같은 삶을 살았던 릴케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생의 테마, 그가 가졌던 삶의 태도, 여러 예술가들과의 만남,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각 종교에 대해 품었던 생각, 방랑 시인으로서 떠돌며 각 도시와 그곳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인 느낌, 때로는 독자로서 때로는 번역가로서 다양한 책에서, 다양한 물에서 받은 영향, 우리 독자들에게 늘 거대한 산으로 다가오는 『두이노의 비가』에 대한 얽힌 이야기등을 다채롭게 다루어 독자들의 교양식견을 넓히는 데 일조할 생각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의 하나는 이런 식의 책, 다시 말해 릴케와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상의 대화를 하고 게다가 그때 그때 알맞는 사진을 제공하는 이런 형식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릴케라는 산을 구석구석 다 알지 못하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재혁 교수의 릴케에 대한 평생의 내공이 집약되었다고 봅니다.


「릴케의 작품들은 육체적 감각과 추상적인 정신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음악이고 그림이므로 글을 탄생한 곳을 직접 체험하고 맛보는 것은 필수 과정이다」

저는 이제껏 릴케라면 「가을날」 시 정도만 알았고 기도문처럼 감상적인 시가 아닌가 하고 짐작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게 바로 이 시 「가을날」입니다. 신을 향해 비는 겁니다. 시인으로서 내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요. 그 신은 언어의 포도원을 가꾸는 농장주입니다. 시인이라면 그렇게 섬기는 대상을 마음속에 하나씩 갖고 있지 않나요?」

시를 취미로 쓰는 사람과 시를 직업 아니 사명으로 하는 사람과의 다른 점이 여기입니다.


「사실 내가 문학을 하면서 늘 생각한 것은 불안으로부터 시를 만든다는 것이었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해서 더 그랬습니다」

제가 감히 문학을 한다고 말할 자격은 없으나 시 언저리에서 헤매게 된 경위는 국민학교 3학년 때쯤 당숙되는 아저씨가 경남중학교 백일장에 합격한 시를 내게 보여준 때부터 시작하여 대학생활을 하면서 시를 만났고, 2001년에 인터넷 시창작교실에서 육군사관학교의 고이기윤 교수와 이화은 시인에게서 공부했고, 최근에는 박종현 선생님, 송재학 시인의 시집, 허만하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김재혁 교수의 릴케에 관한 서적들과의 해후입니다.


「창은 목표를 향하여 날아갈 때 진정한 창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창이 되기 위해서는 땅에 누워 있거나 울타리에 격자 창살로 꽂혀 있을 때도 자신이 창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언젠가 날아갈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절 보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로댕 선생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정말 엄숙하고 치열한 분이었죠. 내 아내 클라라의 스승이기도 하셨고요. 나한테 충고를 해주더군요. “젊은이 일하게” 하면서. ..그렇습니다. 실제로 로댕 선생은 늘 일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스케치를 하고 책을 읽었어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마흔 번의 스케치를 할 정도였다니까요」

재능도 없는 저는 로댕의 반에 반에 반도 못하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잘 관찰하고 하는 일이었어요. 로댕 선생은 내게 방에 가만히 있지 말고 베르사유 궁에도 가보고 낙수 홈통은 어떻게 생겼고 처마는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마침 송재학의 「튤립에게 물어 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가 튤립(사물)을 보고 본질을 파악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튤립을 관찰하고 ‘모차르트’ ‘등대’ ‘리아스식 해안’ ‘병’ ‘휘어진 길’ 등을 보고 그것을 이미지화시켜서 한 편의 시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튤립이라는 사물시를 써보자고 화원에 가서 끝물이라는 튤립을 하나 사왔습니다. 며칠간이라도 관찰을 해보아야겠습니다.


조형예술이 어떻게 언어예술인 시에 접목될 수 있을까라는 김재혁 교수의 질문에 릴케가 말합니다.

「그걸 저는 변환이라고 봐요. 표현 매체의 변환이죠. 상상력의 작용이기도 하고요. 언어적 상상력이 조형적 상상력과 만나는 거지요」

릴케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안 되는 게 이것이었습니다. 시를 미술적 이미지로 변용한다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조형적으로 변용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조형이란 이미지기도 하지만 그림과 다른 점은 3차원이라는 공간성인데 이게 어떻게 글로 나타난다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표범」을 한번 보겠습니다.


표범

-파리, 식물원에서


그의 눈길은 스치는 창살에 지쳐

이제 아무 것도 붙잡을 수가 없다.

그에겐 마치 수천의 창살만이 있고

그뒤엔 아무런 세계도 없는 듯하다.

아주 조그만 원을 만들며 움직이는,

사뿐한 듯 힘찬 발걸음의 부드러운 행보는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서 있는

중심을 따라도는 힘의 무도(舞蹈)와 같다.

가끔씩 눈동자의 장막(帳幕)이 소리없이

걷히면 형상 하나 그리로 들어가,

사지(四肢)의 긴장된 고요를 뚫고 들어가

심장에 가서는 존재하기를 그친다.


이 짧은 시에 직유가 세 개나 있다는 것 외에는 어디가 조형적 언어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형상 하나 그리로 들어가/사지(四肢)의 긴장된 고요를 뚫고 들어가’ 이 구절이 조형적이라는 걸까요?

릴케가 『신시집』에 장미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고 합니다. 그것은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서 말한 체험시론관과 관련이 있다고 김재혁 교수는 말합니다. 실제로 릴케는 뮈조 성에서도 장미밭을 만들어놓고 가꾸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시는 체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제가 박종현 시인의 시강좌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제는 옛날과 달라져서 시는 체험하지 않아도 픽션으로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시의 진정성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되나 하는 우려도 생겼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거듭 읽어도 자꾸만 읽고 싶은, 언어의 기쁨을 제공하는 작품을 쓰고자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시에서 사유의 여지를 둔다면 더 좋겠고요」

‘언어의 기쁨을 준다는 말이 기막힙니다. 요즘 읽은 시로는 송재학의 「튤립에게로 물어보라」 「모슬포 가는 까닭」 「청수국」이 주는 읽는 맛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재혁 교수가 릴케와 서울에서 인터뷰하면서 릴케에게 들은 말이라고 합니다. 「헤어지기 전에 내게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축복할 줄 알아야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했던 그였다」

「네 그렇습니다 죽음을 삶의 꽃이요, 열매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고유의 죽음을 죽는다는 것은 곧 삶을 하나의 열매로 맺는 일입니다」

우리는 죽음은 이승의 삶이 공허로 돌아가는 것, 만사휴의(萬事休矣)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내 삶의 시간이 빛과 광합성하여 초라할지 몰라도 내 역량만큼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사랑과 만족이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길입니다.

