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리브스의 『365일 작가 연습』을 맨처음 읽은 것은 2012년 5월이었습니다. 2022년 10월에 독후감을 써서 제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이 책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매일 글을 한편이라도 쓰자고 마음 먹고 스스로 다짐을 해보지만 언제나 만사휴의(萬事休矣)였습니다.
주디 리브스의 책에는 12가지의 조언이 있습니다.
1월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2월 관찰하고 기록하라 3월 자신의 글을 판단하지 말라 4월 말하지 말고 보여 주어라 5월 한 단어씩 앞으로 나아가라 6월 자신의 재료를 철저히 알라 7월 당신의 개구리에게 키스하라 8월 진실을 말하라 9월 세부 사항을 구체적으로 써라 10월 자신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써라 11월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라 12월 자기만의 글쓰기 재료 목록을 만들어라
이것도 중요하지만 제게는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 ‘작가의 재료‘라고 해서 1월 1일부터 12월 31까지 매일 글쓰기의 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1월 1일의 제목은 ’누군가 바람을 피웠다‘이고 12월 31일의 제목은 ’마지막 하나의 생각‘입니다. 그 제목들로 매일 글을 한편 쓰라는 것입니다. 이게 실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제 가슴을 항상 강박(強迫)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적으로는 회피하여 결실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써야지 하는 얄팍한 희망으로 버티고 속으로는 후회합니다. 2024년 8월 10일 갑자기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하여 스스로를 강제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디 리브스의 책 『365일 작가 연습』에 나오는 ‘작가의 재료’ 8월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맹세했습니다.
저는 왜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피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무언가 그럴 듯한 글을 쓰고 싶은 것입니다. 혹시 쓰고 나서 제가 봐도 수준 이하이면 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A4용지 앞에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나설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간댕이가 너무 작습니다. 제가 쓴 것을 저 말고 또 누가 본단 말입니까.
그날 저는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무조건 ‘작가의 재료’에 나오는 제목으로 글을 쓰자고 맹세를 했습니다. 첫째는 문학(글쓰기)의 기본은 상상이다. 그저 분석명제 문장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되든 안 되든 상상이 가장 기본이다. 둘째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개판으로 써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 셋째는 쉽지 않지만 분석명제의 문장보다는 종합명제의 문장으로 나아간다. 그래야 나의 이상(理想)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근처에라도 갈지 모르겠다. 넷째는 한번 쓰면 일필휘지하여 A4용지 한 장을 완성해야 한다. 고쳐쓰기는 나중에 한다. 다섯째는 항상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여운이 남을 수 있도록 메타포 문장이 되도록 신경을 쓴다. 이렇게 근사하게 그림을 그리고서도 8월 26일이 되어서야 시작했습니다. 글의 제목은 ‘교차로에 있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서원(誓願)하건데 앞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종범(宗梵) 스님의 『오직 한생각』에 나오는 일념자(一念子), 한생각이라는 단어가 저의 뇌리에 꽂혔습니다. 이제 이 나이에 남은 인생에 할 일은 ‘글쓰기’ 한생각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주디 리브스의 책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써라‘는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삶의 최우선 순위에 글쓰기를 놓는 것이 주디 리브스가 작가를 지향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주디 리브스는 자신을 작가로 존중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제껏 글을 쓰면서 살면서 언제나 저는 아마추어라고 반은 겸양한다고 해서, 반은 열등감에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디 리브스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작가라고 먼저 말함으로써 당신의 삶에서 글쓰기가 우선순위임을 재확인하라고 했습니다. 하기사 삼류 가수는 가수가 아니겠습니까마는 말입니다.
두 번째 주디 리브스는 글을 쓸 때 제목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를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앨런 긴즈버그는 “처음 떠오른 생각이 가장 훌륭한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논리적인 뇌가 작동하기 전에 첫 번째 이미지를 가지고 4,5개의 문장을 만듭니다. 그러면 대충 한 문단이 완성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도 다시 떠오르는 이미지를 붙잡고 문장을 씁니다. 주디 리브스가 당부하는 것은 한편의 글이 개구리 소리같이 조잡해도 일단은 일필휘지로 손을 멈추지 말고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는 것을 쓰지 말고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써라” 톰 로빈스가 말했습니다.
세 번째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실은 사실에 있지 않고 구체적인 세부사항에 있다고 했습니다. 집이 아니라 스페인 방갈로이고, 새가 아니라 산비둘기이고, 꽃이 아니라 글라디올러스입니다. 구체적이고 세부사항이야말로 문장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세부사항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건너뛰기 위해서는 간단히 요약해서 말해야 합니다. 사건을 압축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제가 신경을 못 썼던 부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자료 모으기 였습니다. 주디 리브스에 의하면 자료 모으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부 모으기로서 경험, 생각, 꿈, 머릿속에 저장된 것이 해당됩니다. 다른 하나는 외부 모으기인데 관심 주제를 조사하거나 엿들은 대화를 메모하는 것입니다. 작가가 되는 것은 생각하기가 아니라 기록하기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제 노트북에 복잡하게 맥락없이 저장된 자료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주디 리브스가 저에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글쓰기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작가는 항상 다른 작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 그들은 심리적 유대감을 갈망한다. 그것은 일종의 에너지다.“ 시인 스탠리 쿠니츠는 ”글쓰기는 고독한 일이다. 고독을 견뎌내고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작가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는 다른 문인들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맺는 친밀한 관계는 작가의 건강과 행복에 꼭 필요한 요소이고 그것은 영혼을 위한 끼니라고도 했습니다.
비록 무명의 작가라고 해도 너무 자학하지 말고 주디 리브스가 권하는 ’작가의 재료‘ 365일을 성실히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쓰고 또 쓰는 노력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내 안에서 만족한다.”고 말한 비디아다르 네이폴에게 위안을 삼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