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비봉산이 되다
김명서 시집
시인의 말
진주에 1985년 10월 말에 와서 틈만 나면 집 근처에 있는
비봉산(飛鳳山)엘 올라갔습니다. 아내와 함께 걸은 세월이
40년은 된 것 같습니다. 비봉산 이름은 고원(高遠)했으나
142미터의 조촐한 산이었습니다. 청운(靑雲)의 꿈은 사라지고
조그만 오르막과 내리막, 벚꽃 길, 직박구리, 뻐꾸기, 봄까치꽃,
냉이, 봄맞이, 꽃마리, 뽀리뱅이, 제비꽃, 소리쟁이, 개망초,
엉겅퀴…, 그 속에 평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저에게는 지관타좌(只管打坐)였습니다. 저의 길을 걸어야
겠습니다. 거기서 저를 찾는 것입니다.
2026년 정초
김명서
차례
1부 걸으면 편안한 비봉산
1 봄비는 사라진다
2 백련사 동백꽃
3 매화
4 비봉산에 오르며 1
5 비봉산에 오르며 2
6 비봉산에 오르며 3
7 비봉산에 오르며 4
8 비봉산에 오르며 5
9 비봉산에 오르며 6
10 비봉산에 오르며 7
11 비봉산에 오르며 8
12 비봉산에 오르며 9
13 비봉산에 오르며 10
14 비봉산에 오르며 11
15 비봉산에 오르며 12
16 비봉산에 오르며 13
17 비봉산에 오르며 14
18 비봉산에 오르며 15
19 비봉산에 오르며 16
20 바위 위에 가부좌한 소나무 한그루
21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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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낡고 반짝이는 것들
1 피사의 사탑
2 신호등 앞에서
3 밤기차
4 내 마음
5 수평선
6 발바닥
7 추억의 청계천
8 삼십촉 알전구
9 섬 1
10 섬 2
11 돌 속의 달은 관념이 되다
12 4B 연필
13 눈물
14 멜랑콜리 오텀
14 유채꽃밭
15 재채기하는 목련
16 시 나부랭이
17 강구 앞바다
18 임진강을 건너다
19 오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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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잠시 이승에 들렀다가
1 ‘그리운 사람 송우’
2 그대 남긴 것
3 ‘움직이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
4 묘비명
5 임종하는 난파선
6 부재중
7 깊은 병
8 기억의 빙하
9 세우(細雨)
10 화가 안재덕
11 멸치 똥은 똥이 아니다
12 풀잎에 맺힌 이슬
13 데카르트가 있는 풍경
14 텔레비전의 일생
15 휘파람새
16 봄비는 달빛이다
17 하산下山
18 수족관의 감성돔
19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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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사람과 사람 사이
1 해운대에서
2 풀꽃이 동병상련(同病相憐)
3 그리운 숭늉
4 보통 사람
5 부엉이
6 종이 피아노
7 브람스에게
8 벼룩나물
9 처서處暑 지나서
10 새벽에
11 술 마시는 일
12 1950년대 6
13 구두닦기
14 렛 잇 비
15 시니피앙 놀이 혹은 허깨비 놀이
16 숨어사는 즐거움
17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18 보도블럭의 하루
19 심해어深海魚
20 시는 없다
해설
구도의 길에서 만난 진리의 세계, 시詩
박종현(시인)
1부 걸으면 편안한 비봉산
소리 없는 는개의 흐느낌이다 봄비는 낙화를 귀속에서 듣고
있다 벚꽃은 낙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중얼거리면서 구름에게
엽서를 쓰고 봇짐을 쌌다 사라지려고, 잿빛 하늘을 쳐다보고
말라간다 벌써 지쳐서 비틀거린다 가다가 풀잎에게 매달리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깊이 안고 간다 지나간 자국에 남아
있는 허전한 마음, 인연을 끊으려고 자신의 몸을 다 녹여버리고
지리산 물소리에 젖어 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카바티나
(cavatina)’*의 현이 지나가는 소리에 봄비의 슬픔이 떨고 있다
안개가 묻어 있다 지나고 난 뒤는 기억은 끊어 버린다 그리워
하는 것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치근거리는 바람을 달랜다
아스팔트 위에서 갈 곳을 몰라서 어정대는 고양이를 품에 안는다
꽃마리의 맑은 영혼에 두 눈을 감는다 기찻길 옆에서 지나가는
기적소리를 목놓아 울다가 난데없는 박인수의 ‘봄비’를 보고
낄낄거리고 웃었다 유채꽃의 노람을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다가
노랗게 되었다 꿈에 산티아고 길 흙냄새를 맡고 왔다 걸을수록
아랫도리에 힘이 빠져 머리에 이고 있는 꿈을 다 잃어 버렸다
봄비가 가야 할 곳은 어둠의 뿌리 속이다 사라지면 지하수로
흐르다가 너에게 닿을 것이다
*카바티나: 속도가 느린 기악곡을 말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5악장이다. 우주선 보이저호가 싣고 간 일곱 곡 중에 카
바티나가 있다.
