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존 위너커

by 현목

오래 전에 사다가 쳐박아 놓았던 책을, 요즘 글쓰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탓에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원제는 Advice to Writers 즉 ‘작가들에 대한 조언’입니다. 400명도 넘는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존 위너커라는 분이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글쓰기는 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그래도 누군가 읽으면 ‘잘 썼네’ 하는 정도의 감상을 갖게 하고 싶기도 하지만 언제나 골프의 ‘보기 플레이’ 수준에 속으로 좌절하기도 합니다. 글쓰기도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여 조언을 주는 대로 시도도 해보았지만 언제나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통에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재능도 별로이면 남은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신통치 않으니 결과는 물으나마나입니다. 다시 구명줄을 잡는 심정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수많은 조언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요구조건을 따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상이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 중에 가장 많이 읽었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내털리 골드버그입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녀의 조언이 나왔습니다. Just write. Write and write. ‘그저 써라. 쓰고 또 써라.’ 말하자면 이유도 대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저 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잘 써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저 쓰자고 해도 글쓰기의 제목 앞에 앉으면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고 무언가 불안해집니다. 이렇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둘째는 사실 ’재미’가 없습니다. 글쓰기가 마약처럼 저에게 쾌락을 준다면 혹은 어릴 때 읽은 ‘삼국지’의 독서삼매경 같은 즐거움을 준다면 누가 말려도 심지어는 숨어서까지 글쓰기를 할 것입니다. 물론 쓰고 나서 어떤 때는 보람도 느끼지만 그것으로 저의 글쓰기의 동력을 얻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셋째는 엉덩이를 오래 붙이는 끈기가 없습니다. 이건 ‘재미’하고도 연관이 되는 것이지만 글 쓰다가는 거기에 몰입하기보다는 간식 먹으러 부엌으로 들어간다는지, 거실의 티비의 ‘시카고 피디’나 본다든지, 피곤하다고 침대에 벌렁 눕는다든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타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돌파구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첫째는 글쓰기와 연애를 하라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야 한다. 끔찍하고 머저리 같은 책도, 빛나는 책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이 머릿속에서 아름답게 힘겨루기를 하도록 놔두어야 한다. .. 말하자면, 당신은 앞으로 살아갈 2만 일 동안 매일같이 사랑에 빠져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당신은 이 사랑으로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레이 브래드버리)


어찌 보면 현실적이지 않고 환상적인 느낌도 듭니다만 글쓰기가 애인인 셈입니다. 애인은 언제나 설레는 존재이고,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무언가 흥분이 되고, 그립고, 상대가 잘 되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종착점은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를 사랑하라는 말이 됩니다. 사랑은 결국은 쾌락이 아니라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은 인류에 대한 희생으로 나타났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남은 여생 ’글쓰기‘를 애인 삼아 사랑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저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연애는 지성이나 이성보다는 감정에 더 쏠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쒼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특히 시를 쓸 때는 논리적인 이성보다는 감정에 많이 쏠리게 됩니다. 멀리서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 가슴 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런 감정을 소중히 여기면서 쓰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조언도 있습니다. ’자신을 감정에 빠뜨리는 것을, 자신을 흥분시키는 행동을 찾아내라. 그 후 이런 것들을 글로 써라. 독자들도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써라. 글쓰기는 실내장식이 아닌 건축이다. 그리고 바로크 시대는 지나갔다.‘


에드나 퍼버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라면 감정에 다소 휩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감, 불쾌감, 원한, 책망, 상상, 열정적 항변, 불의에 대한 의식 등의 감정들은 모두 글을 쓰기 위한 훌륭한 연료다.‘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가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 가곡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사도 모르나 무언지 가슴에 뭉클한 것이 있으면 그 감정을 글로 쓰라는 것입니다. 시의 경우는 진술보다는(진술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거 그것은 사실 시적 긴장감을 내기에는 더 어렵습니다) 정통적으로 이미지로 에둘러 말해야 합니다. 그 정통적인 방법이 저는 ’메타포’라고 생각합니다만.

