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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Jul 01. 2024

자장어반(自藏於畔)

  제가 김해 문협에 들어온 지 딱 일년이 됐습니다. 이윤 선생님의 호의와 배려 덕분에 인연이 없는 문협에 들어온 셈입니다. 돌아보면 새로운 것을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이제까지 글을 씁네 하면서 거의 혼자가 꼼지락대다가 모르던 세계를 본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문협은 속성 상 개인간의 교류보다는 출판이나 전시 같은 행사 위주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 나이에 딱히 이런 게 적성에 맞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입회 시에 들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문협은 65세 이상은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마는 이제 보니 그 입장도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김해, 특히 진례 촌구석에 살면서 제 생활에 변화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 목요일이면 오후 반차이기에 김해 여기저기 많이 쏘다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율하카페거리였습니다. 거기에 생뚱맞게도 ‘숲으로 된 성벽’(기형도 시인이 시 제목)이란 동네 책방이 있어 들어가 보니 독서모임이 있다고 해서 가입하려고 하니 사람이 다 차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북토크가 있다고 하여 말로만 듣던 것이어서 두 번 참석해 보았습니다. 책의 저자와 독자 사이의 교류였는데 나름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번 7월 초에 전호근 선생님의 『장자 강의』 북토크가 있다고 하여 참석할 예정입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장자 책들을 다시 복습하던 중 『소요유, 장자의 미학』(왕카이/王凱) 중에서 시쓰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대단히 놀랍고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물론 현대적 시쓰기에 비교하면 동떨어진 얘기인지 몰라도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소요유, 장자의 미학』 중에서 문예에 대한 부분만 발췌, 요약한 것을 첨부합니다. 필요하신 분은 참고 바랍니다.


  장자 철학은 인식론이 아니라 심미론이라고 했습니다. 『장자』의 키워드는 심재(心齋), 좌망(坐忘), 허정(虛靜), 소요유(逍遙遊)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천박한 제 생각으로는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 동안 즐겁게 산책하듯이(소요유) 살다가 가라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해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허정(虛靜)이라 했습니다. 허정은 노자의 『도덕경』 16장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다 좋은데 그래도 한가닥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서도 쉴러의 ‘잉여 정력설’이라는 것을 인용했습니다. 먹고 사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면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도 시도해 볼 만은 하겠지만 정작 생계가 어렵고 병마의 고통에 날마다 시달리는 사람에게 장자의 ‘소요유’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싶습니다. 징자가 말하는 ‘소요유’의 핵심은 정신적 자유입니다.  그 ‘소요유’가 단지 머릿속의 환상인지 실제로 자연을, 산길을 걸으면서 체득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장자의 사상은 멋있어 보이는데도 한편으로는 너무 뜬구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읽다가 보니 『장자』의 잡편 제25편 칙양(則陽)에 나오는 ‘자장어반(自藏於畔)’이란 글귀를 보자 제 마음이 그 글귀에 꽂혔습니다. ‘밭두둑 사이에 자신을 감춘다’는 뜻입니다. 저 자신을 위로, 합리화하기 위한 생각인지 요즘은 자꾸 번다한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예전에는 밭두둑이라는 말조차 잘 몰랐습니다. 팔 년 전 사천 논밭의 밭두둑에 핀 주름잎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낙락장송(落落長松)만이 한 세상 멋있게 살다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꽃이 핀 주름잎은 누구한테 자랑하고 뽐낼 것도 없이 장자가 말하는 염담(恬淡)이었습니다. 쪼그라지기만 하는 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은 야생화입니다.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이 저의 즐거움이 되길 바랍니다. 

    

                                                                          ***     


-만물이 균일하고 물체가 동체(同體)이므로 물(物)의 입장에서 물을 바라보는 심미 태도는 바람직하다. 물을 대상화시키고 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심미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의 입장에서 물을 바라보기‘

-물아양망(物我兩忘)의 창작

이렇게 창작된 작품은 자연성을 띠고 있다. 자연 자체가 현현(顯現)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현현시킨 것이지 작가의 주관적 희망에 따라 자연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은 깊게 생각하고 골똘이 따질 것 없이 자연 산수 자체의 현현에 순응하여 그 중 빼어난 한 장면을 골라 뽑으면 된다.