오늘도
처와 함께
걷습니다
도란도란
도란도란
저승길도
이렇게
둘이서
가없이
시는 없다
마종기도 시와 시인은 미국에 없다고
허수경이도 유럽에는 시와 시인은 이미 고고학이라고
일본도 하이쿠는 있어도 현대시는 별 볼 일 없다고 하는데
한국은 시간이 거꾸로 가나
시와 시인은 21세기는 운문의 시대라고 하니
속는 셈 치고
나는 시를 쓴다
해설
구도의 길에서 만난 진리의 세계, 시(詩)
박종현(시인)
진리의 세계인 ‘소’를 찾아 떠나는 길
불교에서 수행자가 정진을 통해 본성(진리)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심우(尋牛)라고 하는데, ‘소를 찾다’는 말에서 소는 진리나 도를 뜻한다. 사찰 벽화에 그려놓은 심우도를 보면, 소를 찾아 떠나는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뒤, 소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여기저기 헤매다 드디어 소를 찾아 기른다. 소를 기르며 수행정진을 통해 마침내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인 ‘참나’를 깨닫는 과정을 10장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심우도다.
김명서 시인은 ‘참나’를 찾아 심우(尋牛) 하는 공간으로 비봉산을 선택했다. 비봉산의 실제 높이는 138.5m다. 그러나 물리적인 높이와는 달리 형이상학적인 높이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곳으로 시인은 참나인 소를 찾아 떠난다. 종교를 떠나 모든 인간이 닦아야 할 수행의 과정이 ‘오름’이다. ‘오름’은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오름의 끝에는 하늘이 있기 때문에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름의 대상이 지위나 재산, 권력처럼 형이하학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 즉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만나기 위한 형이상학적 오름이라면 그 오름만큼 거룩한 오름은 없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진언인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의 마지막 구절인 ‘모지 사바하’처럼 몸은 비록 차안(此岸)의 세계에 있지만 그 마음은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 참나의 세계에 닿아 희열과 고요의 경지에 이르는 심리적 천국을 만나기를 시인은 갈망하고 있다. 물론 수행의 과정은 길고 ‘피안’에 닿는 순간은 매우 짧다. 그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고 높은가가 더 소중하다. 그래서 그 피안의 세계에 닿기 위한 시적 수행 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산인 비봉산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돌멩이를 쌓기도 하고
가끔 합장하기도 하며 지나는 앞에
늙은 느티나무 하나 운명처럼 서 있다
허리 반쯤 잘려나간 곳에
진흙과 시멘트를 섞어 발라 놓았다
저마다 저런 상채기를 안고도
봄이면 푸른 잎 틔우는
수많은 느티나무들
수많은 사람들
-시 <비봉산을 오르며 4> 전문-
한평생 ‘쥐기 연습’<비봉산에 오르며9>이었던 삶이 비봉산을 오르는 길목에 운명처럼 서 있는 ‘허리 반쯤 잘려나간 곳에/진흙과 시멘트를 섞어 발라 놓’은 늙은 느티나무 앞을 지나면서 돌을 쌓기도 하고 비손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나무와 사람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느티나무가 봄을 맞아 ‘푸른 잎을 틔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마다 저런 상채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재생과 치유의 삶을 펼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김명서 시인에게 있어 비봉산을 오르는 행위는 ‘쥐기 연습’에서 ‘틔우기 수행’을 익히는 일임을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묵시적으로 밝힌다. 시인의 구도(求道) 즉 참나인 ‘소’를 찾아 떠나는 수행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언제나
