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뒤돌아 보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아무도 모르게 내리는 그에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디 잘게가 아니라 굵은 빗방울로 지붕을 때리면서 그 소리도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그 꿈은 사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느끼기 전에 그가 먼저 와 있었습니다. 손을 갖다가 대도 무게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삶이 그랬습니다. 오직 내렸다가 누가 인기척을 내면 저만치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흐느껴 슬퍼할 겨를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지만 어느 한 순간만은 누구보다도 빠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쳐다보며 만지려고 할 때입니다. 스스로를 곰삭이며 지나오다가 하나의 철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뒤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든지 그리움이 목에 차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미 그에게는 상관없는 감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앞만 보고 가는 나귀나 마찬가지입니다. 터벅터벅이라고까지는 아니지만 사뿐사뿐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 지난날의 슬픔과 기쁨이 정제되어 증류수처럼 맑은 영혼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그에게서 뭔가 다 삭아져서 정제된 슬픔이 있는 것을 몸으로 압니다. 단지 서로가 입밖에 내지 않기로 약속한 것처럼 서로가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저만치 혼자 가고 나서 비로소 상대에 대한 연민이 흐르고 그것은 시간에 의해 무효화되었기에 그에게 남긴 흔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가 쓰다듬어야 할 대상은 이 세상에 차별을 두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베개맡에 잠깐 들렀다가 가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여정을 가진 자가 그입니다. 그저 왔다가 가고 삼백육십오일 언제나 허락된 시간은 아닙니다. 그가 출현하는 시간은 겨울에서 봄으로 이행하는 잠깐의 여유뿐입니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도둑 같이 왔다가 갑니다.
그가 남긴 것은 옛날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넘쳐나는 반응은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삽입된 또 하나의 흑백 사진이 시간 속에서 부유할 뿐입니다. 그것을 손으로 잡고 보는 사람에게도 그것은 하나의 앙상한 가지일 뿐이지 거기에 꽃과 새가 우는 법은 없습니다. 슬쩍 내버리지만 그 버린 손과 흘러가는 사진 사이의 공간에 작은 여울이 입니다. 유년의 시간은 이미 너무 많이 윤색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자기 것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모든 악을 제거한 아름다운 것만 남긴 것은 실상을 속이는 음흉한 음모입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도 자신을 속이고 그 한 장의 사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긴 터널을 빠져 나와서 이제 개나리의 노란색이 점점이 공간에 도장을 찍을 때 봄비는 다가가서 슬쩍 귓등을 지나쳐서 가버렸습니다. 사월의 온기와 한기가 뒤섞인 그 바람 속에서 개나리는 자신의 정체를 보여주었습니다. 봄비는 운집해 있는 가지 사이로 틈입하여 들어가서 뿌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는 그가 할 일은 그 푸석한 땅에서 자신의 여정을 마치고 서서히 땅의 암흑으로 침입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만나는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입니다. 그 속에서 오히려 눈이 밝아지고 이제껏 없었던 표정이 살아나고 입이 트일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안식하노라고. 그들에게 준 메시지를 잘 받았을까 하고. 그의 옆에는 있어야 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홀로이라는 것을 여기서 그는 몸으로 받아들이며 먼 바다에서 조금씩 조금씩 몰려오는 파도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파도는 점점 더 커져 오면서 소리마저 같이 공간을 공명하면서 다가왔습니다. 그에게 가까이 온 커다란 파도는 이미 하얗게 부서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제껏 참아온 세월이 아쉬워서 다리에다 힘을 주고 버텨보았습니다. 한 순간에 그는 쓰러지고 오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