-시의 참된 가치는 ’직접 찾아내는‘ 데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을 정화하여 텅 빈 마음으로 물(物)을 대하고 율동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영혼이 허정(虛靜)한 상태로 들어서면 정감(情感)의 강은 자유롭게 고를 수 있으며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내리게 된다. (有事來應 與物接) 

-물이 사람의 감정을 촉발시킨다. 서양의 ’감정이입‘설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물감설(物感說)은 체험론이지 인식론이 아니다. 물감은 본질적으로 교감이며 이것은 심미 주체의 감각 활동과 심미 대상의 응답을 포함하고 있다. 즉 교감은 사람과 물의 상호융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물감설: 중국의 문예 이론에서, 문학이란 인간의 정감이 외부의 사물을 보고 일어나는 느낌의 표현이라는 이론적 관점이다. 陸機가 제시한 卽景生情의 이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감설은 물의 실상이 있고, 사람이 텅 빈 마음으로 사물을 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모두가 맑고 고요하며 자연스런 영혼의 상태가 심미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고 있다.

-물감이 심미 감수(경험)의 일반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감흥은 일반원칙이 예술 창작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운용되는 것이다.

-심미 발생의 심리적 전제가 허정이다. 심미 발단의 심리적 활동은 감흥이다. (감흥: 감동되어 일어나는 흥취) (꽃을 보고 아! 아름답구나 하고 구체적으로 소리를 냄)

-감흥의 감은 감각, 감수(경험)의 의미를 가리킨다.

-감흥의 흥은 사람의 정감이 격렬히 일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종영(鐘嶸)의 『시품서』에 따르면 ”기(氣)는 물(物)을 움직이고 물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러므로 성정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여 춤과 노래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성정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 흥이다.

-송나라 양만리(楊萬里)에 따르면 ”대체로 보아 시를 지을 때 흥은 높은 단계이고 부(賦)는 그 다음 단계이고 경화(庚和)는 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부: 감성을 그대로 적는 한시체의 한 가지. 사물이나 그에 대한 감상을 비유를 쓰지 아니하고 직접 서술하는 작법이다)

-흥(즐거움으로 일어나는 정서)이 자연스러운 까닭은 시인의 선입견을 배제하여 시가 나를 찾아온 것이지 내가 시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시인은 처음에 시를 쓰겠다는 의도 없이 텅 빈 태도로 사물을 대하는 허정 상태에 처해 있을 뿐이다. 흥은 먼저 외물(外物)의 촉발이 있은 다음에 정(정서)를 일으키는 것이며, 이때 시인은 비로소 시를 쓰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6월 중순에 순천만 습지에 갔다. 갈대밭에 들어선 순간 갈대들이 부딪쳐 비비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면서 내 머릿속에서 이건 감정이 다 빠져나간 오성의 소리라고 느꼈다. 그래서 쓴 시가 「갈대 소리」였다)

-장자의 자연 미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흥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①첫째, 흥은 예술 창작의 자연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흥의 자연성은 사람과 물의 자연본성에서 나오고, 사람과 물이 서로 막힘 없이 직접적으로 통하고 함께 합쳐져서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②둘째, 흥은 예술 창작의 직관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보통 번쩍이듯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돌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본성을 직관할 수 있다. 예술 창작 중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③셋째, 흥은 예술 창작의 은유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흥은 일종의 은유적 현상이다. 은유성은 시가 예술적 감염력을 떨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작품이 흥취가 있으려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동기를 직접적으로 밝혀서는 안 된다. 이것이 감정은 글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情在辭外) (유행가가 시가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행가는 情在辭內이다.)

-어떠한 예술 작품도 모두 상징으로서 예술 창작은 상상과 떨어질 수 없다. 장자의 관물방식도 투시와 통견(洞見)으로 역시 상상에 해당된다. 예술가의 솜씨는 상상을 통해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는 데 있다. 

-맑고 텅 빈 영혼은 심(心)과 물(物)의 교감을 실현한다. 심과 물이 어울려서 녹아들어야만 상상의 대문을 열 수 있고 신사(神思)로 하여금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다.

-허정해야만 물에 감응할 수 있고, 물에 감응해야만 감정이 드러날 수 있고, 감정이 드러나야 상상이 생긴다. 이것이 예술 창작의 규칙과 부합한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묘사는 상상력을 쓰지 않으면 완성할 길이 전혀 없다.

(글쓰기: 마음이 허정→심과 물→물이 말하게 해야 한다→감이 일어나고→흥이 일어나고→정재사외하고→상상)

-상상력은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

①창조의 힘

②인격화의 힘

③순수한 감각 형상을 만드는 힘이다.

-잠재적이고 비현실적 있음이 바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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