‘죽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라고 하는데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것 때문에 예수도 부처도 온 것이고 누구는 이생에서의 자신의 삶을 다 던지고 평생 ‘제대로’ 이해하려고 애쓰다 갑니다. 삶의 풍요는 어쩌면 거꾸로 죽음의 제대로 이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별>이라는 시에서 이별을 뻐꾸기가 앉아 있다가 날아가버린 자두나무에 비유한 것을 보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뻐꾸기가 몸무게로 살며시 눌러줄 때의 그 존재감이 뻐꾸기가 날아가면서 공허감으로 바뀌는 순간을 어찌 이보다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별」이란 시를 봅시다.


이별

이별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아는 이별, 어두운, 상처 입지 않은,

매정한 어떤 것: 아름다울 만한 것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면서, 질질 끌며,

찢어버리는 어떤 것.

어떻게 아무 방어 없이 나는

그곳에 나를 부르고, 가게 하고, 남게 하는

그것을 쳐다볼 수 있었던가. 모든 여인들이 그렇듯

그래 보아야 보잘 것 없어지고, 이것밖에 없네.

한 번의 윙크, 이젠 나와 상관없는,

계속되는 한 번의 가벼운 윙크―, 그것은 이미

아무런 뜻이 없네: 아마도 한 마리의 뻐꾸기가 날아 올라

황망히 떠나버린 한 그루 자두나무인지도 모른다.

릴케의 시를 읽으면 아직 그 진수를 모르는지, 아니면 번역어라서 그런지 시적 언어의 긴장감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시도 1연, 2연 3연 중반까지 거의 설명하는 진술로 보입니다. 마지막에 ‘아마도 한 마리의 뻐꾸기가 날아 올라/황망히 떠나버린 한 그루 자두나무인지도 모른다.’ 정도가 시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내가 평생 손에 지니고 다녔던 책은 성경과 섬세한 영혼의 움직임을 그려낸 덴마크 작가 예스 페터 야콥센의 작품이었어요」

야콥센의 작품은 차치하고 릴케가 성경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릴케의 작품에 천사―딱히 성경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운운이 많이 나오고 마리아도 수도 없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는 도그마라고 하며 격하게 비난하고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면서도 심지어는 자신의 무덤을 라론의 교회에 두면서 그가 기독교에 대해 취하는 행보는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을 저는 갖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두이노의 비가」와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 「빵과 포도주」가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릴케의 천사와 횔덜린의 신들이 하는 역할이 비슷하고, 시적 화자의 자세도 비슷해 보인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전후좌우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독창적 작품은 없다는 것입니다. 김재혁 교수의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을 보면 한국의 유수한 시인들이 릴케 작품을 모방한 것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물론 전적으로는 아니라 발전적 모방이지만 말입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김춘수, 김현승 허만하 시인입니다.


「많이 관찰하고 생각하다 보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관찰은 별로 안 하고 머릿 속에서 어떤 느낌을 쫓아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곳의 풍광이 내 영혼 속에서 움직이던 언어를 대신해 주었어요. 이 풍광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작품을 위한 적당한 등가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등가물’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제가 생각한 혹은 발견한 원관념에 적절한 등가물(보조관념)을 찾아내는 것이 시쓰기의 비밀이라는 걸 저는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가 뮈조 성의 밤하늘을 보고 1924년 10월에 쓴 시이다. 뮈조 성과 밤하늘과 그 아래 뜰에 서 있는 릴케가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는 시작품이다」 김재혁 교수의 말입니다.

밤이여, 오 내 얼굴에 닿아

깊이 풀려 버린 얼굴이여.

너, 내가 놀라워 바라보는 가장 위대한

압도적인 존재여.

밤이여, 너는 내 눈길에 깜짝 놀라면서도,

하지만 안으로는 탄탄하다.

다함이 없는 창조여. 너는 지상에 남은

나머지 영혼 위에서 존속하며

젊은 별들로 가득하다. 도망치는

가장자리에 불꽃들을

소리 없는 사이 공간의

모험 속으로 던지는 별들로.

너의 단순한 존재만으로도, 나는

작게만 느껴진다, 너 우월한 존재,

그렇지만, 이 어두운 대지와 하나 되어,

나 네 안에 있어 보리라.


자주 나오는 영탄조가 아직은 익숙지 않아 거부감이 들지만 시의 내용에서 이미지의 상상력에 의한 구조는 탄탄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소는 하늘이 아닌가 합니다. 하늘의 모습이 자연풍경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김재혁 교수의 말입니다. 릴케의 시를 아직 통독하지 못해서 뭐라고 얘기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가 하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천사 얘기, 마리아 얘기가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를 낭만주의자라고 말하고 노발리스와 횔덜린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특히 노발리스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신시집』의 대표작이라는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라는 시에 대해 릴케에게 물어봅니다. 눈도 없는 토르소를 ‘눈’이 몸속에 틀어박혀 있다고 상상한 릴케의 기법이 탁월하다고 칭찬합니다. 이렇게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릴케만의 어떤 작업방식이 무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일단 토르소가 되어 보는 겁니다」

이 말은 「청수국」에서 릴케가 한 말입니다. 사물이 되어 보고, 또 사물과 대화를 나누라고 합니다. 김재혁 교수는 아마 자신도 이상했던지 마지막의 뜬금없는 ‘너는 너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가 왜 나왔는지 릴케의 친구인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혹평까지 빙자하여 질문합니다. 릴케의 대답입니다

.

