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Mar 17. 2024

화포천(花浦川) 시화전

  2024년 3월 12일 오랜만에 김해문협 월례회 모임에 갔다. 김해시 환경정책과에서 시화전을 개최한다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주제는 ‘화포천 습지에 반하다’이고 시의 행수는 10행으로 제한한다. 마감은 3월 20일이고 선착순 40명이 제출하고 수정해도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전시는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화포천 아우름길 일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런갑다 하고 지나쳤다.


 그래도 돈도 안 들고 무려 30일 동안 전시한다고 하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내년에 『비봉산에 오르며(가제)』 시집을 내려고 2000년대 초부터 써놓은 시들을 정리한 것이 127편이 있어서 화포천과 어울린 시가 있나 찾아보았다. 두 편을 선택했는데 「시냇물」과 「동백이 두근거린다」였다. 전자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화포천은 기본적으로 습지로 알려졌으니 시냇물하고는 이미지가 동떨어져 보였다. 후자 역시 화포천에서 동백꽃을 본 적이 없어서 이것 역시 맞지 않을 것 같애 포기했다. 시화전에 참석 못하면 대수냐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3월 13일은 마침 병원에서 당직을 하는 날이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화포천에서 보았던 독수리가 생각났다. 지난 2월 15일 목요일 당직 후 반차를 이용해서 화포천엘 갔었다. 매번 가던 곳이 아닌 반대쪽을 가다 보니 하늘에 엄청난 시커먼 새떼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처음에는 저게 솔개인가 하고 혼자서 추측을 했다. 열심히 새들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나중에 구글에서 ‘화포천 솔개’를 쳐보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화포천 독수리’를 넣어보니 아뿔싸! 이 새들이 바로 화포천의 독수리 모습과 똑같았다. 화포천 독수리를 대상으로 뭔가 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선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다.   

  

화포천 독수리          



고독은 깊을수록 높이 날아오른다

비로소 보이는 본체들

빙빙 더 멀리서 돌아야 한다

허물을 삭이고

내 속에 들어와 육과 영이 되기 위해

무언이 자각의 길이다

검은색을 죽음이라 말하지 마라

허정(虛靜)이 편안하다

이제 삼미터 날개를 펴고 

우주를 품에 안으려 한다    

 

  다 써놓고 보니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구글에서 ‘화포천 독수리’라고 치니 여러 가지 자료들이 올라왔다.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몽골에서 서식하다가 월동을 위해 3,000km를 날아온다.

∙11월에 날아와 3월에 몽골로 날아간다.

∙개체 수가 백여 마리에서 증가하여 현재 400여 마리다. 전세계에 2만여 마리 남아 있다.

∙3m 긴 날개.

∙천연기념물 243호 멸종위기종 2급.

∙화포천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

∙화포천(花浦川)은 김해시 21㎞를 흐르는 김해의 대표 하천이다. 화포천은 진례면 신안리 대암산에서 시작한다. 진례와 진영의 논밭을 거쳐가다 물길이 머물고 습지가 나타난다. 이후 낙동강에 이르른다. 화포천 습지는 국내 최대 `하천형 습지`로 길이 8.4㎞, 면적 3.1㎢이다.

∙검은색은 빛을 다 흡수하고 흰색은 빛을 다 반사한다.

∙허정(虛靜). 노자 도덕경 16장에 나오는 말이다. 致虛極守靜篤(치허극수정독) ‘완전한 비움에 이르게 하고, 참된 고요함을 지키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럼 한행 한행 어떤 마음에서 시상을 떠올렸는지 알아보겠다.

     

∙고독은 깊을수록 높이 날아오른다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걸 보면 보통 새들보다 훨씬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높을수록 고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비로소 보이는 본체들

  높이 올라갈수록 눈 아래 보이는 사물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눈앞의 사물에 매달려 허둥지둥, 아웅다웅 살아온 생이 한눈에 들어오면 사물의 실체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빙빙 더 멀리서 돌아야 한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생을 반추하면서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허물을 삭이고

  ‘허물’이란 ‘잘못 저지른 실수’라는 뜻인데 내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나 사람이나 모든 생명체는 거의 대부분이 한평생 사는 동안 먹이를 구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의 경우는 동물과는 달리 ‘이성(理性)’이라는 정신이 있어서 자신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면 번뇌하게 된다. 이걸 ‘산다는 것의 아픔’이라고 했다. ‘아픔’도 고달픔, 고단함, 번뇌 등을 떠올렸지만 결국 ‘아픔’으로 정했다.

