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쿠바 여행 18
아름다운 열대의 하늘과 나무가 어우러진 뜨리니닷. 이들의 색채감각은 정말 탁월하다. 같은 채도의, 서로 다른 선명한 색채의 회벽들이 정말 아름답다. 색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조화롭다는 게 더 중요하다. 마요르 광장에 도달해 보니 동네 초등학생들이 무용 수업을 받고 있다. 학교에 운동장이 없고 대부분은 동네 공터나 주변 놀이터, 광장, 공공 체육시설에서 수업을 하는 것같이 보인다. 누군가의 말대로 쿠바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이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건강하고 밝고 깨끗하다. 어른들 중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이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아바나에서는 오비스뽀 거리를 향해 걷던 중 작은 공터(그래 뵈어도 바닥에 경기장 선도 다 그려져 있었다.)에서 초등학생들이 피구 시합하는 장면을 보았다. 일반 남학생과 선수 여학생들의 시합인 듯 보인다. 여학생들만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입은 운동복은 자기 몸매에 꼭 맞춘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운동화도 새것이다.
말레꼰 근처의 공원에서 방과 후수업을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하얀 발레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어느 주말 아바나 프라도 거리 한쪽 공터에서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들,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중학생들을 본 적도 있다.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가 꽤 좋아 보여서 좀 놀랬다.
뜨리니닷의 마지막 날 해질 무렵에 본 중학생들은 인라인 스케이팅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장구를 제대로 갖춰서 제대로 수업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작으나마 그 공터 하나를 오롯이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경제가 어려워도 아이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는데 여학생들 치마가 굉장히 짧다. 대체로 다리가 길고 상체가 짧아 짧은 치마가 자연스럽고 예쁘다. 설마 한국 아이들처럼 세탁소 가서 줄여 입은 것은 아니겠지? 여학생들은 대개 짙은 화장을 하고 귀걸이나 네일 아트 등으로 멋을 부리고 다닌다. 우리 나이로 중1이나 되었을까, 아직 초딩 티를 벗지 않은 어린 학생들도.
쿠바 아빠들은 분홍색 배낭을 멘다
산타클라라에서 화요일이었던가, 점심시간 막 지날 무렵 중고등학생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았다. 오후 3시 정도 돼야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수업 프로그램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수업이 일찍 끝났나 싶다. 궁금해서 결국 말을 걸어 보았다.
“너네 중학생이니?”
“네~”
“벌써 학교 끝난 거야?”
“아니오.”
“그치? 아직 안 끝난 거지? 그런데 어디 가?”
여기까지는 영어로 YES or NO 대화를 했는데 그다음에 뭐라뭐라 스페인어로 한참 설명을 한다. 당연히 나는 못 알아들었다. 으흠~? 이런 표정으로 알홈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
아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어디론가 몰려가는 걸 보니 아마도 체험활동이나 방과 후수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나 아빠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아이들은 데리러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아빠가 분홍색 인형이 그려진 여자아이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어쩜 그리 비슷한가 싶어 손뼉을 치고 웃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후면 엄마아빠와 어린아이들이 마차택시나 트럭택시 같은 데 오밀조밀 붙어 앉아 집으로 향하는 게 우리와 다르다면 다른 풍경이다.
동네 공터에서 축구하던 여학생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산타클라라의 변두리 마을을 돌아다닐 때 본모습이다. 쿠바에는 아직도 우리가 자랄 때 동네마다 하나쯤 있던 ‘공터’ 같은 게 많이 있다. 산타클라라에도 외곽으로 나가 보니 자그마한 유기농 농장, 야채 시장 등이 있고 그 옆에 공터가 하나 있었다. 그때가 아마 오후 3시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나 보다. 학교를 마친 중학생들이 공터에 모여 있는데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어우러져 축구를 한다.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이나 pc방에 들어가 있어 학교 운동장은 운동부 학생들이, 동네 공원은 담배나 피우려고 모인 소위 ‘일찐’들이 차지하고 있을 뿐 보통의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저런 비슷한 풍경 속에서 뛰어놀았던 것 같다. 아주 작은 아이들은 물웅덩이 근처에서 놀고, 공터 한 복판엔 가장 힘세고 숫자 많은 남자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또 다른 구석에는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들은 뛰어노는 대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수다를 풀었던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모여 남자아이, 여자아이 넘나들며 서로를 살펴보며, 놀며, 눈치도 보며, 알아서 성장하던 복닥복닥하던 그 공간. 바람을 가르며 볼이 빨개지도록 놀다가 정신 차려 보면 어둑해지던, 바람의 느낌을 배우던 그 공간.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공간...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런 공터는 못 가졌어도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라도 했다. 피아노 말고는 사교육을 거의 안 받아 시간이 많았던 나의 아들, 딸은 피아노 학원을 마치면 저희들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 가서 바람을 가르며 뛰어놀았다. 그때만 해도 학교 운동장은 넓었고 흙도 많았다. 비가 오면 도랑이 생겨 거기 쭈그리고 앉아 물장난을 했다.
잃어버린 우리의 '공터'는 어디로 갔을까
교장이 바뀔 때마다 운동장의 모양이 바뀌긴 했지만 한때는 야외수업을 하는 곡선형의 정원을 가꾸기도 했고 펜스를 모두 떼어낸 자리에 조팝나무와 찔레로 담장을 만들기도 하더니... 몇 년 전에는 운동장 지하에 공용 주차장을 짓고 그 어여쁘던 야생화 담장 자리에 스포츠센터를 지었다. 물론 그 위에 학생들 체육 수업을 할 체육관을 얹었다고 하지만 반 토막이 된 학교 운동장을 보면 숨이 막힌다.
앞이 탁 트여 지나가다가도 6학년 교실이 멀리서나마 보여 거기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을 상상하게 하던 학교 정문에는 스포츠 센터가 가로막고 서 있어 본의 아니게 러닝머신 타는 아저씨들을 봐야 한다.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된 아들딸은 초등학교를 지나다닐 때마다 아쉬워한다. 나는 “그나마 벽돌을 빻고 풀을 잘라 소꿉을 놀던 아이들은 너희가 마지막인가 보다” 하면서 그렇게 커온 걸 다행으로 여기자고, 씁쓸함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