푸른 나무와 숲이
가슴을 열고 있다
산속의 산소가 방울져 오른다
어제의 짐을 내려놓고
무거운 제 그림자를 밟고 오른다
숨찬 삶의 호흡을 고르기 위해
앉은 등나무 빈터
어느덧
비봉산 내려오는 나의 몸은
물기 오른 나무
-시 <비봉산에 오르며 13> 전문-
‘어제의 짐을 내려놓고/무거운 제 그림자를 밟고 오르’는 걸음이 남긴 발자국마다 고인 참나인 ‘소’, 즉 시를 찾으려 애썼을 것이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가파른 길을 오르며 땀을 흘리다 ‘숨찬 삶의 호흡을 고르기 위해/앉은 등나무 빈터’에서 만난 자신의 모습에서 잠깐이나마 참나인 ‘소’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어느덧/비봉산 내려오는 나의 몸은/물기 오른 나무’가 되어 참나를 만나러 가기 위한 구도자의 모습인 ‘소’를 찾아 떠날 준비를 완료한 수행자로 변모해 있었다. 시인은 ‘돈오돈수(頓悟頓修)로 나뒹굴어진 성철스님의 최잔고목(摧殘枯木, 썩고 부러진 마른 나무막대기)’<비봉산에 오르며 2>의 모습으로 참나의 세계이자, 진리의 세계인 ‘소’, 즉 시를 찾아 수행의 길을 나선다.
소를 찾아 떠난 구도의 길 하나: 몰입성
김명서 시인이 찾아 떠난 소, 즉 구도는 무엇일까? ‘참나’를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 참나의 다른 모습이 시(詩)다. 시인은 모든 감각과 온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서 구도적 행위인 몰입을 통해 참나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김명서 시인의 시창작 메커니즘 중 그 첫 번째 비법인 사물에 대한 ‘몰입성’을 통해 ‘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시로 구현해 냈던 것이다.
모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
한순간에는 정지되어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은 살아 있지 않다
이 세상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거울 속 부피 없는 유령처럼
과거에도 살아 있고
미래에도 살아 있고
현재는 죽어 있다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자아가 웃고 울고
분노한다 한평생
의미 없는 대사를 새처럼 뱉어내다가
죽음이 죽은 다음에야
살아왔던 흔적이 보인다
흔적마저 시간이 비로 쓸어버린다
-시 <움직이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 전문-
‘제논의 역설’이란 고대 그리스 엘리아의 제논이 ‘만물은 흐른다’는 기존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설을 말한다. 제논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만물은 언제나 정지해 있다.’이다. 주변에 움직이는 물체를 두고 ‘움직인다’고 말하면 제논은 ‘눈의 착각’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쩌면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길 수 있으나, 움직임을 지극히 짧은 순간으로 나누면 한순간 한순간이 정지된 상태임이 사실인 것을 보면 제논의 역설은 고정관념을 깨뜨린 매우 유용한 학설임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제논의 주장과 같은 객관적 사고는 김명서 시인의 시에서도 곳곳에 드러난다. 시의 바탕에 논리와 철학을 깔아놓은 까닭에 시가 깊어지고 시 이면(裏面)에 새로운 비의(秘義)가 담겨 있다.
