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별로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우연」이란 시에 대해 제 나름으로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옛날 포엠토피아에서 공부할 때 송재학 시인의 시집 여섯 권 모두, 그외 정진규 시인, 오규원 시인 등등의 시인들의 시들을 그런 식으로 분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연」 시에 대한 글을 선생님께서 좋게 보아 주시고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심지어는 과분하게 「시인에게 물어볼까?」라는 곳에다가 실어주시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고 있는 책(『설교와 설교자』/마틴 로이드 존스)―문학과 아무 상관도 없는 책이지만―에서 아, 이것이구나 하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소개하오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술적 수완의 기교와 예술의 필연성‘을 구분하는 글을 읽었는데, 필자는 그 글에서 두 가지의 차이를 완벽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적 수완은 기교로 전락합니다. 이를테면 감명을 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정한 예술가의 작품을 특징짓는 것은 ’필연성‘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바로 그 모습 외에 다른 모습은 될 수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술적 수완은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기교입니다. 자신의 목적에 필요한 효과를 연출하는 것은 나이 든 매춘부에게 항상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시를 말하기 위해서 이 말을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설교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설교의 말하려고 하는 것이 기계적이 아니라 ‘필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만 하여 진리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진정성이야말로 신자들에게 감명을 줄 것입니다. 그런 감명에 의해 자신들의 삶의 태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랜 시간 앉아서 설교를 기다리는 것은 나변(那邊)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들 다 동감하실 줄 믿습니다만 저도 시를 지어서 자꾸 고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게 되면 이상하게 처음 제가 감동받아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벗어나고 글은 더 멋있게 된 것 같은데 너무 화려해서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말하려고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설교에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없어지고 무언가 멋있게 보이고 싶은 기교가 중심이 되어버리는 우를 종종 범하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시란 사람이 얼굴이 다 다르듯이 자신만이 가진 개성들이 있습니다. 여자분들 옷도 그렇지 않습니까? 담백하게 입는 분도, 뭔가 화려하게 입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체질을 무시하고 남을 따라가려는 것도 나중에 보면 길을 잘못들게 된 것이란 걸 알게 됩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술은 특출한 극단을 추구하여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사조를 연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이란 시가 묘사하는 기교가 우수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로 여겨야 할 소이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