둘째는 글 쓰는 장소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장소 말입니다. 페이 웰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도구와 작업실, 그리고 작업실 비용을 내줄 사람이 필요하다. 여자 화가가 되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후미진 곳과 글을 쓰겠다는 욕망만 있으면 된다.‘


쉽게 얘기하자면 고등학교 입시생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들은 학교나 학원에 몸을 갖다 놓습니다. 그곳에서는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유명 작가들도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카페를 찾아가 글을 쓰는 분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집에서 아침에 글을 서너 시간 쓰고 나서 오후에는 달리기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제가 많이 읽은 내털리 골드버그는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병원에서 당직한 후에 다음날은 반차(半次)를 주기에 오후 시간을 삼천포에 있는 Angel-in-us 커피 샵에 가서 글을 두세 달 쓴 적이 있습니다.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는 글 쓰는 것 외에는 딴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저의 능력으로는 두 시간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더군요.


’매일 아침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 이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로 남는다.‘ 제럴드 브레넌이 말했습니다. 저도 이걸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언제나 아마추어로 남아 있습니다.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비행기 모형을 만드는 식으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자리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글쓰기에 매달려야 한다. 하루에 단 한 시간에 불과하더라도 글을 써라.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서라도 시간을 만들어라.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가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로젤린 브라운) 이제는 글쓰기가 저의 취미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됩니다.


셋째는 자신감을 갖는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 글쓰기가 본업이 아니라 취미로 시작하다 보니 여분의 시간에 글을 몇 줄 씁니다. 그나마 글쓰기도 인터넷 강좌를 듣든지 하면서 독학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춘문예에 당당히 합격한 것도 아니다 보니 언제나 속으로는 보궐 학생과 같은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이언 액커먼의 말을 들으면서 일부러라도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껏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은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내라”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훌륭한 작가와 예술가 중에는 작품 활동을 하는 내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때로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낼 필요가 있다. ..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처럼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만의 고유한 것을 찾아내라.’ 그는 심지어 ‘자신감을 꾸며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스스로 격려하면서 자신감의 동력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조금은 갖는 계기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실례했습니다를 해설해 주신 손희락 평론가의 제 시에 대한 해설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저그런 시인에게 으레 하는 ‘주례사’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분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주변에서 책을 보신 친구, 친지분들의 반응이 반드시 ‘립서비스’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자신감은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오만(傲慢)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바라건대 자신은 음치인데도 혼자서 대단한 성악가인 줄 착각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기대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윌리엄 진서의 말에 의지하면서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자신만의 개성과 생각을 믿어라. 자신감을 갖고 글을 써라. 필요하다면 순수한 의지로 자신감을 북돋워라. 글쓰기는 자아가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자아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라.’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압니다. 수많은 작가에 대한 조언을 말 그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게 와닿는 것을 추려보았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우선은 일주일에 한 번은 당직 후 반차 때 카페―제가 출퇴근길에 눈여겨 보아두었던―에서 두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랜 인생 여정 중에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실패할 값에 어쨌든 도전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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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여러 작가들의 조언 중에 제게 와닿는 코멘트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예술가라는 존재들은 결코 무리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건 개미들이나 그렇다. 싹을 틔우기 시작한 예술가에게는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들과 씨름할 특권이 주어져야 한다. (헨리 밀러)

-구체적인 단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도 추상적인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하라. 독자가 지적 과정을 거치게 하지 마라. 직접적으로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라. “그는 관대한 행동을 베풀었다”보다는 “그는 부랑자에게 1달러를 주었다”라고 써라. (데이비스 램버스)

-자료 없이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조지 V. 히긴스)

-가능한 한 자유롭고 빠르게 쓰면서 종이 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라. 전체 원고가 완성되기 전에는 고치거나 다시 쓰지 마라. 집필 도중에 퇴고하다 보면 대개 글쓰기가 진행되지 않는 데에 대한 변명으로 이어진다.(존 스타인벡)

-글쓰기에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창의적인 면은 초고에서 발견된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무의식적으로, 직접적으로 우러나온 것을 곧장 쓰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얼간이가 하는 일이다. 얼간이가 하는 일이라도 물론 끝은 나야 한다.(에번 헌터)

