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진 풍경'
명석 초등학교 뒤에서 시작하여 광제산 봉수대까지의 10km를 걷고 싶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아내가 차로 데려다 주었다. 7월 20일 토요일 1시 37분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처음 시작하는 산등성이가 조금 가파르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귓전에 과장되어 들린다. 이런 ‘조시’라면 어떻게 끝까지 주파를 하지, 하는 걱정도 든다. 조금 더 올라가니 갑자기 매미소리가 내 귓구멍에다 드릴을 가지고 뚫는지 이쪽 귀에서 다른 쪽으로 관통한다. 이제는 거의 보지도 못한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내 앞을 보란 듯이 가로지고 날아간다. 풀벌레가 풀숲 안에서 옛날 보물찾기 때 숨겨놓았던 보물처럼 숨어서 소리를 지른다. 소나무가 길가에 마른 몸을 비틀면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에서 나의 앞을 펄쩍 뛰는 개구리를 보니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근처에는 물이라고는 없는데 어떻게 이런 곳에 출몰하는지 이상하게 보였다.
쉼터에 도착하니 2시 13분이었다. 2.5km 지점이다. 체육 시설이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열이 달아올랐으나 누구 하나 기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고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누군가가 와서 깨워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황토 흙 사이로 소나무의 까만 뿌리가 보였다가는 흙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소나무의 내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에게 자신의 고민을 보이지 않으려고 감추었던 뿌리의 강인함과 비틀어짐을 들켜버린 소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뾱뾱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새가 날아가고 나무 줄기에 평행으로 타고 있는 딱따구리 같은 새가 보였다. 지나가면서 흘낏 쳐다보고 말았다. 나는 나의 할 일이 있는 것이고 이 뜨거운 오후에 그 새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각자의 생명이 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런 시점에서 만났지만 서로에게 ‘바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야 하리라.
멀리서 나무 숲의 하늘에 닿은 이파리들이 한쪽으로 몰려온다. 지난 여름 두곡 월포에서 보았던 파도 소리를 여기서 다시 들었다. 파도가 한쪽부터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멀리서 흰 구름이 두툼하게 자리잡고 이쪽을 내려다 보았다. 코발트 색 하늘이 배경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소나무의 잎새의 가시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가자 정적이 더 꽉차서 내가 그 속을 지나가는 힘에 의해 정적이 길을 여는 것이었다.
정자에 2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그늘 속에서 서늘함을 느끼면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적셨다. 또 다시 나뭇잎 위로 쏟아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번에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려오는 기차소리 같았다. 때 아닌 모기 한 마리가 성가시게 나의 팔을 물었다. 손을 내리치자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4km 지점에 있는 관지 갈림길에서 잠시 쉬면서 갑자기 자신을 둘러보았다. 처음 입구에서 만났던 부부는 어느 사이인가 딴길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산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지금 이 산에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처럼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도 생명을 가지고 있고 여기 있는 나무와 새와 나비와 파리와 풀과… 모든 것이 다 생명을 가진 것은 공통의 모습이다. 여기에 누가 잘나고 못나고 있을까? 다 하나의 피조물인 것을.
한참을 걷다 보니 길이 자주 없어졌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최근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길에 나뭇가지가 널려 있거나 풀이 자라 들어와서 길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작은 무덤을 만나서 길을 찾았다. 조금 가니 그럴듯한 석조물로 무덤을 만들었고 화강암으로 비석도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동네가 나왔다. 이 길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내려왔던 길을 도로 올라갔다. 누군가가 나무 줄기에 붉은 비닐 끈을 묶어서 길을 안내 해두었다. 그 표지를 따라가다가 한참을 지나니 이제 온전한 길들이 앞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죽은 솔방울들이 길에 널려 있는 것이 곤충이 죽은 것 같았다. 여기 저기 하얗고 노란 독버섯이 우산 모양을 하면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건드리니 툭 모가지가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 5km 지점에 도달했다. 4시 4분이다. 길을 잃어서 족히 3,40분을 헛수고를 하였다. 내 인생에서도 길을 잃고 헤멘적이 있을까? 오랜만에 보는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앞을 지나간다. 잠자리는 언제나 나에게는 추억의 징표이다. 어릴 때 거미줄을 둥그런 철사에 쳐가지고는 잠자리를 잡던 기억이 살아나면서 내 마음에 아득한 곳으로 인도하는 표지와 같다. 찌릇찌릇 하는 새 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이미 몸은 땀으로 젖어버렸고 물도 많이 마셨다. 배낭을 열어서 오이를 꺼내서 입 속에 넣고 씹었다. 오이 향기와 함께 저작하는 그 힘으로 오이가 입 속에서 부서진다. 갈증 나는 입 속에서 시원한 단물을 주고 목을 타고 넘어 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색깔은 온통 초록이다. 이 속에서는 초록이 가장 기본이 된다.