「그건 자연스런 귀결이지요. 아름다움의 극치를 바라보고 거기에 온몸이 꿰뚫리도록 빛을 쐰 사람이 어찌 그 작품을 보기 전과 같을 수 있겠어요?」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요. 독일어에서는 문장부호로 쌍점(:)을 쓰면 자기가 한 말을 다시 설명하는 거잖아요. .. 이 쌍반점(;)의 뜻은 대비를 말하죠. ‘반면에’라고 하는 거지요.」

독일 시에 나오는 쌍점과 쌍반점이 나와서 어리둥절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되겠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와 쇼펜하우어와 니체와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릴케와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같다라고 말하니 기억해 둘 만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의 모든 삶이 ‘의지’라고 하는 하나의 본능적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어요. 그것이 맹목적이고 방향성이 없다 보니 삶이 고통이 되는 거지요」

릴케는 쇼펜하우어에게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가 비록 인간의 삶 자체를 비극적으로 보았다 해도 우리 인간은 거기에 함몰되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예술이 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기독교 세계 속에서 오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요. ..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한 후 그 이후로 지고한 존재로서 예술가가 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았어요. ..니체의 초인은 독일어로 ‘위버멘쉬’ ‘스스로를 넘어서는 사람’의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일체의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미덕을 믿고 또 이를 뛰어넘으려 하는 거죠. ..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절대 고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자아를 찾는 하나의 과정이지요.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나 『말테의 수기』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승이 아닌 이 땅에 바치는 천사이지요」

「평원은 소리와 감정을 갖고 있어요. 드넓은 평원이라고 해서 눈으로 보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평원은 한마디로 감정이죠. 평원은 커다란 도화지 같은 겁니다. 그림에서 뭔가 고의적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삶 자체를 먼저 봐야 하니까요. 무엇이 다가올지는 와봐야 아는 겁니다」

「드녜프르 강의 아침」(아르히프 이바노비치 쿠인지, 1881)이라는 그림이 이 페이지에 있습니다. 휘어지는 강과 지평선 너머 아득하고 어스프레한 하늘이 환상적으로 보이고 왼쪽으로 야생화가 듬성듬성 피어 있습니다.

이 그림(사물)을 본 본질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이미지 등가물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술 작업을 위해 고독을 늘 강조하셨는데요. 창조를 위한 고독이란 무엇인지 말씀해 달라는 김재혁 교수의 질문에 릴케가 대답합니다.

「고독은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캄캄한 어둠 같은 것이지요. 그런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현상할 수 있어요. 암실처럼」

이 말은 중요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반은 이해되고 반은 잘 모르겠습니다. 고독하라는 말은 친구도 술도 모든 것을 끊고 혼자 있는 시간 속에 잠겨 있으라는 말인지. 고독이 주는 것은 절대적인 자유인지.


「파울라가 어머니한테 쓴 편지를 보니, 자기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끝없이 물결치는 파도처럼 살겠으며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더군요」

김재혁 교수의 말입니다. 저도 물결을 치고 있다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요. 언제까지.


김교수는 릴케가 시문학사에 독보적인 궤적을 남기게 된 것이 바로 그 사물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저도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릴케라면 아는 것은 「가을날」이라는 시 정도입니다. 릴케의 사물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표범」 「청수국」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라고 합니다. 사물시의 정의를 말한다면 구체적으로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묘사하는 시입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묻습니다. 사물시에서 사물만을 묘사하려고 했나요? 아니면 선생님 자신의 내적 상황을 어느 정도 투영하여 그려 넣으려고 하셨나요? 릴케가 대답합니다. 나는 사물의 본질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나중에 보면 알지만 이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사물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동원한 시적 능력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사물시를 어떤 방식으로 썼느냐는 거지요. 그건 나의 연상의 힘입니다. 끝없이 사유하기인데 사물이 말하게 두는 것입니다. 릴케의 이 대답은 제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물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은 사실 뇌가 없는 사물이 말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결국은 시인 자신이 말하는 것인데 다만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은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말해보자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릴케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사물을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물의 정신을 발견하자는 것이지요.


릴케가 김교수에게 부연 설명합니다. 사물의 정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물의 아름다움이나 유용성 뒤에 숨어 있는 그 사물만의 가치 즉 성스러움을 빛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릴케는 자기가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브들레르의 「썩은 시체」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말하자면 썩어문드러진 몸뚱아리에 대한 보들레르의 세세하고 정확한 묘사와 관찰 대상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보고 릴케 자신도 무릎을 치고 좋아 나도 모방해보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교수가 사물시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청수국」을 낭송합니다.


청수국


마치 팔레트에 마지막 남은 초록빛처럼

이파리들은, 마르고 투박하고 거칠다,

파란빛을 스스로 띠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반사시키는 산형(繖形) 꽃차례들 뒤편에서,

그것들은 울어지친 듯 파란빛을 대충 반사한다,

파란빛을 일부러 다시 잃어버리려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래된 파란 편지지들처럼 그것들 속에는

노랑, 보라색 그리고 잿빛이 깃들여 있다;

어린이의 앞치마에 어리는 것 같은 퇴색한 빛깔,

더 이상 해질 게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우리는 한 작은 생의 짧음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지만 산형 꽃차례 중 하나에서 갑자기

파란빛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초록 앞에서

감동적인 파란빛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릴케가 눈을 감고 듣고 나서 한마디 합니다. 청수국을 이렇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엄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사물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사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것은 진작 생각해봤지만 사물과 대화를 한다는 착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김교수가 벼르고 별렀던 것을 얘기합니다. 릴케 선생님 ‘파란빛을 스스로 띠지 않고 그저 멀리서/반사시키는 산형(繖形) 꽃차례들’이라는 표현은 상상으로 얻기 힘든 표현입니다. 파란빛을 스스로 띠는 게 아니라 거울처럼 반사한 것이라고 하니 무상함, 덧없음을 더 확실히 느끼게 합니다. 김교수는 릴케에게 이 부분이 당신의 「청수국」 중에서 사물시의 진수를 보여준 부분이라고 확인하는 셈입니다. 청수국과 릴케 선생님이 나눈 대화가 이 작품이기도 합니다. 릴케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렇고 말고요. 저는 청수국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요.

