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산 가는 길목에
허리춤까지 온 잡풀이 숨기고 있었다
희미하게 바랜 비석에 쓰여진
處士 朔令 崔公…
아랫 글씨까지 뒤지는 것은 잡풀의 진의를
짓밟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단단히 굳어진 최공의 시간을 밟고 간다
풀잎에 달린 이슬의 반짝임이 가슴에 스며들고
햇빛이 밀어주는 손길에 몸이 따뜻해지고
변덕스러운 바람이 지나가면서 세속 소식 전해주니
한적을 두드리는 빗소리,
함박눈이라도 오면
자근자근 썩게 하는 황토마저 정답다
번화하고 풍성한 한양 등지고
늘그막에 알은
‘베’형의 피아노 소나타 서른두 곡과
현악사중주 열여섯 곡에 귀 열어놓고
보이지 않는 달빛을 거닐면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그나마 숨어 사는 즐거움인 것을,
*허균의 ‘숨어 사는 즐거움’에서 따옴. (원제는 閑情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