‘모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살아 있는 생명이/한순간에는 정지되어 있다/모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살아 있는 생명이/한순간에는 정지되어 있다’ 그리고 ‘죽음이 죽은 다음에야/살아왔던 흔적이 보인다/흔적마저 시간이 비로 쓸어버린다’
시를 읽으면서 잠깐, 때론 한참 동안 생각이 머물렀다가 시 속에 숨은 객관화된 논리를 떠올리며 쾌재를 울릴 때가 있다. 물론 이때는 정서적 감동보다는 지적인 쾌감을 느낀다. 오늘날 시의 흐름이 정서적 감동보다 지적인 쾌감에 주안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김명서 시인 또한 지적인 쾌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 속에 철학적 깊이를 더해놓았다는 점이 언어적 감각을 우선시하는 시들과는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시 <움직이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에 시적 깊이와 감동을 담아 놓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바로 몰입성이다. 하나의 대상(현상, 상황)만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깊이 천착(穿鑿)하고 궁구(窮究)해서 자신만의 시적 의미인 새로운 세계를 찾아 표현한 점이 예사롭지 않다. 그 대상이 구체적인 사물이든 관념이든 아니면 상상의 세계든 ‘몰입성’이라는 시 창작을 위한 구도의 비법이 시의 깊이와 무게를 더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수석(壽石)이 한 점 책상 위에서 초연하다 까맣게
응고된 시간, 희로애락을 다 덮어버렸다 동그란 것은
무한하다 수석대에 올라간 돌이 지상에서 고별한 것이다
타원형 수석이 생의 결산, 돋을새김의 노란 달이 중천
에서 숨결이 아득하다 보일락 말락 대각선으로 내려가고
있는 구름이 화룡정점(畵龍點睛), 천리 먼 길 아래 구름이
걷는 것이 삶이었다 멀리서 흐르는 산천의 소리는 돌 속에
들어와 침묵이 되었다 바람 소리의 정적(靜寂)이 단단하다
관념이 되어버린 달, 그리움이 돌이 되었다
-시 <돌 속의 달은 관념이 되다> 전문-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관념과 정서의 세계를 새겨 놓은 경우엔 지적인 쾌감과 함께 정서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묘미가 있다. 시 <돌 속의 달은 관념이 되다>가 지적인 쾌감과 정서적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돋을새김의 노란 달이 박힌 수석을 피사체로 삼아 쓴 이 시는 대부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표현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읽는 이들에겐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관념 세계를 뇌리에 남게 한다. ‘응고된 시간’, ‘생의 결산’, ‘돌 속에 들어온 침묵과 정적’이란 관념과 중천에 뜬 달이 새겨진 수석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온전한 삶의 세계 하나를 건져 올려놓고 있다. 시가 담고 있는 아름다운 덕목 중의 하나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시 <돌 속의 달은 관념이 되다>는 정서적 감동뿐만 아니라 지적인 쾌감까지 건네주었다는 점에서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또 다른 관념의 세계를 만들어 낸 절묘한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돌 속의 달은 관념이 되다>는 정적인 이미지가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달이 새겨진 수석’인 하나의 소재에만 시적 화자의 앵글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몰입성이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 시가 소재주의에 빠져 사물의 내면세계를 길어내는 데 방해가 된다. 시인은 하나의 소재에 깊이 천착해서 그 내면에 잠재한 관념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길어올린 점이 매우 돋보인다. 하나의 대상을 면밀히 바라보면서 대상의 이면 세계를 발견해 시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현학적인 표현 없이 쉽고 편안한 언어로 표현해 놓았다는 점 또한 시인의 시력(詩歷)과 관록을 가늠케 한다.
