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Sep 20.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4

  사실 나는 남자 주인한테 미안한 마음이 가끔 들 때가 있어요. 나 아이코와 삐꾸는 분명히 이 집에 얹혀사는 신세입니다. 그렇다면 저쪽이 주인이고 우리가 종이든가 아니면 저쪽이 종이고 우리가 주인이어야 하는 게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니냐는 말이죠. 따지고 보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딱히 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주인은 나와 삐꾸집에 가서 밥상부터 채립니다. 밥을 주고 나서는 혹시 물이 떨어졌는가 하고 체크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고요. 주인도 인내심이 엔간히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삐꾸하고 나의 오줌과 똥을 치울 때는 입속으로 투덜거리기는 하데요. 우리는 거기에 대해 왜 불평하냐고 질책을 할 입장은 아니니까 그저 귓전으로 듣고 못 들은 척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걸 아니까 못 본 척하든지 딴전을 피웁니다. 특히 삐꾸의 집에 가면 응고형 모래 위에 얹혀 있는 똥을 조그만 삽으로 떠서 화장실에 버립니다. 오줌은 모래에 응고가 되어 덩어리가 되니 따로 모아 두었다가 양이 많아지면 수거하여 쓰레기로 버립니다. 나야 똥이나 오줌이 삐꾸에 비하면 얼마 안 되니까 별로 투덜거리지는 않지만 삐꾸한테 묻혀서 같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경우는 있습니다. 나는 모래 대신에 패드에 오줌을 누는데 어쩌다가 실수하여 패드에 안 누고 마루에 흘리는 때는 난리가 납니다. “야, 내가 이놈들의 종인지 저놈들이 내 종인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이런 기세면 나의 엉덩이를 뻥 차서 내가 깨갱거려야 그림이 옳게 되는 거지만 그래도 교양이 있는 분인지라 그런 무식한 짓은 안 하더라고요. 


  내가 생각하기도 이상하기는 합니다. 왜 나 같은 몰티즈나―고양이 족보는 모르겠지만―하여튼 덩치 하나는 만만치 않은 그 고양이를 데리고 같이 사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들이 무슨 특별히 동물에 대해 박애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수중에 있는 동물 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밖으로 내쫓아 우리들 보고 각자도생하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없습디다. 물론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 모릅니다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들에게도 무언가 이득이 있으니까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매일 종노릇(?)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은 세상 이치가 다 같이 통하는 것이니까 머리를 그렇게 안 굴려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야 선천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니까 기회만 있으면 꼬리를 흔들고 그들이 좋아하도록 애교를 부리고 재롱을 떠니까 그 맛에 그런 노역을 한다고 치지만 내가 봐도 삐꾸 걔는 왜 그렇게 알뜰살뜰 돌보아 주는지 같은 동물 입장에서도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걔는 도무지 살가운 구석이 없어요. 주인이 가까이 가서 친한 척해도 냐옹 하고는 홱 하고 돌아서니 누가 자기를 좋아하겠어요. 근데 걔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지 자기가 무슨 공주과나 되는지 고개를 쳐올리고 앙큼을 떠는 데는 내가 옆에서 봐도 정이 안 가더라고요. 한데 주인도 무언가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삐꾸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모가지도 간지러 주고 등을 훝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딘가 겁먹은 표정이 역력하기는 해요. 걔가 좋다고 갸르릉거려도 같이 흥겹다고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발톱을 세우고 확 긁어버릴까 봐 경계를 하더라고요. 거기 비하면 나는 완전히 상전이지요. 조그만 눈짓을 해도 뛰어가서 발라당 누워 버리면 주인이 사족을 못 쓰고 나를 얼르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아마도 주인은 이런 맛에 나를 그렇게 주인 대접을 해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