김교수는 릴케에게 다가가 사물시의 실제적인 면을 묻습니다. 청수국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색채였습니다. 청수국의 색채 중에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는데요 하나는 청수국의 꽃잎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이파리들이었습니다. 릴케의 대답입니다.


김교수가 청수국을 보고 어떤 점이 시상으로 떠올라서 시를 지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고 릴케는 청수국의 두 가지 색깔, 즉 파란색과 초록색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건 사물시를 쓸 때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시적 변용을 하겠느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교수는 내친 김에 사물시의 약점에 대해 육박해 들어갑니다. 사물시를 쓸 때 개인 감정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노래한다는 것은 사물시의 원리인데 선생님의 이 시의 ‘오래된 파란 편지지’나 ‘어린 아이의 해어진 앞치마’ 같은 표현은 선생님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다그칩니다. 릴케는 움찔했습니다. 사실 새로운 시각에서 써보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의 감정이 조금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이 말은 저에게는 백퍼센트 완벽한 사물시는 없다는 릴케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김교수는 릴케를 더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강연에서 “사물에서 자신의 영혼을 읽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사물이 갖는 상징성이나 등가성을 말하는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까.


김교수의 이 말은 사물시도 결국은 객관적 묘사를 하지만 그것이 시인의 정서를 상징, 은유로 치환된다는 말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릴케는 이제는 포기한 듯이 담담히 말합니다. 예, 나는 청수국에서 인간적 시듦과 번뇌를 보았습니다. 청수국은 내게 나이듦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릴케는 결국 청수국이라는 사물을 통해서―비록 객관적으로 했다고 할지라도―거기서 인생의 시듦, 나이듦의 정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청수국을 보면서 1월 말쯤 사천 논두렁을 점심 시간에 거닐면 어김없이 큰개불알풀의 푸른색과 초록색 이파리를 봅니다. 여기서 제가 느낄 수 있는 정서가 무엇일까요. 엄동설한에 창백한 꽃을 피우려는 안쓰러움이라고 한다면 제가 큰개불알풀을 청수국처럼 집중 관찰하고 대화하여 큰개불알풀의 푸른색과 초록색을 모티브로 잡고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어 큰개불알풀이라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씀으로 인생의 애처움이라는 정서를 느끼게 하는 하나의 시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김교수가 목표를 다이룬 듯이 릴케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를 합니다. 선생님이 청수국과 대화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청수국의 아픈 사연과 이를 위로 하는 선생님의 음성 말입니다. 게다가 이 시는 열넉줄의 소네트 형식이네요. 역시 선생님의 노련한 반전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교수님을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그것마저 캣취해내다니. 릴케가 말합니다. 수국의 파란 모습의 색깔이 바래져 가는 데서 인생을 느꼈습니다. 말하자면 제 시의 모티브에 해당합니다. 인생의 비애, 비참함으로 끝내기에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반전을 시도했습니다. 앞행에서 계속 인생의 어둡고 쓸쓸한 정서만 풍기다가 마지막에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산형 꽃차례 중 하나에서 갑자기/파란빛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초록 앞에서감동적인 파란빛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마지막 행은 수국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죽는 것 같아 보여도 더 살아 남을 거예요.”


김 교수가 긴 대화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괴테가 서정시의 근본은 내적 감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물시에도 객관적 사물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릴케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럼요. 시의 해석은 시를 읽은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성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의 내면에 있는 것이니까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가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과 닮아 있지요 쇼펜하우어는 기독교와 바라문교와 불교가 근본에 있어 동일하다고 봅니다. 인간존재 자체가 죄과라는 것이죠. 그 욕망을 예술을 통해 없애자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불교의 욕망, 기독교의 원죄와 연결되어 있다니 듣느니 처음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이 곧 릴케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가 특별한 애정을 가진 단어가 있느냐고 묻자 릴케라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니 송재학 시인은 우레, 고요를 유난히 좋아하고 허만하 시인은 물빛, 갈멧빛, 수직, 풍경, 고갯마루 등의 말을 빈번히 사용하는 걸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딱히 좋아하는 단어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네 물론 있습니다. 나는 독일어로 ‘위버슈테엔’이라는 낱말을 좋아합니다」 김재혁 교수가 첨언합니다. ‘극복 혹은 견디어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칼크로이트를 위한 진혼곡」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상기시킵니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만이 전부인데!” 인생은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극복의 과정이 그 진짜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김재혁 교수가 릴케의 부처에 관한 시 세 편을 고리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내면의 자유를 구가하는 그 별빛 같은 자세가 나는 좋습니다. (자유는) 몰아지경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 상태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 아닐까요? 어떤 이념의 무게도 실지 않은 상태죠. .. 나는 사실 어떤 교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틀에 묶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 자체이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 그래요 나는 어떤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물질과 정신을 나누는 이분법적 태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대로를 감각을 통해 매 순간 왜곡되지 않게, 새롭게 느끼는 게 중요해요」


인간은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여 일단의 인간들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방법은 다르지만 산승이 되고 수도사가 되고 혹은 목사가 됩니다. 릴케의 일원론이 나는 마음에 듭니다. 물질과 정신을 이분화는 하는 이원론이 과연 맞을까. 심장이 멎고 허파가 숨쉬기를 그치면 뇌라는 물질에서 작동하던 정신현상도 물질과 같이 소멸한다는 게 옳은 생각이 아닐까요. 정신이 남는다고 자꾸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영생에 대한 또 다른 이기심의 발로가 아닐까요.


「저는 선생님의 시에서 감각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많이 감지합니다」

김재혁 교수의 이 말은 허만하 시인이 그의 산문집에서 누차 말하던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시가 너무 감정에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 정신의 쪽으로 나올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감각과 정신이 하나 됨을 구체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를 쓸 때 시인은 그리도 행복하게도 과일의 핵과 같은 삶을 살지요. 과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제 주변에 정리해 놓고서 스스로의 힘으로 작업의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런 존재가 내게는 행복해 보입니다. .. 우주 전체는 과일이고, 부처는 그 과일의 씨앗 같은 존재이죠.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무리 작은 사물들이라도 그 안에 얼마나 찬란함이 들어 있는지, 어느 꽃 한송이, 돌멩이 하나, 나무껍질 또는 자작나무 잎사귀에서조차 얼마나 아름다움이 현시되는지 몰라요. 어른들은 돈벌이와 걱정 때문에 이런 보물들을 보는 눈을 잃고만 거죠. 작은 사물이건 큰 사물이건 어떤 차이도 없습니다. 모두가 소중하죠」


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말이고 이 세상의 존재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다잡는 기회를 주는 글입니다.