어느 여름날
제주도의 서귀포 해변
풍경의 액자를 보고 있었다
바다 위에 부유하는 까만 허벅지,
해녀는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조그만 존재의 파문이 인다
그리고 바다는 정물처럼 있다
한순간 문을 열고 들어간 것 뿐인데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되는,
바다 위에는 햇살이 빛나고
바다 밑에는 검푸른 침묵이 웅크리고 있다
두 개의 현실을 가르는 한 줌의 흐름
어느 쪽이 더 현실인가
‘나는 행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해녀들의 자맥질 속에서
데카르트의 명제가 하얀 포말로 부서지고 있었다
-시 <데카르트가 있는 풍경> 전문-
시의 깊이와 무게는 몰입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데카르트가 있는 풍경>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의 서귀포 해변/풍경’이 담긴 액자에서 ‘바다 위에 부유하는 까만 허벅지’인 해녀의 자맥질을 찾아낸다. ‘바다 위에는 햇살이 빛나’고, ‘바다 밑에는 검푸른 침묵이 웅크리고 있’는 두 개의 현실과 그 ‘현실을 가르는 한 줌의 흐름’ 중 어느 것이 정녕 현상으로서의 존재일까? 결국 시인은 ‘해녀들의 자맥질’에서 ‘나는 행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대명제를 발견한다. 이 대명제를 찾아냈을 때, 시인은 유레카를 외쳤을 것이다. 이렇게 시적인 구도(求道)를 이루는 순간, 시인의 뇌에는 다이돌핀이 충만해진다. 사물 속으로 깊이 천착하여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존재의 세계와 그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몰입성’이다. 이 ‘몰입성’이라는 시적 구도의 길이 깊이와 무게를 갖춘 시를 만드는 비결이었다. 김명서 시인은 그 비결을 잘 익힌 시인이다.
소를 찾아 떠난 구도의 길 둘: 진실성과 솔직성
필자의 아들이 너덧 살이었을 때,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아들과 함께 산책을 갔다. 때마침 길가 오리나무에서 유지매미가 울고 있었다. 아들내미에게 매미가 뭐라며 우느냐고 물었더니 ‘지엑스 지엑스’하며 운다고 대답을 했다. 필자가 기다린 답은 ‘매애앰 매애앰’이었는데, 아들의 엉뚱한 답을 듣고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그 대답을 머릿속에 새긴 채 유지매미의 울음을 들어 보았다. 그 울음소리는 분명 ‘매애앰 매애앰’이 아니라 ‘지엑스 지엑스’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유지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은 아들은 아직 매미울음에 대해 학습한 바가 없는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 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대상을 보고 들은 바 그대로의 인식에는 순수함과 솔직함이 담겨 있다. 학습된 시각과 청각에 의해 사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에 의해 보고 들은 바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순수하고 솔직한 표현이 곧 진실성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김명서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진실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언어의 외면적 스킬을 중시한 표현은 독자들에게 지적인 쾌감을 동반하게 하지만 솔직함과 순수함을 담은 내면적 진실성은 읽는 이들에게 정서적 감동을 함께 건넨다. 김명서 시인 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언어적 스킬보다 삶의 진실성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내 한돌 때에는
달빛마저 무섭던 겨울
전쟁은 돌개바람으로 불고
어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앉은뱅이처럼 기어 내려왔다
밤이면 산을 타고 낮이면 두더지처럼 숨어
임진강에 닿았다
두고 온 부모님 얼굴을 시퍼런 강에 묻고
발에 새끼를 동여매고 언 강을 건넜다
쌕쌕이 소리가 심장을 가르고 지나가면
자지러지는 나를 업고
남쪽으로 걷고 걸어서
서대문구 영천동 산꼭대기에서
피난살이를 시작하였다
조그만 항구에 정박한 초라한 난파선의
희망찬 출발이었다
-시 <임진강을 건너다> 전문-
한때, 북에서 내려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것은 한평생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큰 아픔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았다면 월남한 사실을 남에게 드러내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명서 시인은 ‘밤이면 산을 타고 낮이면 두더지처럼 숨어/임진강에 닿’은 사실과 ‘발에 새끼를 동여매고 언 강을 건너’와 ‘서대문구 영천동 산꼭대기에서/피난살이를 시작’한 사정을 가감 없이 발로(發露)하는 모습에서 시인의 솔직함과 진실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솔직함이 독자들에게 신뢰와 함께 감동을 건넨다.
