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타독이타서(只管打讀而打書)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지하철을 늘 타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만덕으로 갔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기사가 신호등 앞에서 섰습니다. 당연히 붉은 등이었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기사가 앞에서 무얼 꺼내더니 핸들 위에 올려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책이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태어나서 수도 없이 택시를 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기사들은 대부분 차를 몰면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교통방송이라든지, 혹은 트로트 같은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는다든지, 개그맨들이 나오는 만담을 듣는다든지 합니다. 그런 와중에 가끔은 클래식 음악을 틀고 조용히 차를 모는 분도 드물게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택시를 몰면서 독서를 하는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도 진기하기도 해서 어떻게 이렇게 책을 보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는 말까지 첨언을 해서 말입니다. 그분의 말은 신호등 앞에서 무료히 있기가 뭐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마침 오늘 조간신문의 어떤 칼럼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의 리조트에서 오랜동안 종사해온 분에게 한국 사람의 특징이 무어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노 북(no book)" 한국인 여행객이 책을 읽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진주라는 소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대도시 부산에 오게 되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지하철을 탑니다. 타면서 처음으로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광경이 있었습니다. 서 있는 사람도, 앉아 있는 사람도, 나이가 젊은 사람도, 나이가 늙은 사람도 중국에서 말하는 이른바 저두족(低頭族)이 되어 열심히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곁눈질을 해서 보아도 대개는 카톡이라든지, 게임, 혹은 사진 같은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그중에는 스마트 폰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 가운데 우연히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은 보면 그 사람이 희귀족 같아 보였습니다.
저도 독서를 하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만 그게 나이를 먹다 보니 잘 되지 않습니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이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입니다. 2,30분 읽다가 보면 머릿속의 용량이 다 찼는지 눈에 들어오는 활자를 밀어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딴짓을 하고 일종의 포맷을 한 후에 읽던 책을 계속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선심 초심』이라는 책이 기억납니다. 저자인 스즈키 순류(鈴木俊降)가 말한 것 중에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껏 참선이라고 하면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 어떤 화두 혹은 공안에 대해 집중하여 생각하면서 진리 혹은 도에 도달하는 수련이라는 정도로 알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오직 그저 앉아만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지관타좌(只管打坐)라고 하는 말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자세, 결가부좌 혹은 반결가부좌를 하고 단전에 힘을 주어 중심을 밑으로 내리고 머리의 뒤통수로 천정을 쳐받들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의식 현상을 그저 놓아두기만 합니다. 거기서 진리를 터득하면 좋지만 그저 올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것만으로 참선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응용한 것이 지관타독이타서(只管打讀而打書)였습니다. 한문 문법적으로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말하자면 오직 그저 읽고 쓰자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한둘이 텔레비전 보기와 인터넷 하기입니다. 이것을 하다 보면 통제가 안 되어 시간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다 보고 나서는 후회합니다만 그것이 마음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독서의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제가 말한 택시 드라이버의 모습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30분, 한 시간의 시간을 확보한 시간에서만 책을 들려고 하는 습관입니다. 이번에 만난 그 기사가 하는 독서의 모습에서 제가 배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지관타좌처럼 ‘오직 그저’ 자연히 책을 내 앞에 꺼내놓고 눈이 가도록 하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실천을 하려고는 하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