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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Sep 22.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5

  나는 집밖은 모릅니다. 당최 집을 떠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몇 년 전인가 한번은 비봉산으로 주인 부부가 나를 데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밖에 나서자마자 온 세상이 신천지처럼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무섭게만 다가왔습니다. 주인 품에서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주인은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옛날의 신디 얘기를 했습니다. 신디는 토요일만 되면 현관문 앞에서 앉아서 밖에 나가자고 짖어대었다고 하더군요. 그 등쌀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무슨 큰 자랑거리나 되는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데 그것은 그쪽 사정이고 나는 난데 왜 내가 그렇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쨌든 비봉산엘 올라가서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통 신디 얘기만 하고 있어 나는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여기가 신디가 뛰어 올라와서 주인이 올라오도록 기다리던 곳이라는 둥, 여기가 신디가 꼭 똥을 누던 곳이라는 둥, 옛날 일이 생각난다는 듯이 추억에 젖어서 나는 별로 어떻게 되든지 상관을 안 하는데 나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는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내가 밟는 땅마다 온갖 먼지가 내 몸으로 덮쳐오고 낙엽들은 내 몸이 무슨 자석이나 되는 것처럼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주인은 나에게 붙은 풀이랑, 낙엽이랑, 진드기를 떼어내느라고 혼줄이 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시는 아이코를 산으로 데려가는가 보라고 나를 들으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나야 듣느니 반가웠지요. 원래 그런 곳에 가는 것은 나의 취미가 아니었으니까요. 반드시 세상을 밖에 나가서 산다고 다 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텔레비전을 볼 줄은 모르지만 주인님이 보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 사람들은 무슨 세계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느니 하면서 자랑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반드시 틀렸다고 토를 달 것은 없지만 반드시 맞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주인님이 하는 말을 옆에서 들었는데 칸트라는 사람이 있습디다. 그는 평생에 자기 동네를 나간 적이 없다고 하데요. 어쩌면 나하고 그렇게 닮았는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그와 깊은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왜 그렇게 부산하게 어딘가를 왔다갔다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용히 집안에 앉아서도 이 세상을, 아니 이 우주를 사색할 수 있는 겁니다. 뭐 내가 딱히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요. 나도 집 안에서 아무도 없으면 턱을 앞발 사이에도 묻고 뭔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 나는 무엇인지, 내가 존재하는 것이 환상이 아니고 진실로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남기는 것은 없는지, 아니면 어딘가 나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것인지…. 물론 내가 이런 고급의 상상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나의 견생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로서 진실되게 주인을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인 이 집을 외부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나의 일조를 하면 내 견생은 보람 있는 것이니까, 뭐 아주 그럴 듯한 건사하고 차원 높은 명제에 대해 회의하고 궁구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나의 견생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단순합니다. 주인이 주는 밥을 맛있게 열심히 먹고 필요한 때마다 적절한 배설을 하면서 나는 주인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 보답으로 주인님은 나를 사랑해주니까요. 그것보다 견생에 있어서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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