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6 <몽실언니>와 함께
“00 샘~ 저 수행평가요~.”
교무실 밖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서양식인가. 그게 뭐 어떤가 싶다가도 아직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건 어느새 나도 보수적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깍듯하고 뒤에서는 선생들 욕을 하는 것보다는 친근하게 이름을(그래도 뒤에는 ‘샘’을 붙여주기까지!) 부르는 교사-학생 관계가 나쁜 것만은 아닐 터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속 ‘그들이 사는 나라’, 아니 그곳에는 단 한 줄의 법조문이 있다 한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인사할 때 ‘나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로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얹는단다. 상상해 보면 재미있다. 내가 교장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내가 시아버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거꾸로 복도에서 만난 나의 학생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면?
'행복'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으려면
권력을 꿈꾸지 않는 그런 공동체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둘만 있어도 서열이 형성되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살면서 시시때때로 그 ‘권력관계’를 느끼며 산다. 꼭 눈에 보이는 우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관계는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다. 심지어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자주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는 병을 핑계로 엄마와의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하지 않는가. 그래서 현실적으로 저런 '진정한' 평등의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는 것보다 어차피 인간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정치적 관계, 합리적 권력관계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렇게 출발을 하다 보면 그 끝은 ‘합리적 원칙, 더 복잡한 법치’ 이런 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 걸 보면 이 소설을 쓴 한창훈은 나와 달리 아나키스트(국가와 정부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행복해야 행복한 거라고
내가 이 책을 건넨 학생은 재기 발랄하고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책이 가지고 있는 밝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어서였지만 만약 또다른, 학업에 짓눌린 학생을 만난다면 이 책 속 이야기 중 <그 아이>라는 글을 읽히고 싶다. 사실은 학생들보다 부모님들이 읽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날개를 활짝 펴는 소년의 이야기이므로. 먼 훗날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아이로 커야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 진리는 우리 부모들은 왜 모르는 건지 참 안타깝다.
상상력이 아름다운 단편들이라 읽기도 쉽고 재미도 있지만 읽고 나서 마음이 행복해지는 소설이다. 제목은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평화와 평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현실에서 실현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나라를 꿈이라도 꾸어야 조금이나마 근접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보다는 더 평등하고 지금보다는 평안하고 욕심 없이 평화로운 그런 나라. 그런 나라가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거기 살게 하고 싶은 아이가 있다. 권정생 선생이 쓴 <몽실 언니>의 몽실이.
<몽실언니>
나는 솔직히 <몽실언니>가 불편하다.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읽힐 북 카트에 이 책을 꼭 넣으면서도 다른 책을 소개할 때처럼 한참 재미있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딱 끊고 읽고 싶어 감질나게 하는 전략도 쓰지 않는다. 굳이 몽실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마음이 부자인 자가 진정 천국의 주인(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일 거라 퉁치고 만다.
행복한 나라를 몽실이에게
하지만 <몽실언니>를 읽으면 마음이 순정해지는 게 사실이다. 21세기의 십 대들은 마음이 메말랐을까? 인류의 보편적 심성은 AI 시대 아니라 외계인과의 공존 시대가 열려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슬픔은 고통스럽지만 그런 슬픔에 공감하면서 아이들은 맑아진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도 읽어야 하는 거다. 현실의 슬픔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 속 슬픔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렇게 만난 몽실이가 가난도 아픔도 치욕과 지배, 일방적인 희생이 없는 나라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