갱상도 문디들이 사는 동네로 피난 와서
갱상도 사투리에 자갈돌로 튀겨나가는
함경도 사투리가 부끄러워
언제나 당신의 그림자 밟고 숨어다녔습니다
혼자 되시어 성긴 눈발로 다니시고
종이 피아노로 치시던 찬송가
닳아진 외로움 모른 체하고
알토란 처자식만 부둥켜안고 살았습니다
제삿날 돌아와 식구들이 모여 먹는
무덤처럼 솟아오른 하얀 고봉
뺀질뺀질한 밥알들
잘난 척하는 날 닮아있습니다
-시 <그리운 숭늉> 일부분-
시 <그리운 숭늉> 또한 6,25 전쟁 이후의 어려웠던 시대상과 가정사 등 시대의 그늘진 모습에 대한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의 그늘진 과거와 들추고 싶지 않은 모습을 솔직하고 진실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신뢰와 함께 긴 울림을 전해 주는 시다.
개새끼가 개새끼를 개새끼라 부르니
개새끼가 뒤돌아보며 싱긋 웃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개새끼는 원래 예쁜 것인데
개새끼라고 하니
얼굴이 양은 냄비처럼 찌그러진다
언제나 개를 개새끼같이 여긴다 개새끼는
살면서 눈 부릅뜨고 살필 것도 없다
개새끼와 개새끼를 구별하려고
개새끼를 많이 많이 귀여워해 주자
어차피 개판 세상이니까
-시 <시니피앙 놀이 혹은 허깨비 놀이> 전문-
시에서 진실성이라고 하면 순수함과 함께 거짓이 없는 솔직함, 부조리와 모순으로 찬 사회를 항해 바른 목소리를 내거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풍자 등이 시적 진실성과 관련이 있다. 개의 새끼에게 개새끼라고 부르면 그것은 욕이 되지 않는다. 개의 새끼를 개새끼라고 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의 새끼에게 쓰는 호칭을 사람에게 쓰면 그것은 분명 욕이 된다. 사람을 개와 같은 존재로 비하했기 때문이다. 개새끼라고 불렀을 때, ‘뒤돌아보며 싱긋 웃’는 개새끼가 있고 ‘얼굴이 양은 냄비처럼 찌그러지’는 개새끼가 있다. ‘개새끼와 개새끼를 구별하려고/개새끼를 많이 많이 귀여워해 주자’라고 한 표현에 담긴 다소 모호했던 의미의 개새끼는 바로 뒤에 나오는 ‘어차피 개판 세상’이란 말에서 개새끼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풍자적 표현을 통해 개판인 세상 즉 부조리와 모순에 찬 사회를 항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진실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나는 교회에 나갑니다 목사님이 술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에 술이란 술자는 모두 찾아 봅니다 변명거리 찾는 아이처럼, 술이 넥타이를 풀어 놓습니다 내 몸의 빗장을 살며시 열어놓습니다 머리에서 초자아가 나갑니다 자아까지 나가는 일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소싯적엔 왝왝거리면서 어깃장도 많이 놓았습니다 오늘은 술 먹지 말라는 목사님 말씀을 아무래도 어겨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선명했던 풍경이 유화(油畫)로 변했습니다 사물의 풍경을 비틀어서 꿈으로 만들어버린 고흐의 그림 속을 걸어야겠습니다
-시 <술 마시는 일> 전문-
교회에 다니는 시인은 목사님의 말씀을 어기고 술을 마신 사실을 솔직히 밝힌 모습에서 시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술을 마신 행위를 종교적인 파계로 볼 것이 아니라 ‘사물의 풍경을 비틀어서 꿈으로 만들어버린 고흐의 그림 속을 걸어’가고자 하는 예술적, 또는 문학적 성취를 위한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목사님께서도 시인의 음주 행위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창조를 위한 행위였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사님 말씀을 어긴 자신의 행위를 솔직히 드러내놓은 김명서 시인의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시 나부랭이>에서도 ‘오십 년 넘게 아버지 몰래 아직도 허공에다 긁적거리고 있다’며 아버지의 당부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시를 대하는 시인의 진실성과 솔직성은 시를 읽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뿐만 아니라, 시인과 독자 사이의 격의를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소를 찾아 떠난 구도의 길 셋: 현미경과 내시경 기법
<하나의 장면과 사물들 속에서 섬세한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미경 기법이 필요하다. 현미경은 외연을 섬세하게, 부분을 확장해서 정밀하게 읽는 방법이다. 이별, 죽음, 연민, 공포, 소외, 허탈, 증오 등의 정서가 있다고 치자. 그럴 때, 그 추상적 정서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장면과 상황은 수만 가지 존재한다. 수만 가지 장면과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만약 하나를 골랐다면 카메라의 줌 기능을 이용해 현상을 가까이 당긴 다음, 최대한 쪼갤 수 있는 데까지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서 관찰한다. 겉 속성을 치밀하게 읽어내는 이것이 현미경 기법이다.
