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평전(評傳)이란 말도 막연히 짐작만 했지 정확히 잘 몰라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평을 곁들인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적은 기록’이라고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카프카 일생의 행적을 자세하게 쓰면서 중간중간에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해설 혹은 평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카프카의 문학적 비범함보다는 한 개인으로서 이렇게 슬프게 생을 마감하는가 싶어 우선 눈물부터 났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일을 경험하기도 처음입니다. 카프카는 마흔한 살에 죽습니다. 끝까지 글쓰기를 하지만 서른세 살 때 폐결핵에 걸리고서는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적 글쓰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결핵이라는 병으로 인해 체력이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20여 년 전에 동유럽을 여행했을 때 체코의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집이라고 해서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만. 카프카의 사진을 보면 유난히 눈빛이 선명하고 날카롭습니다. 웬지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그는 혼자서 고독 속에서 지내며 친구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모와는 달리 마음씨가 여리고 남에게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고 친절했습니다. 자연히 그의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키얼링 요양원에서 죽을 때도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고 죽고 나서도 친구들이 추도식을 거행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과연 카프카의 글쓰기의 목적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글쓰기의 자리를 만들었는지, 또 그의 글쓰기의 기법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카프카는 법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으나 그를 거쳐간 여인이 네 명이 됩니다. 이 연애사가 책의 분량으로 모르긴 해도 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게 굉장히 많습니다. 여인과의 관계에서 카프카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카프카의 인간관계입니다. 죽을 때까지 진정한 우정을 나눈 막스 브로트를 비롯해서 주로 문인들이지만 수많은 친구들, 그가 평생 다녔던 노동자재해보험회사의에서 카프가의 업무능력과 인간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의사라서 그런지 카프카의 결핵에 대한 치료가 합리적이지 못하고,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탁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에 맡기는 모습이 잘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카프카는 성격이 예민해서인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두통이 오고, 잠을 자지 못합니다. 결핵 치료도 자신의 생각대로 자연요법이라고 해서 경치 좋고 쾌적한 요양원을 찾아다닙니다. 육식을 해서 체력을 보강해야 하는데도 끝까지 채식주의를 고수합니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하여 자연의 소리라도 너무 소리가 크고 강하면 참지를 못했습니다. 요양원도 방의 쾌적함도 중요하지만 발코니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도 카프카는 꼭 챙겼습니다.
첫째 카프카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동력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가 그의 아버지인 헤르만 카프가의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정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지키기보다는 가난을 지우기 위해 오직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성격은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카프카에게는 항상 불안이었고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의 글쓰기는 절대적 존재인 아버지에 대한 자기방어였고 자신이 안주할 수 있는 자유공간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만난 네 명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과 결혼하려고 헌 그 실패가 그에게 좌절을 안겨 주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여인인 도라 디아만트는 카프카의 생의 마지막 육개월을 같이 하였으며 도라는 카프카에 평안과 위로를 주었지만 법적으로는 카프카의 청혼이 도라의 아버지로부터 거절 당하여 그에게 실의를 안겨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실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에게 위로와 평안을, 존재의 이유를 주는 것은 글쓰기 뿐이었습니다. 사랑의 실패에서 자기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고 글쓰기만이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글쓰기는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늘 자정(自淨)과 치유의 방편이 되어주었다. 펠리스와 파혼할 때 『소송』이 그랬고, 율리 보리체크와 이별하고 고통 받을 때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가 그랬다. 최근의 글쓰기는 밀레나와의 이별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투쟁’의 불꽃이었다.‘
마지막으로 카프카가 폐결핵으로 투병 생활을 한 4년 가량은 거의 작품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실존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발병 전의 글쓰기는 치유의 의미가 있었다면 발병 후의 자신의 글쓰기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 폐결핵이라는 질병이 그를 자각하게 하여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한 ’자기 관찰‘, 자기 관찰을 통한 ’글쓰기‘만이 유일한 자구책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데카르트와 같은 말을 합니다. “나는 글을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카프카는 ’이제 결혼·자손·가족 등에 대한 기대감이나 헛된 노력,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오직 글 쓰는 일에 전력투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카프카의 글쓰기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프카는 타인과 다르게 지상의 사물을 새롭게 보고 기술함으로써 전에는 한갓 ’물질 더미‘로만 보였던 세계가 마치 마술에 걸린 듯 살아 움직였다. 