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손을 멈추지 말라'
이번에 ‘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게재하면서 글쓰기를 다시 복습해 보려고 옛날에 읽었던 책을 끄집어 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녀의 책 다섯 권을 거의 다 읽고 시키는 연습문제도 대부분 풀어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책이 제일 먼저였는데 책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2012년 6월 22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원본의 초판이 1986년이고 한국에서 처음 번역본이 나온 것이 2000년입니다.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는 백만부가 팔렸다고 선전했지만 책이 나온 지가 거의 35년이나 됐으니 어쩌면 ‘올드 패션’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의 9년만에 다시 읽어 보니 그때는 못느꼈던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어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사실 글쓰기를 처음 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니 어쩌면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하는 것이 뜬구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직접 글쓰기를 하면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나탈리의 말이 폐부(肺腑) 깊이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탈리는 이 책에서 63개의 소제목으로 조언을 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고 생각하는 것 세 가지와 그 외 몇 가지를 덧붙여 봅니다.
첫째는 자신을 믿고 쓰라고 합니다. 나탈리는 자신을 믿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자신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이걸 처음 절실히 느꼈습니다. 몇십 년 글을 써와도 언제나 열등감에 젖은 저였습니다. 시를 써도 제가 봐도 완벽하지 못하고, 시나 수필을 어디 공모전에 내놓아 보아도 낙선하기 일쑤이다 보니 주눅이 들고, 글을 써놓고도 남들이 뭐라고 하나 하고 눈치를 봅니다. 나탈리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탈리는 자신을 믿고 써야 자신의 내면 깊은 데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깊이 숨어 있던 꿈을 만나고 그 꿈을 표현하여 자신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을 찾아서 떠나 자신을 만나는 행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믿고 써야만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시야가 넓어지고 인생의 안정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생각을 물고 늘어지라고 했습니다. 나탈리에 의하면 나의 첫생각은 내 안의 통제기전―나탈리가 말하는 소위 내부 검열관―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감정, 지식을 바탕으로 나온 신선한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이 첫생각을 이어서 나가는 노력을 하라고 했습니다. 첫생각이 나오면 그것을 순수한 감정으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로 분석하여 첫생각이 변질한다는 것입니다. 나탈리는 추상적인 글을 원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는 글쓰기의 기본인 구양수(歐陽脩) 삼다(三多)에서의 많이 읽고, 많이 쓰기는 동의하지만 많이 생각하기는 달리 말합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단어와 음향과 생각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추상적 진술이 아니라 감각 위주의 이미지 만들에 힘쓰라는 말입니다.
셋째는 손을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생각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쓰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해서 소위 작품다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기우가 들은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감히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 말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심지어 나탈리는 이런 심한 말까지 합니다. ‘그냥 입 다물고 쓰고 또 쓰라.’ 이렇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탈리에 의하면 우리 내부에 ‘검열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려고 첫생각이 떠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종이 위에 순수하게 옮겨 놓으면 되는데 어떤 말을 해야겠다고 미리 생각이 앞서거나, 멋있게 써야겠다는 강박 관념이 글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너무 생각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쓰라고 나탈리가 입이 닳도록 말합니다. 그런 연습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고 더 진전되면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통제하지 말라. 조절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 외 나탈리가 우리의 글쓰기에 조언하는 항목이란 많이 있습니다. 세부묘사, 반죽만 한 글이서는 안 된다, 거창한 주제는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변질되어 진부한 장문이 된다 이때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라, 4시간 글쓰기 마라톤, 은유에 대한 언급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두 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세부묘사입니다. 나탈리는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부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당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다’라고 극언을 합니다. 말하자면 제가 50년 전 명동의 선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 모습을 쓸 때 세부묘사를 하면 그 글은 생동감, 개연성, 진실성을 띠게 되고 이때는 더 이상 글쓰기의 잔기술을 얘기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세부묘사―저는 세밀묘사라고 합니다만―의 연습으로 저는 이런 식으로 해 본 적이 있었고 제 손주들에게도 글쓰기 훈련 시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라는 간단한 행동의 문장을 진료실 문을 열기 전, 열고, 열고 나서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글로 구성을 하면 나탈리가 말한 세부묘사가 된다고 저는 봅니다.
다른 하나는 은유에 대한 나탈리의 언급입니다.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탈리가 은유를 별로 말하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개인적인 성향이겠지만 저로서는 이른바 문학적 표현에는 은유가 핵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술로도 뛰어난 작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드디어 나탈리가 은유에 대해 말합니다. ‘자동차를 먹고 사는 사나이가 있다니!’ 여기에는 논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고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유는 몰라도 괜찮다. 의도적으로 은유를 만들지 말고 은유를 위한 은유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나탈리의 이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문학적 표현의 진수는 은유의 구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유야말로 상상과 발견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은유도 재능에만 맡기지 말고 글쓰기 훈련처럼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실제로 손주들을 몇 년간 은유 훈련을 시켰는데 그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 확실히 처음과는 은유 구사 능력이 달랐습니다. 얼마 전에 황지우 시인의 유튜브를 보았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신병자가 하는 망상이나 환시는 사실은 건강한 사람 쪽이 사용하면 그것은 바로 은유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섬뜩한 얘기이지만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은 나탈리도 약간 이율배반적으로 말합니다. 타성에 젖은 문장에서 벗어나자고 하면서 ’나는 개를 본다‘는 문장론에서 ’개가 나를 본다‘는 문장론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사물이 사물에게 말하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자는 것입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소설도 썼지만 그 소설 작품보다는 글쓰기 훈련을 위한 강좌를 열어서 많은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제가 읽어본 느낌은 그냥 읽어서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없고 그녀가 다른 책에서 보면 연습문제들을 내는데 그것을 충실하게 풀어가면 나탈리 수업의 목적, 즉 자신을 믿고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우리들 속에 있는 전정한 본성에 도달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