내시경 기법은 쪼개고 쪼갠 현상의 이면에 비의(秘義)처럼 깃든 내적 속성과 내적 정서, 내적 태도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현미경 기법이 동원된 상태에서 직관과 통찰을 통해 현상 안쪽에 서린 개별 의미를 예리하게 간파하는 것이 내시경 기법이다. 주의할 점은 절대 한발 뒤로 물러나서 총체적으로 직관하거나 통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대상물이나 상황에 밀착된 상태에서 직관하고 통찰해야 한다.>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133쪽~134쪽에서 가려뽑음-
김명서 시인은 사물에 대한 섬세한 표현을 위해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을 적용해서 세밀한 묘사를 주로 썼다. 때론 한 편의 시에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을 아울러 적용함으로써 사물의 외연에 대한 정교한 묘사와 함께 사물 내면에 배어있는 비의(秘義)를 표현해 놓은 시들도 있다.
갈모봉 산길은 바위를 하늘로 던졌다
한 발 산등성이에 걸치고 달랑 매달려 있다
바위의 참선이 절벽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
와디(wadi) 같은 마른 수맥을 따라
소나무 애기 뿌리는 걸어들어 왔다
야윈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 위에 가부좌했다
한마음 찾다 보니
그 길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
어둠 속이 이렇게 밝다
바위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빛을 품고
가볍다
바위가 소나무 한 그루,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태우고 있다
-시 <바위 위에 가부좌한 소나무 한그루> 전문-
이 시는 ‘내시경 기법’으로 접근한 전형적인 표현이다. 현미경 기법이 주로 외면묘사에 치중한다면 내시경 기법은 외면의 세계를 내면화하는 표현법 중의 하나다. 이 시는 시적 대상인 소나무를 직관하여 통찰하고 있다. 현미경 기법으로 발견한 ‘야윈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 위에 가부좌’하고 있는 대상을 내시경 기법을 통해 ‘한마음 찾다 보니/그 길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어둠 속이 이렇게 밝다/바위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빛을 품고/가볍다/바위가 소나무 한 그루,/본래면목(本來面目)을 태우고 있다’고 표현해 놓고 있다. 직관과 통찰을 통해 피사체인 ‘소나무’ 내면에 있는 비의를 시 속에 사려놓았다.
현미경 기법으로 현상이나 사물을 표현하는 것보다 내시경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거기엔 순간적으로 발휘되는 직관과 섬세하고 깊은 통찰이 동반되어야 내시경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미경 기법의 과학자적 성향을 지닌 작품보다 내시경 기법의 의학자로서의 성향이 더 적극적으로 발휘된 것은 김명서 시인의 직업적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늘게 뜬 눈 틈 사이로 어둠이 새어 나오고
가슴팍에 갈라져 나온 갈비뼈를
누런 피부가 꽉 붙들고 있다면
아래는 바위에 부딪치는
하얀 거품이 이는 소용돌이,
지업다라고 뱉는 말에
마른 바람이 분다
작은 눈에 밀려드는 출렁이는 물결
숨이 차다
움푹 마른 배가 하현달이 되어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살아온 세월 뒤에 다 남기고
흔들리는 육신은
살이 다 빠진 난파선,
우두커니 서 있다
-시 <임종하는 난파선> 부분-
난파선의 마지막 순간을 매우 세밀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세밀한 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미경 기법으로 접근했다. ‘가슴팍에 갈라져 나온 갈비뼈를/누런 피부가 꽉 붙들고 있다’, ‘움푹 마른 배가 하현달이 되어/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살이 다 빠진 난파선,/우두커니 서 있다’ 등에서 난파선에 대한 표현이 얼마나 정교한가를 읽어낼 수 있다. 항해 중 폭풍우 따위로 인해 배의 일부분 또는 전체가 파손되어 순항 기능을 잃어버린 배를 매우 엄밀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이러한 현미경 기법은 사물의 외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묘사를 통해 시의 분위기나 이미지, 시적 의미 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이 그 매력이다.