타인에게 고정된 인과론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자연의 세계가 그의 직관적 상상력 속에서는 환상적 세계로 바뀐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확고부동한 세계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마치 마력에 홀린 듯 새로운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걸 다른 말로 한다면 이렇습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체험을 논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미적 형식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카프카는 작가의 의도적 생각이나 표현보다는 예술작품 자체의 심미적 형식에 우위를 주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카프카의 유명한 소설 『변신』입니다. 어느 날 아침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해충으로 변신합니다. 잠자의 변신은 자신의 방을 벗어나려는 시도였으며 자신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카프카의 폐결핵을 앓는 마지막 4년 동안 쓴 소설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측량기사 K는 성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 성은 카프카의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이 성이라는 상징은 다의성을 가집니다. 이처럼 카프카는 체험을 논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이미지로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둘째 카프카와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카프카가 결혼을 목적으로 만난 여인은 네 사람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혼사가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지지리도 여자복이 없구나 하는 한탄이 나옵니다. 1912년 그러니까 카프카 29살 때 주식회사의 속기 타자수로 일하고 있는 펠릭스 바우어와 만납니다. 그녀는 카프카와 성격이 반대입니다. 건강하고 활달하고 능력이 있어 카프카는 자신의 힘든 문학적 삶이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청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 청혼은 펠릭스와 카프카가 혼담이 오가는 중 갈등이 있어 그것을 중재하던 그레테 블로흐와 연애편지 비슷한 것이 오간 것이 들통이 나서 파혼이 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다시 둘은 재회하고 두 번째 약혼을 하고 정말로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1917년 8월 11일 카프카는 심한 각혈을 하고 폐결핵 진단을 받습니다. 그들은 5년간의 고통과 행복을 뒤로 하고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두 번째 여인은 스물여덟 살의 율리 보리체크였습니다. 카프카가 폐결핵 치료하기 위해 셀레젠에 온 지 2주 지나서 또다른 폐결핵 환자가 오는데 그녀가 보리체크였습니다. 그녀의 과거의 불미스러운 이력(창녀를 했다는) 때문에 아버지가 반대했으나 카프카는 강행하여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계약한 집으로 이사하기 이틀 전에 그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예정된 결혼식은 무한정 연기되고 또한 동력을 잃고 결혼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여인은 밀레나 폴락인데 그녀는 카프카의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하겠다고 편지를 하다가 둘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의 성문화가 어쩐지 몰라 잘은 이해가 안 됩니다만 밀레나는 에른스트 폴락라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그 남편은 카프카도 아는 사람인데 카프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도 밀레나가 자신의 남편을 포기하지 않아 둘의 혼담은 성사가 되지 않습니다.
네 번째 여인인 도라 디아만트는 카프카의 마지막 삶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카프카는 이때쯤 폐결핵이 많이 진행되어 사실상 죽음을 앞둔 처지였습니다. 1923년 7월 뮈리츠 휴양소의 부엌에서 일하던 도라 디아만트를 만납니다. 카프카가 프라하 출신 유대인 독신자이며 작가라는 사실을 도라가 알게 되면서 도라는 카프카와 가까워졌습니다. 카프카는 정식으로 결혼을 청원했으나 도라의 아버지가 거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카프카의 마지막 생인 6개월을 같이 합니다. 도라는 온 마음을 다해 카프카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도라는 그에게 어머니요, 연인이요, 간호사였고 수호 천사였습니다.
카프카의 임종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난데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1924년) 6월 3일 오전 4시경 도라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카프카가 숨을 쉬지 못하고헐떡거리만 했다. 놀란 도라는 클롭슈토크의 방으로 달려가 그를 깨웠다. 클롭슈토크는 그가 위독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 임종을 예감한 클롭슈토크는 일부러 도라를 마을로 심부름을 보냈다. 그것은 예전부터 카프카와 클롭슈토크 사이에 약속된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카프카는 도라를 찾았다. 그래서 도라를 데리러 방 청소를 맡은 처녀를 마을로 보냈다. 도라는 단숨에 달려왔고 그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자신이 가져온 꽃들을 그의 얼굴에 가져갔다. ..카프카는 그녀가 내민 꽃송이에 코를 갖다댄 채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그 순간 도라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클롭슈토크는 눈물범벅이 된 채 도라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정오경에 영면했다. .. 막스 브로트가 정오쯤 키얼링 요양원으로 전화했을 때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막스는 전화를 끊은 채 오열했다.’
세 번째가 카프카의 인간관계입니다. 카프카는 25살 때인 1908년 7월 30일에 노동자재호보험공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그는 모든 사람과 선의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직업적인 업무능력도 탁월했습니다. 잘 지내던 직장에서 카프카는 폐결핵에 걸리자 퇴직 의사를 밝힙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배려하여 3개월간의 유급 휴가를 줍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휴가가 카프카 죽기 직전까지 여섯 번이나 시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 같지 않습니다. 카프카를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 같습니다. 1922년 7월 1일 카프카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부터 퇴직 처리됩니다.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는 항상 긴장 상태였습니다. 카프카 일생의 마지막쯤 카프카가 독일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자 아버지도 카프카의 존재를 알아주기는 합니다만 카프카는 펠릭스 바우어와의 두 번에 걸친 결혼 실패를 당하자 자신을 정신적 패배자로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살펴보게 됩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모든 문제점의 저변에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모든 원인을 정확히 밝혀 보고 모든 갈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이것은 통상의 편지처럼 2쪽 3쪽짜리 편지가 아니라 그 분량이 45쪽입니다.