릴케는 보는 법을 로댕을 만나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세잔의 그림을 봄으로써 완성이 되었습니다. 세잔이 현실을 예술의 사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릴케는 그 시사점을 보았던 것입니다. 세잔이 어떻게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아는데 그 비밀의 열쇠가 있을지 모릅니다. 릴케가 말하는 세잔의 화가로서의 철저함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나는 가장 본질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잔은 그것을 해낸 거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거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아틀리에로 가서 열 시까지 일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다시 아틀리에로 갔어요. 아틀리에로 가는 길에 멀리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였어요. 그것을 보며 그는 어떻게 저산의 본질에 도달할까 생각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달리 묘사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말이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이라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여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작시(作詩)에 대입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사물을 보았다면 그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아야 합니다. 김재혁 교수가 릴케에게 그 방법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대답합니다.


「세잔은 깊이 들여다 보겠다고 했어요. ..빅투아르 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태양을 갈구하는 모습, 저녁 때의 멜랑콜리에 젖은 모습을 말이지요. .. 그래요. 집중하는 거죠. 사물에서 신성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는 거지요. .. 40년의 끝없는 집중이 없이는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해요」


김재혁 교수가 세잔이 그림에서 무엇을 추구했는가 하고 묻습니다.

「색채이지요. 사물의 본질을 색채에 다 담은 겁니다. 색채끼리의 싸움을 부추기고 색채끼리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 색채 속에 자연스레 빅투아르 산의 내면이, 그 신성이 담기는 거죠」

김재혁 교수가 결론을 짓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질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사물의 본질을 잡기 위해 색채를 이용하여 생트 빅투아르 산의 내면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잔을 시인에게 적용한다면 색채놀이가 바로 시에서는 언어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언어놀이를 통해서 어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시인입니다.


「1922년 2월에 『두이노의 비가』를 완성하기까지 나의 여정은 그것을 위한 방랑이었습니다. 풍경은 그 자체가 언어입니다」

『두이노의 비가』는 김우창 교수가 어렵다고 하니 미리부터 겁먹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릴케가 ‘풍경’이라는 말을 하자 갑자기 허만하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릴케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던 허만하 시인이 풍경에 매료된 것도 어쩌면 릴케의 이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이노의 비가』에는 천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천사가 기독교의 하늘 천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될 듯도 하는데 릴케는 이슬람의 천사 모습에 가깝다고 하니 의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의 속죄와 구원을 말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에 빠져 있기도 해요」


여기가 릴케의 반기독교적이라는 부분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원죄의 교리는 인간을 잘 살펴보면 그게 타당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성인으로 숭상하는 인물도 그가 숭상 받는 면에서는 성스러울지 모르나 숨은 어떤 또 다른 면에서는 보통 사람 같이 악한 면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릴케의 천사는 기존의 종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릴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상상하고 있는 초월적이 존재는 아닐까요.


「기독교는 도그마에 갇혀 있고 자기 중심적이지요. .. 코르도바에 들르고서부터 오히려 나는 오히려 격정적인 반기독교적 상태에 접어들었어요. .. 신은 하나입니다... 너무 강조되어 있어요」

릴케는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릴케는 이슬람이 사막에 살면서 우주를 호흡하고 정말 이 지구라는 별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며 과거라는 개념에 의해 현재와 구분되지 않는다고 칭송합니다.


릴케의 기독교의 비판이 일응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보나 그가 과연 이슬람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말한 것인지 반기독교적인 반발로 감상적인 말을 한 것인지는 구분이 안 갑니다. 나는 이슬람의 경전도 읽어본 적도 없고 사람들을 직접 경험한 바도 없으니 나의 편견일지 모르나 적어도 두세 가지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사막에 사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직도 여자를 인간으로 대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교리를 위해서는 타국인은 물론이고 자국인도 무수히 테러하고 학살하고 난민을 만드는 것이 온당한 종교인지 둔한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셋째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면서 굳이 기독교적인 개념인 천사, 성모마리아 등을 원용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넷째, 이게 더 치명적인데 기독교, 이슬람교가 (그들의 조상은 사촌지간입니다) 성경의 구약이 같다면 호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기독교의 교리를 갖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다그친다는 것은 모순인 것 같습니다. 마치 같은 부처를 모시는 조계종과 조동종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한쪽을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를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한 두이노 성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주와 통하는 사막에 가서 써야 하지 않았을까요.


「기도는 영혼의 몸짓입니다」

릴케의 『기도 시집』의 시구, ‘우물가에 모여, 그들의 손을/평평한 사발인 양,/물결이 영혼처럼 담겨온 그릇인 양 내밉니다’를 떠올리면서 김재혁 교수가 하는 말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몸짓이라는 말에 전율이 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전존재를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복도 포함될 수 있지만 영혼의 몸짓이라면 이것을 넘어서는 우주에선 자신의 생명을 성찰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이노의 비가』는 내게 위대하고 힘찬 기도입니다」라는 릴케의 고백에 접할 때 아직 읽지 않아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은 릴케의 ‘영혼의 몸짓’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연 풍경은 내면의 소리를 위한 등가물이니까요」

다시 허만하 시인이 떠오릅니다. 그가 그토록 고갯마루를 산으로 계곡으로 절로 찾아다닌 이유를 알겠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내면의 등가물인 자연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가 갖는 위안적 요소와 그것을 추구하는 시인의 종교적 태도는 이미 연관성이 많이 입증됐지요. 프리드리히 횔덜린도 그렇고요」

위안적 요소는 대개의 시인의 경우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적 태도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한용운과 김현승 정도입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죠. 그곳은 젊은 시절 내게 무언가를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창 시인의 길을 가려고 하던 시기이니까요」

나는 평생 시를 끼고 살아왔습니다. 다만 그것을 내 전공이 아니라 그저 취미 정도로, 골프로 말하면 ‘보기’ 플레이나 하며 즐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릴케의 말마따나 ‘삶의 형식’을 바꾸어야겠습니다.