4시 30분이 되었다. 6km 지점이라고 팻말이 가리킨다. 갑자기 푸드덕 하더니 커다란 산비들기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라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랐다. 길이 이제부터는 황토 흙이 별로 없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돌들이 생경하게 드러나 있다. 뜬금없이 저 날카롭고 무거운 돌들이 마음으로 치면 죄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토길이란 사람이 인격이 성숙한 것이고 기독교적으로 말한다면 성화가 된 사람의 모습이지만 문제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흙 속에는 본능의 돌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죄의 무거움에서 자유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멀리서 다시 파도 소리가 나무들의 잎새에 들이붓는 소리가 난다.
스파랜드 갈림길이란 팻말이 나왔다. 6.5km 되는 지점이고 시간은 4시 55분이었다. 봉수대까지 3.5km가 남았는데 해가 서산에 있을 때까지는 갈 수 있으나 하산할 때 잘못하면 해가 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여기서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 이 길이 초행이어서 모든 게 긴장 속에서 있었다. 아무리 걸어가면서 보아도 내려가는 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가다가 보니 나비가 죽어서 날개만이 땅위에서 굴러다녔다. 그 옆으로 개미가 지나갔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세상의 삶을 눈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나 이 산속의 일이나 근본은 같은 것이다.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걷다 보니 멀리서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8km 지점이고 시간이 5시 31분이었다. 덕곡 마을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화살표가 있었다. 가는데 2km 걸린다고 적혀있었다. 여기서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방향을 틀었다. 조금 내려오니 산이 해를 등지고 있어서 금방 숲속은 어둑하여졌다. 어둠이 내 뒤를 쫓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스스한 기분이었다. 여기는 아무도 없는 곳이니 기합을 한번 걸고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13년 동안 지르는 소리를 한 셈이 아닌가. 잡고 있는 스틱을 죽도로 삼고 아랫배를 팽팽히 불어올리고 ‘이야압’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내가 놀랐다. 소리의 밀도가 돌처럼 단단하였다. 얼굴에 거미줄이 걸린다. 손으로 씻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돌무덤이 보였다. 그것은 인가가 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니 반가웠다. 나무들 사이로 파란 지붕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5시 57분이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이 희미하게 다가왔다. 귀를 기울여야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꽥꽥하는 오리 소리 같은 소리를 지르는 새소리가 들렸다. 개망초가 무더기롤 피어 있었다. 개망초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굴이 없는 꽃이다. 가까이 가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꽃처럼 느껴진다. 관목 숲 속에서 저녁이 되어 다 모인 새들이 쉴 새없이 지저귄다. 가지고 있는 스틱으로 건드려도 별로 반응이 없이 자기들 식으로 울고 있다.
하동 강씨 집안 큰 무덤을 돌아서 인가에 가까이 가니 시내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버스가 있느냐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몇 시에 떠나느냐고 하니 지금 몇 신가 되물었다. 6시 넘었다고 하니 7시 20분차가 있다고 한다. 여기가 덕곡 마을이라고 한다. 인가는 몇 채 되어 보이지 않는다. 도로를 찾아 나섰다. 광제원이라고 언뜻 보면 일본식 건물 같은 데 앞의 광고판의 그늘에 앉았다. 젖은 배낭을 내리고 모자를 벗고 마실 물을 찾았으나 가지고 온 물은 다 먹고 없었다. 눈에 수퍼도 보이지 않았다. 참는 수밖에 없었다. 수로의 턱 같은 데를 걸터 앉아 다리를 펴보았다. 아직 특별히 아픈 부분은 없어 보였다. 옆의 논을 보니 물 위에 개구리밥이 조그만 원형으로 가득했었다. 바람이 부니 나락의 잎새들이 차례로 누우면서 일어났다.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다. 손짓을 하고 소리 없는 환호를 지르는 것이라고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본 회색빛을 띈 잠자리 한 마리가 따뜻한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앉았다. 내가 다가가도 웬만해서는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의 편안한 쉼을 방해하는 것 같아 내가 도망가고 말았다.
길 건너 농가의 담벼락에 참나리가 큰 키 위에 꽃을 피웠다. 분홍도 아니고 누런 색도 아닌 능소화가 줄줄이 어깨를 맞대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배만 하얀 까만 고양이가 이 풍경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웬 짐승이 나타났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냐옹 소리를 지른다. 꼭 자기가 여기 터줏대감이라는 걸 과시하는 것 같다. 내 앞에 조그만 동산은 검은 초록으로 뒤덮여 있는데 위를 흘낏 올려다보니 바랜 흰색의 반달이 걸려 있다. 달의 이니셜은 내게는 언제나 특별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또 다시 떠오르는 달이겠지. 솜사탕만한 구름이 옆에 떠 있더니 순식간에 비행접시처럼 커지면서 금방이라도 이곳을 달려오려고 한다. 앉아 있는 수로 아래를 보니 엄지손가락만한 개구리가 풀쩍 뛰다가 나를 눈치 챘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위를 거미는 거미줄을 쳐놓고 세월아 하고 기다리고 있다. 나의 존재가 여기 삽입되든 안 되든 그들은 나와는 상관없이 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적막한 풍경에 갑자기 찍찍하는 새소리가 유리창을 긋듯 그으며 지나간다.
버스가 내 앞에 섰다. 7시 20분이다. 나는 열린 버스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없어진 풍경만 내 뒤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세상을 하직할 때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