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Sep 17.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1

  우선 나의 소개부터 해야되겠네요. 나는 몰티즈라는 개 종류입니다. 내가 특별히 내세울 건 없습니다만 그래도 월등히 작은 체구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 같기는 합니다. 나에게도 약점이 있기는 합니다. 코의 색깔이 까마면 금상첨화이겠는데 이게 나의 뜻대로 안 되고 약간 희끄무레 하여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나야 그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어필하는지 잘 모르고 그것이 나의 견생(犬生)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집에 올 때가 생각납니다. 8년쯤 일입니다. 태어나서 한 사십일쯤 되었지요. 그때 동물병원의 진열장에서 나는 천지도 모르고 재롱을 떨었습니다. 나의 눈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그때가 아마도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그전에 어떤 여자 대학생 같은 이가 나를 찜해놓고 갔습니다만 아마도 가격 때문에 저울질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남자와 예쁘장한 여자가 요크셔테리어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 요크셔테리어는 내가 봐도 운명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보였습니다. 축 쳐진 몸뚱아리 하며, 배에는 계란 만한 혹이 튀어나왔는데 그 속에서는 진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눈동자는 다 풀렸고 숨을 헐떡이는데 나처럼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개에게는 너무 처참한 꼴이더라고요. 동물병원 원장하고 뭐라고 하는데 얼핏 열네살이 되었다는 말과 이렇게 앓은 지 한 일년은 된다는 말이 내 귓전으로 지나갔습니다. 원장과 주인이 뭔가 심각하게 얘기를 하더니 무슨 결정이 났는지 다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습니다. 원장이 신디에게―나중에 알았지만 그 개 이름은 신디였습니다―정맥 주사를 어딘가 놓았더니 그 개는 그냥 스스르 잠이 들더라구요. 


  나중에 알았지만 신디는 암에 걸려서 오늘내일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심각했지만 그런대로 태도를 유지하는데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훌쩍이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돌아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자 주인이 나를 보더니 안고서는 귀여워 어쩔 줄을 모르는 게 아닙니까. 바로 전에 눈물을 흘리던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할 정도로 나를 반색을 하는 겁니다. 물론 나도 싫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꼬리를 몇 번 쳐주었더니 그냥 그대로 나의 매력에 꽂혀 버린 모양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바로 다음날 동물 병원에 와서는 나를 데려가 버렸으니까요. 


  새로운 개집과 밥그릇을 사 가지고 내가 지금 있는 집에 들어앉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나를 처음으로 찜한 그 여학생 생각이 나기는 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와서 사라진 나를 보고는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어쩌겠어요. 나도 나의 운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까 아마도 이해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나도 새로운 환경에 처하니까 잔뜩 긴장을 하기는 했습니다. 집은 넓은 데 부부 두 사람이 사는지 집은 고즈넉했습니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 병에 걸린 신디는 자기 집에 쳐박혀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잔뜩 긴장하고 겁이 났습니다. 고양이를 내가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처음 봤을 때 나하고는 별종이라는 느낌이 들고 웬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울음소리부터가 무슨 내시도 아니고 가늘어 빠져 울리고 다니는데 사이좋게 사귀고 싶은 마음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삐꾸라고 부르더군요. 이치도 덩치만 컸지 되게 무서움을 타더군요. 나는 처음부터 그와 상종하지 않기로 했기에 그가 와도 눈길 하나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살려면 마음에 들지 않은 그와도 동거동락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기는 했습니다. 


 여자 주인이 와서 나를 품 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 남자 주인보고 얘 이름을 뭐라고 할지 지어보라고 했습니다. 나야 이름 따위는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는 주의지만 주위에는 이름도 가지가지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내 이름도 그다지 흔치 않은 이름을 갖게 되었답니다. 주인 남자가 마침 그 때 일본 NHK에서 일본 천황의 왕세자가 득녀를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아이코(愛子)라고 작명을 했는데 황송하게도 내가 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인간의 왕족의 이름을 갖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게 나의 탓이 아닌 것만 밝혀 두고 싶네요. 



작가의 이전글 지명도(知名度)와 은거(隱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