릴케는 고독의 길을 위해 피렌체로 갔다고 했습니다. 내가 작업을 한다면 릴케 식으로 말하자면 고독의 바닥에 두발로 서야 합니다. 그러나 왜 그짓을 해야 하나요. 나를 내세우기 위해? 나의 성취감을 위해? 정신적 쾌락을 위해? 자유롭기 위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릴케는 자기실현을 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자기실현은 무어고, 막상 실현되면 어떤 감정, 생각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예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소리치나요.


릴케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두 도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궁전들이 밝고 명랑하고 말수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렌체는 친근함이 없고 마음을 열지 않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댑니다.

「결국 분명해졌네요. 왜 피렌체 건물들이 잔뜩 찌푸린 듯하게 보였는지요. 창문이야말로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고 외부와 교통하는 통로인데 그것이 거의 없이 안으로 문을 닫아버린 거죠」이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 뒤의 릴케의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더 멋진 것을 위한 씨앗이었던 거죠. 그 무뚝뚝함에서 더 밝은 날을 위한 예술이 피어 있으니까요」

인간에게도 ‘마음의 창’이 있다고 한다. ‘마음의 창’을 열고 타인에게 밝은 표정과 상냥함을 주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창’을 닫고 무뚝뚝하고 비사교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피렌체 타입의 인간인데 그에게서 ‘더 밝은 날을 위한 예술이 탄생한다는 말인가.


「휴가차 가족과 온 러시아 출신의 한 여인과 달빛 아래 비아레조 해변을 걸으며 그런 자폐증 예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고백했어요. .. 예술은 인간들에게 울며 다가가야 하니까요 혼자만의 울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릴케 자신이 자신의 시작의 초창기 작품들을 부정하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걸 말하는 걸까.

릴케의 여행과 방랑은 단순한 고향찾기가 아니라 한줄의 시를 찾아가는 낭만적 감정의 일면이 보인다고 김재혁 교수가 말하자 릴케가 대답합니다.


「그래요. 시인으로서 방랑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한곳에 줄곧 머물지 않고 외국어 말소리가 들리는 미지의 장소로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인상을 줍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도 사물을 깊이 오래 보고 그것을 내 자신의 내면의 풍경과 견주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 허만하 시인이 떠오릅니다 그가 그토록 풍경을 찾아다니며 풍경을 깊이 오래 보고 자신의 내면의 풍경과의 등가물을 찾으러 다녔던 것입니다.


릴케는 프라하 태생이나 당시 체코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망하자 국적이 없어져서 여기저기로 방랑한 것 같습니다. 릴케는 여행 아니 방랑을 많이 했으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데가 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러시아와 파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러시아는 어떤 의미에서 나의 체험과 느낌의 토대가 되어 주었고, 파리는 나의 형상화의 의지를 위한 주춧돌이 되어 주었지요. 러시아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내 본능의 고향이자 모든 내 내면의 원천이라 할 수 있어요」


김우창 교수의 강연에서 영국은 합리성(reason), 프랑스는 정신(esprit), 그리고 독일과 러시아는 영혼(seele)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릴케는 러시아와 정신적으로 잘 통한 면이 있었나 봅니다. 김재혁 교수는 안에 감추어둔 고백을 외적인 뭔가를 앞세워 표현하는 것, 그것이 시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체험과 느낌을 외부의 풍경의 등가물을 찾아서 연결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세잔은 그것을 언어 대신 색으로 그 작업을 했습니다. 릴케는 유명 여행지를 누구나 똑같은 느낌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눈’으로 보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랭보의 사물의 본질을 보려고 하는 견자의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릴케는 아버지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서양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자식이 시인 나부랭이가 되어 먹고 사는 데 힘드는 꼴을 부모로서 보기 싫다는 말과 같습니다.

「시인은 어떤 지위도 아니고 어떤 계급도 없고 게다가 연금도 못받으니까요. 한마디로 실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요」

정말 직업을 시인으로 택한 사람의 정신은 어떤 상태일까요. 릴케가 아홉 살에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는 좋게 말하면 자유를 추구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허영심이 과했다고 합니다. 열망과 야망이 많았고 귀족 같은 고상한 삶을 원했으나 아버지는 군대의 규율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그 한가운데 있는 릴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릴케는 젊어서부터 시인으로 성공하게 해달라고 카를교에 서 있던 얀 네포무츠키 성상의 청동 받침대의 하단부에 있는 부조 여인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믿고 만졌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김재혁 교수가 릴케 시의 특징을 말하는 이 대목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끝에 앉은 나비처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선생님의 시적 표현의 특징인 듯합니다. 감정의 골짜기를 온통 섭렵하여 거기에 낱말을 씌워 표현한 거죠」

사실 나는 몇 개의 릴케의 시를 읽으면 번역된 것이라 그런지 한국시처럼 시적 긴장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언어적 감각이 느슨하기 때문에 섬세함을 지나치기 쉽다고는 것을 느낍니다.


릴케는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릴케보다 14살 위이고 결혼한 상태라고 합니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니체의 친구인 레와 셋이서 동거도 했다고 합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머릿속으로 뭔가 잘 정리가 안 되고 어지럽습니다. 그것이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릴케가 그 수도 없는 여행을 어떻게 다녔는지 궁금해집니다. 왜냐하면 집 떠나면 이동하고 먹고 자려고 하면 당장 필요한 게 돈인데 그는 말이 시인이지 돈벌이 하고는 먼 백수인데 그 여행 경비를 어디서 충당했단 말이지요?


「나는 시를 쓰려고 할 때 잘 안 되면 환경을 바꿉니다.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다른 하늘 아래에 가서 다른 공기를 쐬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거죠」

이해는 되지만 어떻게 보면 참으로 팔자 좋은 사람 같네요.


릴케가 사물에 접근하려면 어떤 기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느냐고 김재혁 교수가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고요와 고적함이죠. 그 이후에야 사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죠」

릴케가 입식 책상을 사용한 사진이 나와 있습니다. 릴케는 양쪽 창문을 다 즐길 수 있는 잇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언가 풍경을 언제라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두이노 성의 자신의 방에서도 탁 트인 바다고 보인다고 했습니다.


