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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Sep 09. 2024

쿠바는 광장도 학교

오래전 쿠바 여행 19


오며 가며 교복 입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묘하게도 남학생 한 명에 여학생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눌아(집에서 부르는 딸 이름), 쟤들 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애들을 가리키니 남자친구가 없던 딸냄은

“우쒸~, 쪼끄만 것들이... 다 깨져라~!” 하고 시기한다.     


솔로의 시기 어린 시선으로

“엄마, 쟤네 뭐지?”

해서 보니 잘생긴 남자고등학생 하나랑 여고생 둘이랑 재잘거리며 간다.

“우째 여기 애들은 저런 남자 하나에 여자 여럿, 이런 조합들이 많냐? 친구들이겠지 뭐.”

“아냐, 근데 이상해. 손은 저 여자애랑 잡았잖아? 근데 이어폰은 다른 애랑 같이 꽂고 가.”

양다리인가?? 유치원생들이 어디론가 줄 맞춰 갈 때 보니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이 남자아기랑 여자아기가 손을 잡고 가는 걸 보면 남녀 비율이 안 맞는 것도 아닐 텐데 남학생 하나에 여학생 여럿이 몰려다니는 건 뭘까? 

궁금한 마음에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스페인어를 몰라 하염없이 애틋하게 바라만 보다 눈이 마주친 쿠바의 아이들은 모두 내게 예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호세 마르티 초등학교 

조는 아이 없이떠드는 학생 없이

한 번은 아바나 시내를 걷다가 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이곳 학교들은 우리처럼 커다란 운동장을 품고 있는 큰 건물들이 아니다. 혁명 시기에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간 부자들의 건물을 접수한 정부가 가장 좋은 건물들을 주로 학교로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운동장 없이 시내 한복판 길거리에 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로변 바로 옆에 교실이 보인다. 좀 좁은 듯한 교실에 20여 명 정도의 중학생들이 앉아 있다. 앞에는 젊은 여선생님이 온몸을 사용하여 열정적으로 뭔가를 설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가 학교라는 생각을 채 하지 못했다. 여기 왜 학생들이 앉아있는 걸까, 여긴 뭐 하는 델까? 이러면서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나중에서야 거기가 학교임을 깨달았다. 자기들을 빤히 들여다보는 이국의 아줌마와 눈이 마주친 창가의 학생들 두엇이 눈을 돌려 우리와 눈인사를 나누었을 뿐, 떠드는 아이도, 자는 아이도 없이 학생들은 모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다.     


<교육 천국, 쿠바를 가다>를 보면 쿠바 학생들이 수업 참여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공부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엄격한 학교 규율이나 낙제 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배움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공부의 의미, 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사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호세 마르티가 독립운동을 할 때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킬 때도 지도자들은 민중에게 ‘배우지 않으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온 나라가 교육에 최선인 나라, 공동체가 아이를 돌보는 나라

호세 마르티는 ‘교육으로 자유를’ 강조했고 피델 역시 혁명 직후 국방비를 아껴 교육 예산에 쏟아부었다. 말하자면 온 국가와 역사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할 명분을 설득하는 셈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 것임을 미리 각인시키는 것인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결기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씨엔푸에고스 초등학교


물론 여기에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쿠바의 교육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본질적으로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쿠바에서는 학생이 지각을 하거나 무단결석을 하면 학교와 지역이 결합하여 그의 행방과 가정에서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을 한다니, 이것을 두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 할지(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고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도 모르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이게 지나쳐서 국가와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아야 할지, 헷갈린다.

지각을 하면 학생 자치회 같은 데서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하는데, 표현이 좋아 학생들끼리 스스로 규율을 잡아가는 것이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뭐지, 이 자유와 예술의 기운은?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어쩌면 군부독재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학생을 억압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깊이 새긴 젊은 전교조 교사들이 자치와 자율의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던 1990년대를 거쳐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잘못된 권리의식으로 예민해진 지금의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너무 많은 힘을 실어주어 남의 권리를 침해해도, 스스로 공부를 포기해도, 자신의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 생활을 못해도 ‘내 자유’라 외치는 방임의 가정들이 너무 많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쩌면 공동체가 아이 하나의 보육과 교육에 깊이 개입하는 쿠바식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게 먹히려면 좀 더 치밀하고 지혜로운 방식이 필요할 것이지만.

거리의 벽화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쿠바는 전반적으로 엄격한 규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는 사회이다. 곳곳에 자치경찰이 너무 많이 보이지만 아무도 쫄지는 않는다. 규율이 엄격하다면서도 횡행하는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존재하는 점, 국민들이 국가나 경찰을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분위기는 또 모순되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 쿠바이다. 쿠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혹은 쿠바를 배우고자 한다면, 아니,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해도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또 다른 비밀의 열쇠를 찾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쿠바 뒷골목에서 만난 작품


* 2016년 여행기를 싣다 보니 아무리 세월의 흐름과 다른 삶을 사는 쿠바라지만 2024년 현재의 모습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걱정스럽다. 유튜브에서 가장 최근의 모습이다 싶은 세계테마기행을 찾아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경제사정이 더 어려워졌다는데 마음이 아프다......       


[Full] 세계테마기행 - 마침내! 쿠바- 800km, 혁명의 여정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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