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홀은 유명한 시인인 모양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1928년에 태어나 2018년에 만 89세로 몰(歿)하였습니다. 70년 이상 글을 썼고 4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계관시인 칭호도 얻고 오바마 대통령이 수여한 국가예술훈장도 받았습니다. 앤아버 미시간대학 교수도 역임했습니다. 결혼 생활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어서 커비 톰슨과 15년의 결혼생활을 하고 이혼하고, 열아홉 살 연하의 제자이자 시인인 제인 케니언과 결혼하였는데 결혼하고 23년간 지냈으나 제인이 마흔일곱 살에 백혈병으로 죽습니다. 도널드 홀의 인생 종반에도 결혼한 것 같은데 여자의 이름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돈도 꽤 벌었는지 나중에 보면 비서가 있어 글을 쓰면 타이프를 쳐주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개인 트레이너도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을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으로 의역을 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원제목 그대로 ‘여든 살 이후의 에세이’라고 직역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굳이 독후감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필 쓰기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책의 맨 뒷장에 유수(有數)한 미국 언론사들의 찬사가 11개나 있습니다. ’이 책은 보물이다‘, ’매력적인 솔직함과 단단한 정확성‘, ’상쾌하게 직설적이고 실제적이고 (또한 저속한) 위트‘, ’문체의 거장‘, ’문예 분야의 걸출한 맹수‘, ’언어와 관찰과 놀라게 함의 장인‘ 등이 있습니다. 과연 무명의 작가가 이런 수준의 수필을 썼다면 유명한 언론사들이 이런 찬사를 했을까요.
처음에는 이것도 이름 있는 시인의 유명한 에세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어떤 지혜도, 깨달음도 감동도 없고 단지 도널드 홀이 경험한 것을 나열해 놓은 것 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신변잡기(身邊雜記)입니다. 물론 너무 폄하하는 것 같지만 솔직함, 위트와 유머, 여든 살을 살아오는 인생의 지혜가 없는 바는 아니라고는 생각합니다.
열네 편의 수필의 한편 한편의 분량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보통 수필 A4용지 한 장 반 내지 두 장의 분량보다는 두세 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시시껄렁한 수필은 ‘모든 음식에 마늘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실린 수필들의 거의 다가 기본적인 흐름이 ‘모든 음식에 마늘을’처럼 음식 얘기를 그저 경험한 대로 쓴 것입니다. ‘모든 음식에 마늘을’이란 수필을 보면 1938년 조부모님이 농장에서 지내던 시절의 얘기를 합니다. ‘정오에 먹던 점심이 3일 내내 똑같은 닭고기 프리카세일 때도 있었다.’ ‘베리류는 잼으로 만들어졌고 사과로 만든 술은 식초가 되었다.’ ‘그 식당은 75센트짜리 마늘치즈버거로 유명했다.’ 1987년 중국과 일본으로 가서 미국의 시에 관해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음식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합니다. ‘일본은 다양했다. 화려한 도시 음식, 북일본 음식, 그리고 한국 음식. 한국 식당은 스스로 청결, 청결, 청결을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옛날에 자기가 경험한 음식들을 입심 좋게 얘기한 셈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수필은 특이했습니다. 처음에는 옛날에 읽은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처럼 죽음을 앞둔 여든두 살의 올리버 색스가 삶에 대해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내용인가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시 낭송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시낭송하는 중간에 시인이 “감사합니다(댕큐)”를 하면 청중은 박수를 친다는 것입니다. 시를 낭송하고 난 다음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있다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시낭송 모임에 가본 적이 없어 우리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란 것은 시낭송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무료도 있겠지만 입장료를 내고 시낭송회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강연 중개인이 전화를 주었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어느 대학에 가서 내 시를 읽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요청이 되풀이되면서 수업이 없는 날은 나를 부르는 곳으로 날아갔다.‘
시를 낭송하는 스타일도 시인마다 달랐습니다. T.S.엘리엇은 그의 공연이 대부분 고문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전화번호부의 기록처럼 읽었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은 고음으로 너무 빨리 읽었습니다. 월리스 스티븐슨은 자기의 작품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정한 낮은 톤으로 잘 들리지도 않게 읽었습니다. 메리앤 무어는 아무 억양 없는 단조로운 읊조림이었습니다만 나름 독특했다고 합니다.
관객 수도 재미있었습니다. 도널드 홀의 친구는 행사장에 도착하니 관객이 단 한 명인 걸 발견했습니다. 둘은 맥주 마시러 나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시인은 두 명의 관중 앞에 서게 돼서 연단에 서서 용감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낭송을 마친 적도 있었습니다.
’문이 없는 집‘이란 제목의 수필은 내용은 별 것 아니지만 여든 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이가 있는지라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나는 여든 살이 된 뒤 두 번 사고를 낸 후에 차를 팔았다. 처음 한 달 정도는 마음 내킬 때마다 혼다를 몰고 나갈 수 없게 된 것이 속상했다.‘ 자동차 사고를 두 번 당하고는 운전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나이 들면 운전을 해도 시력도 나빠지고 순발력이 잘 작동을 하지 않으니 사실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아마도 변역자는 이 문장을 보고 제목을 고쳤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죽어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치매에 걸려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서로 싸우고, 어떤 친구들은 늙어서 침묵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건 정말 늙어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저 역시 지금보다 젊어서는 이런 일은 아예 일어나리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젊어서 기고만장해도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 늙은 나무가 되듯이 집에서 자기의 수레를 밀고 다니며 고관절이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는 날도 기어이 오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노년의 한 가지 특징은 거의 잊힌 시대에 대한 얘기를 자꾸 되풀이 하는 것이다.‘ 이 말의 당사자는 바로 도널드 홀이고 언젠가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도널드 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수필집은 문학적인 수준보다는 여든 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입심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봅니다. 처음에는 크리스티앙 보뱅과 비교가 되어서 약간은 수준이 낮게 보았으나 나름 유모와 위트, 솔직함, 글쓰기를 하면서 겪은 일들은 저에게는 새로운 것이어서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 홀은 고쳐쓰기를 좋아해서 많을 때는 80번, 적어도 30번은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연실색(啞然失色)했습니다. 저는 많이 해봐야 서너 번 정도이고 고쳐쓰기 안 하는 것도 제법 됩니다. 정통적인 수필이 아닌 것이 약간 아쉽지만 저보다 한 20년은 나이 많은 도널드 홀이라서 그런지 그가 노년에 겪은 경험들을 얘기할 때는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