∙내 속에 들어와 육과 영이 되기 위해

  이 행은 마침 내가 요즘 듣고 있는 도올 김용옥의 요한복음 강해 유튜브를 보면서 얻은 힌트였다. 이 양반 나이가 나와 같고 고려대학 생물학과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려대 철학과를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한신대에 들어간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졸업했는지 모르겠다. 호가 신기해서 알아보니 한문으로 檮杌인데 둘다 ‘나무그루터기’라는 뜻이다. 한동안 별로 관심도 안 갖고 있다가 요즘 유튜브를 보니 사람이 우선 솔직한 면이 있는 반면에 쌍소리도 잘 하고 화도 잘 내고 잘난 체도 하지만 그래도 예리하게 지적하는 지성은 대단했다. 물론 그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취사선택해서 들을 만하다고는 생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한복음은 ‘로고스기독론’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영어 성경에서 ‘말씀’을 ‘the Word’로 되어 있고 이 ‘말씀’은 ‘로고스(logos)’라고 했다. 하나님이 ‘로고스’이고 말씀이 육화되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기독교에서는 믿는다.  우리 속에는 로고스라는 빛의 파편이 있어서 하나님의 영(靈)을 우리 안에 모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독수리가 고뇌한 그 영이란 로고스이고 이것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처음에는 영만 썼지만 결국 스스로 번뇌하여 얻은 것은 영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여 ‘육과 영’이라고 고쳐 썼다.

∙무언이 자각의 길이다

  ‘무언(無言)이 자각(自覺)의 길이다‘라는 행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본 종범(宗梵) 스님의 말씀이 아니었나 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자력(自力) 종교인 불교는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말이 없어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깊은 사색과 무아(無我) 경지에 갈 수 있다. 독수리가 그러리라고 상상을 한 것이다.

∙검은색을 죽음이라 말하지 마라

  실제로 독수리를 바로 옆에서 본 적은 없으나 멀리서 보면 검은색으로 보인다. 이 특징을 살리려고 구글에서 찾아보니 검은색은 빛을 모두 흡수하여 검은색이 된다고 했다. 도올은 빛은 로고스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독수리는 ’빛의 파편‘ 즉 하나님의 로고스를 자신의 몸속에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처음에는 ’검은색은 빛의 파편을 안고 있다‘라고 했다가 행이 너무 ’~다‘로 끝나는 것보다는 검은색의 한 단어로 끝나는 것이 리듬에 좋겠다고 생각하여 ’빛의 파편을 안은 검은색,‘으로 고쳤다.

∙허정(虛靜)이 편안하다

  허정이란 말을 좋아해서 다른 시에서도 써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허정이 편안하다‘라는 행은 관념적이고 너무 설명적이어서 조금 미흡한 듯 했다. 구글에 찾아보니 노자 도덕경 16장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원문은 致虛極守靜篤(치허극수정독) ‘완전한 비움에 이르게 하고, 참된 고요함을 지키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금 풀어서 ‘비우고 고요하니’로 바꿨다. ‘편안하다’는 설명이라서 이미지를 나타낼 말은 없을까 하다가 ‘찾아온 편안한 양지’로 했다. 볕이 드는 양지(陽地)라는 이미지를 넣은 것이다.

∙이제 삼미터 날개를 펴고 

  화포천 독수리의 날개가 3m란 것을 구글에서 알았다. 그냥 ‘날개’라고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삼미터 날개’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우주를 품에 안으려 한다

  이 행은 사실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다. 조금 과장되더라도 독수리가 마침내 자성(自性)의 경지에 올라서,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열반을 느끼면서 우주와 하나가 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안으려고 한다‘보다는 ’안으련다‘가 낫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퇴고한 시를 완성했다.     


화포천 독수리     



고독은 깊을수록 높이 날아오른다

비로소 보이는 본체들

빙빙 더 멀리서 돌아야 한다

산다는 것의 아픔을 삭이고

내 속에 들어와 육과 영이 되기 위해

무언이 자각의 길이다

빛의 파편을 안은 검은색,

비우고 고요하니 찾아온 편안한 양지

이제 삼미터 날개를 펴고

우주를 품에 안으련다     


  대충 보니 메타포가 5개 진술이 3개가 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자료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대부분 시를 쓴다고 하면 무조건 내 머릿속만 굴려서 무언가 싯구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료를 많이 모으면 자신이 몰랐던 시상을 떠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대로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성을 메타포로 바꾼다든지 시적 변용을 일으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당직하면서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고쳐쓰고 고쳐쓰면서 잠을 설쳤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김해문협 카페에 들어가보니 40명 제한인데 벌써 34명이 시작(詩作)을 제출했다. 내가 35번째로 내었다. 어쨌든 나름 귀중한 체험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동백이 두근거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