「시인으로서 관습성이나 진부함을 벗어나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죠」

남이 생각하거나 느낀 것, 이른바 상투성을 벗어나는 것이 시작(詩作)의 근본입니다.

여행을 가게 되면 미리 갈 곳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수집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게을러서 그런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여기서 릴케가 하는 말을 보니 원군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아닙니다. 그냥 운명에 맡기는 거죠.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뭔가를 만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어떤 여행 안내 책자로 인도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김재혁 교수가 릴케에게 베네치아의 특징을 핵심적인 한마디로 말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의지이지요. 의지가 몸에 피를 돌게 하는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어떤 생명체보다도 강성하게 피가 돌아요. 온 곳이 의지로 가득 차 있어요. 의지의 결과물들이죠」


이 글을 보니가 검도에서의 ‘기(氣)’가 생각납니다. 검도에서는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식 수준의 의지가 충만할 때 비로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로서의 모습인 ‘기’로 육체에 나타나고 종국에는 육체가 행동하는 기술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기력」이라고도 말합니다.

릴케의 의지는 검도의 의지와 닮아 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욕망과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고 했으나 결국 의지는 하고 싶다는 욕구에 의해 의식 수준에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김재혁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그림에서 출발하죠. 그림을 해석하고 자기 생각을 집어넣고 응축하는 기법을 쓰시는 같은 데요. 일종의 에크프라시스(ekphrasis) 아닌가요」 릴케의 대답입니다.

「결국 예술가는 대상을 그리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거죠」

나는 오래 전에, 아마 10년 전일까, 이수동의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글로서 묘사하여 쓴 적이 있습니다. 이게 일종의 에크프라시스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도 언젠가는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글로 표현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즈음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사중주를 들으면서 즉흥적인 상상으로 한번 써보자고 막연히 희망은 하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릴케에게 몰입하여 연구하여 온 김재혁 교수가 릴케 시의 비밀은 이미지를 직조해 나가는 정밀함이라고 말합니다. 릴케는 현실 세계에서 이미지를 얻어와 그것을 언어로 조각하면서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감각을 통해 획득한 현상이 마음 속에 재생된 것, 즉 이미지를 릴케의 정서나 형이상학의 등가물을 찾아 연결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는 현재 릴케의 시를 구석구석 읽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있는 그의 시를 감상할 때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동의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의 시에서 조형미를 많이 느낀다고 누차 얘기했습니다. 조형미란 공간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릴케가 로댕의 비서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텐데 솔직히 말해 그 조형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성전에 간 마리아」를 예로 듭니다. “아직 어린 그였지만, 내미는 모든 손을 뿌리치고,/그녀의 운명 속으로 들어갔다, 홀보다 높게 이미/마무리된, 집보다 더 무거운 운명 속으로” 여기서 어디가 조각 같은 3차원의 느낌을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924년에 쓴 미발표 시라고 합니다. “나를 나의 추락의 어둠에서/나를 달콤하게 알아보는 당신의 얼굴을 향해 들어올려 주오.” 김재혁 교수는 ‘마음의 공간’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글쎄 나는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는 자연의 풍경도 그림으로 응축하여 마음에 저장하는 것 같고 그 표현법을 모방과 추상 사이를 오간다고 말합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의 머리 속에는 자연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보다는 내가 세잔이나 고흐가 되어 자연을 재생산하여 마음에 저장하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이미지를 언어로 나타내면 바로 그것이 이미지화된 정서 혹은 형이상학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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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와 내면이 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는 ‘세계내면공간’도 같은 공간입니다. 외부는 우리의 내면이 아니면 어디에 존재할까요?」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존재의 본체는 마음이 지어내는 것 곧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그 유명한 ‘세계내면공간’도 맥락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나의 내면에서 동일하게 들렸거든요. 외부와 내부는 내게는 중단되지 않은 공간일 뿐입니다. 막힘이 없이 열려 있는 거죠」

릴케에게 특별한 감정을 준 인생의 세 집을 든다면 두이노의 성, 뮈조 성,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무엇보다 바르켄호프라고 말합니다. 보릅스베데는 예술가촌인데 릴케를 조형의 시인으로 만들어 준 곳이기도 합니다. 바르켄호프는 친구인 하인리히 포겔러의 집인데 그와의 우정은 릴케의 첫 시집 『나의 축제를 위하여』를 섬세한 그림으로 표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보릅스베데는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고 결혼 곳이기도 합니다. 1902년, 27살 때 릴케는 이미 아버지가 되어 보릅스베데를 떠납니다.


릴케가 왜 그렇게 귀족 부인의 후원이 많았냐를 시사하는 릴케의 말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시나 산문을 낭송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촛불과 장미와 은제그릇이 마련되어 있는 곳에서 말이죠. 그때 여성들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면 더 좋고요. 보릅스베데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를 읽어 주었는데 반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때부터 낭송이 나의 삶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것이 내게 많은 후원자들을 만들어주었지요. .. 나는 하인리히 포겔로를 비롯한 보릅스베데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야할 길을 확실히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려고 했던 보릅스베데에서 릴케는 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클라라가 싱싱한 포도를 보내왔지요. 베스터베에서 딴 포도송이였지요 그것을 받고 「베스터베데의 포도를 받고」라는 시를 썼습니다라는 릴케의 말을 듣고 김재혁 교수가 말합니다.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는 순간 선생님은 내면의 보물을 인식하여 그것을 시로 만들어 내는군요. 그러니까 늘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외부세계는 곧 내면세계를 향해 불어닥치는 세찬 바람입니다」

릴케가 왜 그렇게 여행과 방랑을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 후작 부인의 초정으로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 있는 두이노 성을 찾은 것은 1910년 4월 20일(릴케가 35세)였습니다. 그때는 딱 일주일 머물렀습니다. 그 당시는 릴케는 이미 『기도시집』 『형상시집』 『신시집』으로 시인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방문은 1911년 10월 22일부터 1912년 5월 9일까지 6개월 남짓 두이노 성에 머물렀습니다.

