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칸트의 3대 비판서)

by 현목

한달새 칸트 해설서 두 권을 읽었습니다. 어렵지만 재미도 있었습니다. 칸트라고 하면 중고시절에 들은 바 있으나 고작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위대한 철학자다’, ‘평생 쾨니스히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하도 시간을 잘 지켜 그가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몇 시인 줄 안다’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칸트도 알고 보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나오고 이른바 과외 강사로 아르바이트하여 생활비를 벌어서 살다가 40대 중반에 겨우 대학 교수 자리를 땁니다. 후반에는 대학 총장도 되는 등 안정된 생활을 하기는 합니다. 칸트가 서양 철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 줄은 몰랐습니다. 고대 서양철학의 사상이 칸트에서서 모여져 현대 철학으로 갈래가 갈라졌다고 하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천학비재한 저가 칸트 운운하면 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저나름으로 그냥 느끼는 점만 말해보려고 합니다.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세 가지로 대답합니다.

1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나. (이론 이성=지성)

2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실천이성=도덕 법칙)

3 인간은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종교)


말하자면 이 세 가지 영역을 책으로 만든 것이 칸트의 그 유명한 3대 비판서에 해당합니다.

칸트는 인간 정신을 감성, 상상력, 지성, 이성, 네 가지로 나눕니다. 3대 비판서를 보지요.


1 순수이성비판: 감성은 대상을 시간과 공간에 올려놓고 양,질,관계,양태의 범주)를 통하여 지성을 이루어 대상을 인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없는 것(영혼과 신)은 알 수 없습니다.


2 실천이성비판: 이성은 자율로 도덕법칙을 세워 스스로 의무적으로 명령에 따릅니다. 이것이 유명한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입니다. 칸트는 자유에 바탕한 도덕법칙을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자유에 기초하여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면 따지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3 판단력비판: 여기에 작동하는 정신을 반성적 판단력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심미적 판단: 칸트 식으로 말하면 취미판단에 해당합니다. 감성의 자료가 상상력에 의해 지성과 합치할 때 우리는 미적 쾌감을 느낍니다. 이건 순수이성비판의 인식론과 비슷한데 다른 점은 설명이 복잡합니다. 아무튼,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대표적인 예가 메타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송재학의 시 「애월 바다까지」에 이러 시구가 있습니다. ‘검은색 따라간 며칠 새/몇개의 부음을 받았다/길 전체가 목관악기인 애월에서의 해미 같은’. 길이 목관악기인 호른 같은 청각적 감각과 바다에 낀 안개의 시각적 감각의 이미지가 상상력에 의해 부음(지성)과 합치할 때 우리는 미적 쾌감을 느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②두 번째는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떻든 간에 칸트는 최고선을 도덕법칙의 실천과 행복에 둡니다. 쉽게 말해 덕행을 쌓은 만큼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법칙을 인간이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어렵기에 칸트는 무한한 시간, 영혼불사를 요청합니다. 행복은 자연세계에서의 필요요구의 충족인데 이 둘의 합치를 위해서는 칸트는 신의 존재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는 저로서는 이해가 쉽지는 않습니다.


칸트는 흙수저로 태어나서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를 한번도 떠나지 않았고 대학교수가 되고나서 63살에 겨우 제 집을 마련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성실 하나만으로 일생을 관통했습니다. 포도주를 조금 마신 후 그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Es ist gut.”이었습니다. 80살이었지요. 우리는 임종의 순간에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지……. 


자연세계의 행복이란 필요요구의 충족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얼 말하는지 ‘가리늦가‘ 의문이 듭니다. 행복이란 설마 자연세계의 경향성(욕구)의 충족은 아니겠지요. 대부분의 인간은 한 편생 살아가면서 행복하길 원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식욕, 성욕의 충족이요, 나아가서는 권력이나 명예, 건강을 목표로 다들 아등바등하다가 갑니다. 걔중에는 성공하여 행복하였다는 사람도 있고 달성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행복은 이게 아니라 다른 거 아니냐면서 보따리 싸고 수도생활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은 그런 욕구를 줄이자고 피해서 산속으로까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대체 칸트는 자연세계의 행복이 어떻다는 걸까요. 그가 말한 최고선의 한축, 도덕실천의 완벽성은 이해가 가고 또 그가 그만큼 강조해서 『실천이성비판』이라는 책까지 저술했는데 다른 한축인 자연세계에서의 행복에 관해서는 적어도 『실천이성비판』만큼의 양을 가진 책을 써야 바란스가 맞는 것이 아닐까요. 새삼 궁금하기도 하고 의심이 갑니다.


행복은 인간의 감성을 충족하는 거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가 없으면 행복도 없다고 하지요. 칸트는 도덕이 완벽해지는 건 인간 세상에서는 불가능하고 무한히 노력하여야 가능할 수 있으므로 영혼불멸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도덕이 완벽할수록 행복이 따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칸트는 이 이상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신이 요청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고달픈 인생이고 흠 많은 인간이지만 우리는 이걸 희망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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