카프카는 부자간에 일어난 여러 가지 갈등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①우선 유전적 특성으로 생활욕, 사업욕, 정복욕이 강한 카프카 가문의 아버지와 감성적이고 소심하며 지적이고 경건한 어머니 뢰비 가문의 특성을 지닌 아들인 자신의 차이점을 들었다. ,, 특히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안하무인격이고 독선적이며 이기적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성격상 결함을 초래했다.
②또한 서유럽 문화에 동화된 유대인인 아버지는 유대교에 대해 무지했고 단지 형식적으로 종교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카프카에게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③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고대했다. ..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새로 장정되어 나온 『유형지에서』에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헌정사를 써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그 책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카드놀이에만 정신이 팔렸다.
④그는 아버지 요구대로 법학을 공부했고 학교를 마치자마자 경제적 독립을 위해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취직했다.
⑤나아가 자신의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해서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도 했다. .. 그러나 카프카의 결혼 실패는 오히려 부자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⑥「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던 아버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교육이 낳은 ‘불안과 심약함과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강박 증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이런 유례없는 편지는 결국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못합니다. 카프카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들이 말립니다. 다시 말해 그런 편지를 받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이해할 분이 아니고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키리라고 그들은 예상했기 때문이겠지요.
프란츠 카프카의 사진을 보면 눈빛이 유난히 반짝여서 영리한 고양이 같은 느낌을 저는 가집니다. 카프카 하면 웬지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서 은둔하면서 글이나 쓰면서 작가 생활을 할 것 같은 선입견이 듭니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재해보험공사를 다닐 때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원만했습니다. 문학계, 출판계 인사들과 교통할 때도 그들은 카프카에게 호감을 갖거나 존경심을 가졌습니다.
카프카가 41년이라는 그의 짧은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가 두 명 있습니다. 막스 브로트와 클롭슈토크가 그 사람들입니다. 카프카가 대학 생활에서 일생 동안 헌신한 참된 친구를 만났습니다. 막스 브로트, 오스카 바움, 펠릭스 벨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막스 브로트는 대학 다닐 때 ’독서와 강연‘이라는 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평생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카프카 어려울 때는 언제나 나타나서 조언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카프카는 말년에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막스 브로트에게 유언장을 두 번 줍니다. 자기가 죽으면 남은 유고를 불태워 없애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브로트는 그 유언을 배반하지요. 제 기억에 울림으로 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1924년 4월 28일, 죽기 두 달쯤 전이겠군요.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에게 읽을 책을 부쳐준 것에 대해 감사의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책과 노트와 노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네. 잘 있게 나의 친애하는, 좋은 막스.” ’좋은 막스‘라는 말 하나에 카프카의 평생의 우정과 애정이 다 담겨져 있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의 인물이 로베르트 클롭슈토크였습니다. 카프카가 동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메란 휴양지에 있을 때 그는 폐결핵 치료하기 위해 그곳에 왔습니다. 그는 부다페스트 출신의 의대생이었습니다. 후에 부파페스트 의대에 복학했다가 프라하 의대로 옮겨 공부를 했습니다. 카프카의 병수발을 위해 공부를 중단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카프카의 임종을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했습니다. 클롭슈토크는 카프카를 평생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는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폐결핵 전문의로 활동하였고 뉴욕 대학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막연히 유명한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인간적 삶과 그의 문학적 삶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인간관계, 여성관계,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삶의 보습을 보면서 비통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글쓰기의 모습이 저에게 어떻게 시사하여 주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정신적인 준비는 되지 않았고 쉽사리 감당할 만한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한 카프카의 문학적 삶에 대한 이야기가 어렵지만 저에게는 어떤 시사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프카는 작가가 문학적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으로서 무엇보다도 생각하고 느끼고 거리감을 두고 조망할 수 있고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내면공간을 착안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곳은 고독의 공간이고 독신자의 공간이며, 관망자의 공간이고 이미지가 형상언어로 전환되는 상상의 공간이다.‘
저만의 고유한 내면공간, 즉 고독의 공간, 독신자의 공간, 관망자의 공간. 그리고 이미지가 형상언어로 전환되는 상상의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글쓰기가 진정한 저의 존재이유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