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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첫사랑

추억 2

by wisdom

27년 전 그때.

지나고 보니 그게 나의 첫사랑이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다는...


대학 입시의 쓴맛을 본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재수학원으로 가야 했다.

당연히 갈 줄 알았던 대학을 못 가고 재수학원을 가야 한다니 무지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은 재수학원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친구들을 하나둘 사귀게 되었고 나는 그 생활에 점점 적응하게 되었다.

재수학원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낙방한 20살 나 같은 사람만 오는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반에는 유난히 삼수생, 휴학생, 사회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 나는 제일 어린 꼬맹이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못 간 창피함 따위는 며칠 만에 사라졌다.

적어도 이 집단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명이 있었는데 제대 후 의대 입학에 도전하는 휴학생 오빠, 직장을 다니다가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회인 오빠.

그 둘은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나지 않아 단짝이었고 우리 반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두 사람이었다.


창피함으로 시작했던 재수 생활이었지만 어느 날 이 생활에 적응은 물론 재미도 찾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건물 안에 갇혀서 공부만 하는 일상에 재미랄 게 뭐가 있겠냐마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상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과의 생활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청춘 남녀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 지 한두 달 지나니 커플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제정신인가 싶었다.

대학도 아니고 재수학원에서 웬 연애?

같은 반 내 친구 민희도 커플이 되었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휴학생 경민 오빠랑.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공부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희가 나에게 물었다.

“한준 오빠가 너를 참 좋게 생각하고 있던데 이번 주말에 함께 밥 먹는 건 어때? 경민 오빠, 한준 오빠랑 우리 둘 이렇게 넷이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들은 나는 얼떨결에 허락했다.

한준 오빠는 경민 오빠의 단짝인 사회인 오빠이다.

그렇게 우리는 넷이서 몇 번 밥을 먹게 되었고, 이후에는 둘이서 따로 만나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아침마다 쪽지와 함께 음료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생각이 같아서 좋았고, 나를 응원하며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좋았다.

나름 성인인 우리였지만 둘 사이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만나면 좋았고, 생각하면 설렜을 뿐.


공부만 파도 모자랄 판에 수능일이 다가올수록 재수 생활에 해이해지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학원은 학교처럼 강한 규율이 없고, 학원생들도 모두 성인이라 내 의사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그랬나 보다.

한준 오빠도 그 대열에 휩쓸려 가는 듯 보였다.

잡아주고 싶었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던 시대라 오빠가 학원을 안 오면 연락할 길이 없었다.

가끔 시간 약속을 하고 집 전화로 통화할 때도 있었지만, 무턱대고 집에 전화를 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마음의 힘듦을 눈치챈 경민 오빠가 한준 오빠에게 연락도 해보고 다독이기도 했지만 한준 오빠는 많이 지쳐있었던 듯했다.

결국 늦가을부터 오빠는 학원에 오지 않았다.

나는 오빠가 보고 싶어서 울고, 붙잡아줄 수 없어서 울고, 몇 달을 괴로워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수능 준비에 매진했다.

경민 오빠는 가끔 나를 위해 한준 오빠가 잘 지낸다는 소식을 넌지시 전해주곤 했다.

소식은 반가웠으나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오빠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폭풍 같은 몇 달이 지나 드디어 수능시험을 치렀다.

성적은 작년과 별 차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몇 달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다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지원 후 여기저기서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붙고, 민희도 붙고, 경민 오빠도 붙고, 한준 오빠도 붙었다.

1997년 우리들은 각자 학교를 따라 흩어졌다.

대학에 입학하니 진짜 성인이 된 기분이었다.

공부도 연애도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자유가 무색할 만큼 나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했다.


참! 한준 오빠와는 대학 입학 후 세, 네 번 만났었다.

둘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봤었지만, 그 이후 진척은 없었다.

참 이상했다.

이제는 연애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대학생들인데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감정이 식었나?’

‘아니면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아서인가?’

아무튼 우리는 이후 몇 번의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겼다.


가끔 경민 오빠를 통해 한준 오빠 소식을 듣는다.

때로는 내가 물어서 때로는 오빠가 먼저 얘기해서.

한준 오빠는 현재 큰 사업을 하고 있으며 느지막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단다.

결국 우리는 제3자를 통해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아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오히려 경민 오빠와 나는 찐한 인생 친구로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랑 결혼한 나는 지금 남편이 첫사랑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스무 살 때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보면 그게 나의 첫사랑이었다.

해피엔딩도 아니었고 길지도 않았던 몇 달의 시간이었지만 처음 느끼는 설렘과 감정에 충실했던 나의 첫사랑.

가끔은 드라마에서처럼 우연히라도 만나보고 싶고, 현재 오빠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도 해본다.

동시에 ‘오빠도 이런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27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우리는 주부, 사업가, 의사가 되었고 한 가정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중년이면 누구나 하는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때 입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부담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살기 바빠서 그때의 기억은 가끔이나 꺼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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