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테오도르 준 박

還山에서 還俗으로

by 현목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의 2세로 하버드대학 비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인생에 대해 젊은이 다운 고뇌에 빠져 있다가 한국의 송담(松潭) 스님의 법문에 매료되어 제가 보기에는 거의 무작정 한국에 와서 송담 스님을 만납니다. 어떻게 보면 광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본인은 절박할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그게 그다지 절실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의 저서는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권은 23살에 還山(그의 호이기도 합니다만)하여 참선수행하다가 송담 스님의 권유로 7년간 TV 방송과 강연 등을 하고 지내는 자신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2권은 30년의 출가를 청산하고 還俗하여 인도네시아와 인도 등으로 다니면서 요가를 배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환속이 없이 수미일관하여 선승으로 살면서 먼 훗날 송담 스님과 같은 내공을 가진 분이 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물론 글로 표현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2권에서는 요가를 배우는 사연들을 많이 소개합니다만 그것이 딱히 어떻게 참선과 연결되는 지는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책 뒤쪽에서 참선에 대한 정수를 말하기는 합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하나 느끼는 점은 세계적인 일류 대학을 나와서 출가를 하겠다는 자식에 대해 이민 와서 고생고생한 부모의 입장에서 그것을 쉽사리 찬성했을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부모와의 갈등이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어서 의아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려 잠시 언급을 합니다만.


죽음과 인생무상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도 출가하고 명상수행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전을 탐구하여 죽음과 인생무상을 극복하거나 다른 하나는 자세와 호흡법에 의한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두 가지 다 죽음과 인생무상을 극복을 위한 도구입니다. 심리적 행복, 편안함, 행복추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나타나기는 합니다.


환산 스님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초월적인 대답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기독교가 유대민족의 개별적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배달민족이 단군 신화를 가지고 있듯이 말입니다. 다만 유대민족의 종교가 인류에게 보편성을 가졌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성악설에 의한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셨고 그분을 통해 인간의 부활과 천국을 보장하고 각론적으로는 각자가 이 세상에서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선하게 살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산 스님은 계속해서 참선은 종교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종교의 정의는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환산 스님이 말하는 참선은 신이나 초월적인 절대자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떤 경지 즉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환산 스님이 참선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물질)를 넘어 어떤 정신(의식)의 에너지의 영속성을 참선 수행을 통해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깨달아 체험하고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환산 스님의 말씀 중에는 정작 자신이 이렇게 깨달았다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참선의 방법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결과물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산 스님은 현대 인류의 행복의 개념을 세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 돈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전부 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죽음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안락함입니다. 셋째 타인으로부터의 존경과 부러움입니다. 사실 둘째 셋째는 돈으로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호강하면서 100년을 사나 가난하여 30년을 사나, 물론 사는 동안은 보다 안락하고 편하고 남의 부러움을 사서 우쭐하면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레트로그레이드(retrograde)로 돌아보면 그게 그겁니다. 이런 죽음과 인생무상을 이겨내기 위해 환산 스님은 참선을 권합니다.


이 책의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참선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참선의 목적 혹은 진정한 목표입니다. 참선의 자세를 설명합니다.

•가부좌 혹은 반가부좌 자세를 취한다.

•턱을 살짝 당겨 정수리가 천정을 향하게 한다.

•오른손 위에 왼손을 얹고 양쪽 엄지를 맞대고 둥근 무지개 모양을 만들어 넓적다리 위로 내린다.

•눈은 감지 말고 전방 2,3미터 바닥을 바라본다.

•혀끝을 윗니 뒤쪽 입천장에 살짝 댄다

•바른 자세를 잡고, 복식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내쉬며 ‘이뭣고’ 하는데 이때 마 지 막 음절인 ‘고’를 숨이 다할 때까지 길게 끌어준다.

•‘이뭣고’라는 화두를 자신이 참선하는 시간 동안 지속한다.

참고로 복식호흡을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코로 들숨을 들이쉴 때 풍선을 불리듯이 아랫배를 팽창시키고 잠시 멈췄다가 날숨을 코로 내면서 아랫배가 척추쪽으로 붙도록 좁혀줍니다.


참선이 어떠한 과정을 걸어가는지 환산 스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참선에 들어가면 그 자세와 호흡이 내면을 고요한 상태로 만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평화 속에서 ‘이뭣고’를 읊조리며 우리의 의식을 그 근원으로 돌린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이 꽉 막힌 듯 답답한 상태가 되어 대의심을 일으킨다. 한편으로는 온 마음을 다해 철벽을 밀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 꽉 막힌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몸과 마음에 가득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알아차리고 그 의식을 빛처럼 느낀다. 대의심이 우리의 의식을 옥죄고 억압하는 습관적인 강박과 두려움, 분노를 모두 녹여 없앰에 따라 의식이 안팍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의식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내면으로 파고들수록 우리는 몸과 마음의 깊이를 인식하게 된다. 감각이 뚜 렷해지며 내면이 정돈되는 것을 느낀다. 몸과 마음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것들이 제자리 잡는 것이 느껴진다. 스스로 꼬리표를 붙이지 않아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해서 자기를 발견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참선의 진정한 목표는 내적 고요와 평화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사의 고통에서의 자유입니다. 환산 스님이 송담 스님과의 회상에서 떠올리는 말입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참선이라는 방법론에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두 가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참선은 너무 자기자신에게만 매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너무 범박하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만, 기독교는 이에 비해 자기가 아니라 외부로 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참선이라는 것이 ‘이뭣고’라는 화두를 던져서 대의심을 일으켜 사색을 하여 참선의 높은 경지에 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참선 자체의 독특한 자세와 호흡을 통해 신비적인 몸이 되어 깨달음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인지 아직은 이해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선을 불립문자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