릴케가 왼쪽에 바다를 면한 방이 자기 방이라고 말하자 김재혁 교수는 릴케는 탁트인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릴케가 맞장구를 칩니다.

「네, 그래요. 뮈조 성에서 마찬가지로 그런 우주 공간과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좋았어요. 무한히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이 성의 테라스에 서서 텅빈 공간을 바라보노라면 이 성 자체가 많은 창문을 가진 인간들의 현존재처럼 느껴져요. 그중에 나의 창문도 하나 있는 거죠」


프란체스코 교단 소속의 추기경이었다는 보나벤투라(1221~1274)는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라고 합니다.

「보나벤투라는 인간에게 세 개의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육체의 눈이고) 두 번째는 이성의 눈이고 세 번째는 명상의 눈이죠. 이성의 눈으로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명상의 눈으로는 사물을 정신적으로 체험하는 것이지요. .. 명상의 눈이 작용할 때는 득도의 빛이 켜지는 것입니다」


두이노 성을 거처로 삼은 것이 창작과 관련이 있느냐니까 릴케가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고독이거든요. .. 창작을 향한 고민과 열정이 일분 일초라도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언제나 그쪽을 향하고 있어야지요」

고독의 결과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으나 나의 어설픈 시작에서 릴케의 고독의 근처에라도 가본 적이 있을까요. 단연코 없습니다.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김재학 교수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가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을 정리해 줍니다.

1922년 2월에 『두이노의 비가』가 완성되어 시 전체를 두이노 성의 후작 부인에게 바쳤습니다. 세 번째의 비가의 일부까지 두이노 성에서 썼습니다. 세 번째 비가는 1913년 늦은 가을에 파리에서 완성했습니다. 네 번째 비가는 1915년 말에 뮌헨에서 썼습니다. 나머지 여섯 편의 비가를 1922년 2월 스위스 시에르의 뮈조 성에서 완성했습니다.


「예술이나 종교나 자기 헌신의 극한을 가야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 도달하면 이미 목표를 달성하여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목표를 이루고 나면 더 이상 할이 없어지니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내 머리 속에는 흰 모자를 쓴 일본의 ‘스시’ 식당의 늙은 요리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왜일까요. 일본 티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이 어떤 천한 직업을 가지더라도 ‘자기 헌신의 극한’을 가기에 나이가 늙으면 그들 나름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품위와 여유를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일생을 그렇게 ‘자기 헌신의 극한을 가졌던가 반성해 봅니다.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내게는 없습니다. 당연히 나는 그런 위엄과 품위와 여유를 내 인격에서 보이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본 나라와 풍경들 외에 나의 문학적 소양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책입니다」

릴케는 성경 중에서 시편을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릴케는 기독교 교리에는 대단히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반면에 이렇게 성경을 가장 아끼는 책으로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그의 말 사이에 나는 앰비밸런스(ambivalence)를 느낍니다.


「그 책들(성경을 포함한 종교서적들)을 즐겨 읽다 보면 나만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마다 나의 생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시로 옮기거나 산문으로 되살렸지요」

릴게가 왜 그렇게 성경을 인용한 시가 많은지 이해가 됩니다. 내가 시편을 거의 10개월 걸쳐 정리한 것을 다시 읽고 거기서 시적 모티브를 찾을 수 있을지 검토해 보아야겠습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하나의 크고 강력한 기도’라고 김재학 교수는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두이노의 비가』에 대한 내용의 핵심의 요점 정리를 기대했으나 별로 건진 것이 없어 아쉽습니다.


김재혁 교수는 릴케와 바람을 연결시키면서 릴케와의 이 긴 유럽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릴케에게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그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면 그의 마음속으로 강하게 바람이 몰아쳤다. 그가 가는 곳에는 그곳이 두이노 성이든 카프리 섬이든 늘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는 바람을 사랑했다」


릴케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고독이었을까, 인간으로서의 자연을 향한 사랑이었을까, 인간 존재에 대한 미련이었을까, 존재의 불안이었을까, 시로 존재를 드러내려는 열망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구름처럼 올랐다가 사라집니다.


스위스 시에르에서 기차를 타고 20분 남짓 가면 라론 시골역에 도착합니다. 거기 부르크키르헤 교회에 릴케의 무덤이 있습니다. 나무 십자가 뒤에 릴케의 그 유명한 묘비명이 있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눈꺼풀들”은 독일어로 “Lidern"입니다. 이 낱말의 발음은 ‘노래들’에 해당하는 ”Liedern'과 같다고 합니다. 릴케는 장미꽃잎 속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자신이 쓴 노래 뒤로 익명으로 숨고 싶다고 합니다.

「시인은 창작을 실현하는 시점에 가장 참되다. 릴케는 그렇게 말한다. 자기실현은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매 순간 시를 써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 찾아온다. 릴케는 매순간 그것을 기다렸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 릴케는 어느 도그마에도 얽매이지 않고 끝없는 기다림과 방랑의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어두운 대지 속으로 살아졌다」


평생 릴케와 대화해온 김재혁 교수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스스로 시인이라고 부를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나는 이제껏 어설픈 시를 쓰면서도 남이 나를 ‘김시인’이라고 부르면 무슨 나 같은 주제에 시인이라고 하는 자격지심에 스스로를 비하했습니다.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시를 쓰는 매 순간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자각과 성실함으로 족한 것입니다.


릴케는 정말 오로지 시만을 위해 살다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시를 쓸 때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시인이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말만이 아니라 육신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생활인으로서는 무능력한 자였습니다. 로댕의 비서 외에는 평생에 직업을 가진 것이 없는 같습니다. 시를 잘 낭송해서, 혹은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평가 받아 귀부인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여행과 방랑을 일삼았으나 그것은 주지육림의 방탕한 생활이 아니라 주옥 같은 그것도 세계 시사에 빛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결혼 생활도 평범한 기준으로 본다면 정상은 아닌 그가 이렇게 위대한 시인으로 남은 것은 그가 오직 시에만, 그것도 이미지와 사물과 존재의 형이상학으로 이어지는 시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終)

(2020년 4월 12일 學而齋 寓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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