-초고를 끝내자마자 퇴고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무것도 창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게 한다. 지친 당신은 휴가를 가야 한다. 적어도 일주일은 원고에서 손을 떼라.(케네스 애치티)

-최고의 글쓰기는 고쳐쓰기다(E.B. 화이트)
-시를 쓸 때 쓸 것을 미리 안다면 평범한 시가 나온다. 시를 쓴다는 건 앞으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무지를 재창조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이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를 거론했다. 두 눈이 사팔뜨기처럼 모이면서 몸이 둥둥 떠오르는 베다적(Vedic)(Veda:고대 브라만교 경전) 무아지경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상태, 무지한 상태, 다시 배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아지경이다. 이어지는 단어나 문장을 쓸 때 마치 처음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야 한다. 쓰면서 단어의 의미를 새로 발견하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이상적인 시쓰기다.(데릭 월컷)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엄청나게 진지한 자세이며, 다른 하나는 안타깝지만 재능이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재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인내와 응용력, 생산력, 근면함, 의지, 의지, 또 의지, 그리고 욕망, 끝없는 욕망이 중요하다.(고든 리시)

-결국 필요한 것은 단순히 고독이다. 내면의 위대한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예전의 보편적인 진리, 마음이라는 오래된 진실, 사랑과 명예, 동정심과 자부심, 연민과 희생 말고는 그 무엇도 작업실에 두지 않으면서, 이 점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자신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동정이나 연민이 없는 글을 쓰는 것이지요. 그의 슬픔은 어떠한 보편적 기반도 없으며, 상처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분비 기관들에 대해 쓸 뿐입니다.

인간이 불멸자인 이유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홀로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니라 연민과 희생, 그리고 인내를 포용하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작가의 의무는 바로 이런 영혼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고양하고 과거를 영광스럽게 했던 용기와 명예, 희망과 자긍과 연민과 동정과 희생을 드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들의 특권입니다.

시인의 목소리는 한낱 인간만을 기록하는 게 아닙니다. 시인의 목소리는 인간을 인내하게 하고, 승리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버팀목,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윌리엄 포크너,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미래의 시인들에게 조언한다. 행갈이를 한다고 다 시가 아니다. 문학은 근간을 이루는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라. 읽고, 읽고, 또 읽어라.(신시이 오직)

-마지막으로 인용하자면 몰리 해스컬이 이렇게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가 삶을 붙들고 그것을 이해함으로 운명을 초월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다.”(할란 엘리스)

-스타일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면, 스타일은 바로 그런 자신에게서 우러나온다.(캐서린 앤포터)

-가장 멋진 스타일은 은유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세부 사항이 살아 있지 않은 단편소설은 삭막하고 건조하다. 세부사항은 이야기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야기가 인간적일수록 더 좋은 소설이 나온다.(V.S. 프리쳇)

-사소한 것을 애무하라. 신성한 사소함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단어는 무게와 소리, 외양을 가지고 있다. 단어를 숙고하는 것만으로도 볼 만하고 들을 만한 문장을 쓸 수 있다.(윌리엄 서머싯 몸)

-글을 쓸 때는 우리가 자연스레 생각하고 말할 때 사용하는 담백하고 구체적인 단어가 추상적인 단어보다 효과적이다.(데이비드 램버스)

-수많은 시도와 실패 속에서 도무지 글쓰기에 몰두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작가로 거듭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필요한 근육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고 고생 없이는 조금도 커지지 않는다.(존 위너커)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느냐고 수줍게 물었다. 그(콘래드 니커보커)는 이렇게 말했다. “로즈,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걸세.” 나는 이 믿음직하고 고귀한 충고를 니커보커 규칙이라고 부른다.(리처드 로즈)

-쓰고 싶지 않을 때도 글을 써라.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별로인 글만 쓰게 될 때에도.(애거사 크리스티)

-영감이 번쩍 떠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지 마라. 날마다 글을 써라. 초고가 아무리 좋지 않아 보이더라도 전체를 끝까지 써라. 다듬는 일은 나중에 걱정하라.(어빙 월리스)

-계속 써라. 글쓰기란 결국 유희고, 유희에는 대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진짜 작가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쓸 것이다.(어윈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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