노랗게 더 반짝이고 있다 고요 속에 침묵하고 있는
눈, 죽어서 맑은 바닷물이 눈알을 스쳐간다 사람이 더
잘 보인다 뱃속에 간직하고 있는 건 똥이 아니다 그들의
식욕에 항거한 내장의 분노가 검은색으로 굳어져 버렸다
사람들이 나를 우려내는 건 다행히도 평생 혐오해 왔던
육신의 덜큰한 욕망이었다 버려진 똥과 함께 나는 그때
비로소 해탈할 것이다
-시 <멸치 똥은 똥이 아니다> 전문-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다. ‘노랗게 더 반짝이고 있다 고요 속에 침묵하고 있는 눈’, ‘맑은 바닷물이 눈알을 스쳐간다’와 같은 현미경 기법과 ‘뱃속에 간직하고 있는 건 똥이 아니다 그들의 식욕에 항거한 내장의 분노’, ‘사람들이 나를 우려내는 건 다행히도 평생 혐오해 왔던 육신의 덜큰한 욕망이었다 버려진 똥과 함께 나는 그때 비로소 해탈할 것이다’처럼 내시경 기법을 동시에 표현해 놓고 있다. 멸치 똥의 외형적 요소를 바탕으로 삼아 궁극적으로는 멸치 똥이 지닌 시적인 비의인 ‘내장의 분노’와 ‘욕망과 해탈’을 시속에 담아 놓으려고 했다.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이 어우러져 깊이와 무게가 서려 있는 시를 탄생시켰다. 시를 쓸 때의 태도인 몰입성과 시 내용의 진실성 못지않게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 또한 김명서 시인의 시가 시적 구도(求道)인 독창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 일익을 담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도의 세계인 관음의 경지에서 만난 시(詩)
관음(觀音 소리를 보다), 일념으로 소리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그 소리의 끝에 어린 하나의 상(像)을 만나는 순간을 관음이라 한다. 딱새와 직박구리, 뻐꾹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 솔바람 소리 그리고 의곡사 대웅전 추녀의 풍경소리에 빠져 비봉산에 오르다 보면 맑고 고요한 세계와 만나는 순간, 떠오르는 시상을 만나기도 한다. 이처럼 내 안의 소리(시니피에)와 내 밖의 소리(시니피앙)가 줄탁동기(啐啄同機) 하여 시적 영감을 얻는 순간이 관음이다.
김명서 시인은 시 <휘파람새>에서 ‘바람을 밟고/흔적도 없이/너무 무겁게는 말고/떨리는 명주실 한 올 울리는 소리/바람 속으로 바람이 되어/사라지는 휘파람처럼/그렇게 살다 가요’라며 휘파람의 청각적 형상(形象)을 빌려 시인 자신의 관음 세계를 표현해 놓고 있다. 시 창작 구도의 길을 걸어 몰입성, 솔직성과 진실성, 현미경과 내시경 기법이란 시적 수행을 통해 관음(觀音)의 세계에 닿은 시인의 시에는 교회 종소리가 보이고, 절집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보인다. 시가 참 깊고 높다. 소를 만난 김명서 시인은 가장 높은 관음의 산인 비봉산을 하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