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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Sep 30. 2024

폼나는 그림책 <행복한 청소부><마지막 거인>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

막 대학 4학년이 되기 직전 2월에 운전면허를 땄다. 나의 꿈은 여덟 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고 교직 과목도 이수하고 있었지만, 혹시 교사 임용이 안 되면 배추 장사라도 해야지, 그러려면 조그만 1톤 트럭이라도 몰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면허를 따기로 했다(진짜다).      


배추장사하려 딴 운전면허증

몸과 기술로 생업을 잇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그들이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태를 잘 알고, 나 역시 그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의 제자들이 모두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직업으로 먹고 살 리 없으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버리지 않았으면,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시 한 줄 읽는 교양을 갖고 살기를 바라며 그렇게 가르친다. 그래서 <행복한 청소부>가 처음 나왔을 때, 이 책을 나의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자동차 정비를 마치고 돌아와 시를 읽는 청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독일에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가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이 닦는 거리 표지판의 이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는다. 이번에는 음악가들. 그들의 음반을 사서 연주를 듣는다. 음악 좀 들어본 사람은 알지 않나? 처음에는 유튜브 같은 데서 약간의 짤로 감상하던 음악과 노래를 제대로 듣고 싶어지는 경지. 결국 청소부 아저씨는 음악회에도 간다(나는 여기서 이 주인공의 음악 사랑이 진짜 경지에 올랐다 느꼈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최고

공부란 이런 거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공부가 진짜다. 정말 좋아서 하는 것. 그렇게 몰두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경지에 오르는 것. 

책 속 청소부 아저씨가 정말 멋졌던 장면은 자신이 닦고 있는 표지판의 주인공 작품에 대해 혼자 하는 이야기를 길 가던 이들이 듣고, 방송국에서 그를 모셔가고 싶어 하고,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했지만 과감히 그것을 거절할 때였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한 사람에게 세속의 명예는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학을 가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고 명성을 얻기 위한 졸업장을 위해 공부를 한다. 좋아서 하는 공부의 기쁨, 바라는 것 없어도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비현실적이지만 너무나 소중하다.      


<마지막 거인>은 누구일까

청소년에게 ‘그림책’이라서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게 많아 권할 만한 그림책은 또 있다. 바로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 일단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림책을 왜 예술작품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 안에는 충격과 판타지와 반전이 있다. 다 읽고 난 후에 포만감도 있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중1에게는 이야기 이어 듣기를, 중2에게는 듣기 평가를 해본다. 그만큼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프랑스에 한 고고학자가 있었어. 어느 날 항구를 산책하다 커다란 어금니를 얻었지.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그 어금니가 사람의 것이라면 어딘가 거인의 나라가 있다는 뜻이겠지? 고고학자는 원정대를 꾸려서 거인의 나라를 찾아 떠나. 폭풍을 만나 원정대는 모두 잃었지만 고고학자는 마침내 거인의 나라에 도착했어. 온몸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긴 그들은 서로 아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 밤이면 거인의 어깨에 고고학자를 올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하곤 했어. 하지만 결국 고고학자는 프랑스로 돌아오고...     


고고학자가 보고 왔다는 거인이 나라는 이제는 지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아름다움에 눈뜨지 않은 청소년들은 그 존재의 상징성보다 마지막 목 잘린 거인의 일갈에 소름끼쳐 한다. 그 거인의 죽은 입술이 묻는 ‘침묵’에 대한 질문은 사뭇 철학적이다.  


침묵할 줄 알아야 진정으로 성숙한다

거인의 나라를 찾아가는 탐험대가 마침내 그들을 ‘정복’하고 결국 그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시켜 버리는 이야기, 그리고 소위 학자라는 이들이 단지 연구를 한다며 의도치 않게 그 세계를 짓밟는 데 일조하게 되는 이 이야기는 서양이 동양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을 침탈한 역사와 비슷하지 않은가. 혹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자연을 개조하고 결국은 망가뜨리고 마는 ‘문명사’와도 비슷하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네가 떠들어대는 그 문명, 과학, 진보라는 것들,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을까?”라고. 


또한 거인의 던진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느냐’는 마지막 질문은 하나하나의 개인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말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과 더불어 말하지 말아야 할 때 침묵을 지키는 것도 진정한 말이다. 자기 자신을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침묵이 있어야 진정한 성숙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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